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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Nov 16. 2021

고개 돌리지 않을 용기


  엄마는 급식 노동자였다. 내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임용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을 무렵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도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 왔다. 집에서도 싱크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데, 일터에서도 내내 밥 짓고 설거지 하고 있을 엄마였다. 엄마가 싸준 점심, 저녁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 종일 도서관에 처박혀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늦은 밤에도 엄마는 날 위한 간식을 준비해 주셨다. “피곤하지? 고생했다. 뭐 좀 먹어라.”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터였다.

  무거운 식재료와 조리 기구, 수 백 명분의 식판을 들고 나르느라 엄마는 늘 어깨와 허리, 팔이 아픈 상태였다. 물 마를 날 없는 손은 나날이 거칠어지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땀을 흘리다 보니 저녁엔 탈진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장면들 때문에 그 무렵의 나는 자주 울컥했다.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 어떤 것도 묻지 못했다. 출근하면 어떤 일부터 하는지, 엄마가 주로 맡는 음식은 무엇인지, 급식에 대한 아이들과 교사들의 반응은 어떤지, 행여나 아이들이 무례하게 굴지는 않는지, 일하다가 다치거나 데인 적은 없는지,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랑은 잘 지내는지,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든지,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지 등과 같은 질문들을 그저 속으로만 삼켰다.

  ‘나도 공부하느라 바쁘고 피곤해.’라는 핑계를 대면서, ‘엄마가 언제까지고 저 일을 하시진 않겠지. 내가 얼른 자리 잡기만 하면….’하고 잔뜩 벼르면서 엄마의 현재를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 급식 노동자로서의 삶을 한시적인 고생길로 바라보던 마음에는 밥 짓는 노동의 소중함과 전문성을 등한시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급식 노동자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셨는데, 아빠의 직장 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불같은 성격에 융통성이라고는 없는데다 자존심마저 센 사람이었다. 집에서처럼 회사에서도 자주 버럭댔고, 윗사람들에게도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므로 보수적인 조직 생활을 버티지 못했다. 아빠가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사이 엄마는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랬던 아빠가 지난해부터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계신다. 엄마로부터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뜨악했다. ‘딸 아들 다 결혼시키고 두 분이서 사시기에 생계가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아빠가 경비 일을 한다고? 왜 하필?’ 나는 여전히 직업에 귀천을 매기고 있는 영락없는 속물이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한편, 나는 아빠가 진심으로 걱정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아파트 경비원 대상 갑질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다.

  바쁜 일상에 잊고 살다가도, 늦은 밤 잠자리에 누울 때면 아빠가 문득 떠오른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24시간 격일제로 교대 근무를 한다는 건 얼마나 고된 일일까. 100키로가 넘는 거구의 몸을 잠시라도 편안히 누일 곳은 있을까.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 갔더니 그 흔한 소파 하나 없던데, 아빠가 계신 곳은 어떨까. 엄마가 싸준 점심, 저녁 도시락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실까. 행여나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계시진 않을까. 그런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슨 마음으로 경비 일을 시작하신 걸까. 나는 또 예전처럼 이런저런 질문들을 그저 속으로만 삼키고 있다. 60세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시급 노동의 세계에 뛰어든 이야기,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를 진즉에 사놓고 여태 펼치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두려웠다. 엄마, 아빠와 서로의 하루를 살뜰히 나누고 싶으면서도 그들의 노동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싫었다. 가족을 위해 엄마가 감수해 왔던 온갖 수고를 낱낱이 알게 되는 순간, 엄마에 대한 내 부채의식이 더 커질 것 같아 두려웠다. 늘그막이 고생하고 계시는 아빠의 24시간을 속속들이 알고 나면, 내가 알고 있던 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눅 든 장년 남성만 남을까 두려웠다. 몰라서 편한 상태를 구태여 벗어나지 않으려는, 알고 난 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될 것들을 애써 만들고 싶지 않은 옹졸함이랄까. 현실을 핍진하게 마주하고도 모른 척 눈 감을 무심함은 없으니, 지레 고개를 돌려 버리는 나태함이랄까.

  그동안 어설프게 덮어 두었던 엄마의 시절과 내가 매일 학교에서 마주하는 급식 노동자들의 현재가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엄마가 더는 그 일을 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음도 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먹은, 그리고 퇴직 때까지 학교에서 먹게 될 무수한 끼니가 결국 그들의 노동과 수고에 빚진 것일 테니까. 아빠의 오늘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의 하루와 주민의 갑질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경비원의 삶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경비원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대우는 특정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게 아니니까.

  나는 그간 나의 엄마들과 아빠들에게 고개 돌린 채 살아왔다. 속으로만 삼켰던 그 숱한 질문들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동료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엇보다 그들의 자식이자 딸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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