남겨진 말들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by 강후림

“그때가 좋을 때야.”

무심코 뱉은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고등학교 시절 피곤에 찌든 우리를 보며, 같은 말을 하던 선생을 지독히 싫어한 나였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조바심으로 가뜩이나 날 선 마음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인생 선배랍시고 우릴 애송이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 영 아니꼬웠다. 웅녀 이야기를 성공담으로 들먹이며 조금만 참으면 곧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죽거릴 때는 언제고,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니…. ‘나는 나중에 저런 말 절대 안 해야지.’하고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도 십 수 년 후 나는 선생의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해 버렸다. 학교를 벗어나면 더욱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말이긴 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꼰대의 언어였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나,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었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구호에 세뇌되어 순치된 인간으로 길러진 나는 다른 세상에 눈 돌릴 재간도 배짱도 없었다. 빠듯한 집안 살림과 좁은 견문에, 나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방편으로 공부 외 딴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노력 대비 산출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나름의 성취감 같은 걸로 한 시절을 버텼다.

내신이나 수능 등급을 높이기 위한 입시 공부에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나마 성취감이라도 느껴야 공부할 의지가 생길 텐데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고 하기엔 무책임한 조언이 될까 두려웠다. 공부 외에도 다양한 길이 존재하지만 내가 가진 경험치의 부족은 그 다양성을 열어주는 데 한계가 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교사 집단에게, 순종을 거부하고 틈만 나면 어긋나려는 아이들은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기 일쑤였다. 제각기 펄떡이는 욕망을 가진 아이들을 배제와 소외 없이 품기엔 학교라는 공간은 너무나 좁고 보수적이었다. 성적으로 인한 열등감이 자존감마저 깎아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교단에 섰다.




학교 현장의 여러 한계를 마주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던 즈음에 나는 자꾸만 학교 밖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SNS에서 ‘메마뮤(Make my music)’라고 하는 자작곡 워크숍 홍보 글을 보고 덜컥 신청해버렸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는 게 없지만 호기심 하나로 덤빈 일이었다. 직접 지은 가사에 전문 음악인들의 도움을 받아 곡을 붙이고, 지인들을 초대하여 소규모 공연까지 열었다. 생소한 작업이 주는 경이로움은 둘째 치고, 각양각색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간 내가 동질 집단에서 얼마나 안이하게 살았는지를 깨닫게 했다.

특히 워크숍 운영자들의 이력이 인상적이었데, 그들은 모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임 공간을 관리하고 프로그램 홍보 및 보조 진행을 맡았던 J는 ‘커뮤니티 매니저’로서의 삶을 기록한 책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K는 각지를 돌며 크고 작은 공연을 열고, 책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든 자작곡들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소개하는 중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B는 공연과 전시를 위한 복합 예술 공간을 운영하며 각종 예술교육활동에 열심이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고충이 필시 있을 테지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취미와 재능을 일로 승화하고 경계 없는 관계 형성을 존재 확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이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교사가 된 것은 부모의 요구와 사회적 통념을 의심 없이 수용한 내 인식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최선의 혹은 가장 안전한 타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난해 고3 진학 업무를 맡아 대학별 방문 입시 설명회를 진행했다. 대부분 학생 유치를 목적으로 입시 요강 및 전략을 안내하고 취업률과 관련하여 각 대학이 가진 경쟁력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지방 대학의 존폐 위기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대학과 자신의 교환가치를 수시로 가늠하며 치열한 눈치 싸움을 해야 하는 아이들의 서글픈 회동이었다.

물론 이런 형식의 설명회가 아주 무용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메마뮤’에서 만난 J와 K와 B처럼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자기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이들을 학교로 한번쯤 초대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에 기반하여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과정, 세간의 평가나 기성세대의 우려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본인의 삶을 지켜내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실제적인 갈등과 어려움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면 아이들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회의와 보람 사이를 오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일희일비한다. 아이들로 인해 울 때도 있지만 나를 웃게 하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이 다정하고 안쓰럽고 무구한 아이들에게 “그때가 좋을 때다.”라는 말 대신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현실을 기만하고 너와 나를 단절하고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박탈하고 함부로 단정하는 말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 한계 안에서나마 아이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려면 어떤 이야기부터 들려주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