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주말 오후, 아파트 놀이터에서 우연히 J와 마주쳤다. J는 희미하게 웃음 띤 얼굴로 나에게 먼저 인사했다. 나란히 그네에 앉아 띄엄띄엄 나눈 그날의 대화를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난 지금이 좋아.”
J는 지난 몇 달간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학교에 가면 책걸상이 복도에 나와 있기도 하고, 책이나 필통 등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날도 있었다. 아무도 J의 울음에 동요하지 않았다. J는 옆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아이였는데, 줄곧 담임의 총애를 받아 왔다. J의 성적이 중위권으로 떨어진 후에야 따돌림은 시들해졌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싫어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아니, 싫어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또래의 여자애들은 싫어하는 대상을 공유하면서 더 친해졌다. 공공의 적을 만듦으로써 집단의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권력 유지의 고약한 방편 중 하나인데,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이 우리는 그런 짓을 일삼곤 했다. J에게 다소 얄미운 구석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폭력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성적을 기준으로 특정 학생만 편애하던 옆 반 담임의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가 한몫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저 다듬어지지 않은 존재들이 성장 과정에서 범하는 수많은 과오 중 하나라고 두둔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도 되는 문제일까.
그 폭력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방관자 중 하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헤아려 본 적도 있으나 결국은 침묵했다. 내가 J와 같은 반이었다면, 혹은 내가 J였다면…. 너와 나의 경계는 지극히 위태로워서 달콤했고, 같은 이유로 잔혹했다.
우리의 대화를 혹여 다른 애들이 들을까봐 내내 주위를 살피던 그날의 내가 떠오른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을까. 특정 타깃을 정해 싫어하기 위한 명분을 세우고, 편을 갈라 배척하며 킬킬대는 작은 악마들…. 배제와 소외, 너무나 손쉬우면서도 모진 폭력 앞에서 우린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 say
네가 제일 미워하는 누군가는 사랑받는 누군가의 자식 say*
아이 덕에 지겨울 정도로 반복 시청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바로 ‘쿵푸팬더 2’이다. 주인공 ‘포’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가 ‘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와 숙명의 대결을 펼친다. 묘하게 마음을 울린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셴’이 점쟁이 할멈 ‘수츠세’와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부모는 날 미워했어. 내 앞길을 막아버렸지. 이제 내가 그걸 바로잡겠어.”
“그렇지 않아. 그들은 널 너무 사랑했어. 그래서 추방한 거야. 널 추방한 후 내내 안타까워하다가 돌아가셨어.”
무자비한 악의 화신 ‘셴’은 부모에게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셴’ 역시 사랑받는 자식이었다는 것. 무엇도 ‘셴’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를 사랑하고 염려했던 누군가의 존재는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래, 누구에게든 최후의 도피처는 있어야겠지. ‘셴’에게 부모의 진심이 가닿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천사’ 혹은 ‘개’가 되는 건 한순간일지도 모른다.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내 말과 행동은 갖가지 파장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아마 오늘도 난 수많은 스침 속에서 ‘천사’와 ‘개’ 사이를 오갔을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삶이란 없고, 모두에게 외면 받는 삶 또한 없다는 것, 뜻밖에도 위안이 된다.
I’m a villain. 왜 아닐 거라 생각해. 아주 못돼먹은 작은 악마 같은 나인걸 몰라.
You’re a villain. 왜 아닐 거라 생각해. 미처 몰랐던 악마가 네 안에 숨 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