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더운 여름 날 성당에서 결혼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앉고 서기를 반복하며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된 결혼식은 비단 우리에게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인들 사이에서 고생스러웠던 결혼식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하니까.
나는 왜 성당에서 결혼하려고 했던 걸까. 신랑은 엄마의 바람대로 8개월간의 교리 과정을 수료하고 막 세례를 받은 새내기 신도에 불과했고, 하물며 시댁 어른들은 불자이신 상황에서 나라도 신실한 믿음으로 무장한 열혈신도여야 했으나 그러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신부 측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혼식임은 분명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날의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 손에 끌려온 어린 아이들에 가까웠다. 뭘 모르긴 해도 종교적 공간이 뿜어내는 신성함이 우리의 결혼식을 더욱 성스럽게 만들어 주리라는 믿음은 있었다. 신의 가호 같은 것이 우리의 앞날에 함께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우리 부부는 한 마디로 ‘나일론’ 신자였다. 주일 미사 참석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의무이지만 그마저도 안 지킬 때가 많았다. 원칙상 고해성사를 해야 함에도 ‘이런 건 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형식적인 절차 아냐.’하며 유야무야 얼렁뚱땅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도 주말에 친정에 들를 때면 다 함께 미사에 참석하곤 했는데, 3대째 성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내가 봐도 흐뭇했다. 그나마 간간이 이어지던 성당으로의 발길이 아예 끊긴 것은 사실상 코로나 때문이었다. 종교 집회 제한 권고는 나일론 신자에게 좋은 명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간의 내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신앙이라고 말하기에도 죄스러운,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늘 존재했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주했을 때,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생겼을 때,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만 찾았던 신이었다. 대입 결과 발표나 임용고사 합불 여부를 기다리던 날, 결혼을 앞둔 즈음과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설렘과 두려움을 오가던 시절에 나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해 살았다. 그냥저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없이 살아갈 때는 내 의지와 결정에 따르는 삶을 빈틈없이 신뢰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나의 이런 방만함을 신이 어딘가에서 괘씸하게 지켜보고 계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종교를 밝히는 자리에서 나를 늘 머뭇거리게 했다. 신이 남긴 메시지와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밀려와도 신앙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고, 인간의 간사함이라는 두루뭉술한 변명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페르소나로서 니체 철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핵심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신의 죽음’이었다. ‘신의 죽음’이라니, 너무나 불온하고 매혹적이지 않은가. 성경 속 구절들이 통렬하게 전복되는 부분에서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스스로를 ‘불 지르고 다니는 자’, ‘무리의 목자가 아니라 무리의 유혹자’라고 칭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나는 적잖이 설득 당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더는 천상의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자유롭게 머리를 쳐들라!’ 고 말했다. 영원하고 초월적인 존재, 절대적 가치의 기준에 복종해 온 인간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자신의 노력과 의지만을 삶의 중요한 변수로 맹신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신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저 먼 세계보다는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집중하라는 말로 다가왔다. ‘자유롭게 머리를 쳐드는 자’에겐 구원이니 영생이니 하는 것들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 어떤 심판이나 보상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뿐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를 거론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존재한 이래 인간은 너무도 즐기지 못했다. 이것만이 우리의 원죄다!’ 우리 죄를 구원하러 오신 자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 아니라 잘 즐기지 못해서 죄인이 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죄인이라는 얘긴데, 죄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니체는 기독교적 ‘이웃사랑’과 관련하여, 고통 받는 자를 동정하고 시혜적 관점에서 의도된 선행을 베푸는 것을 지극히 경계했다. 그것은 ‘잘 즐기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수치심과 상처와 복수심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의 반복이 인간의 역사이며 원죄이므로, 의도나 목적,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존재 자체가 베풂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어쩐지 나에겐 기독교적 원죄보다 니체적 원죄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보다 기뻐하고 더 잘 즐기는 삶, 나를 지키고 돌보는 일이 결국 타인을 위하는 일도 되는 삶, 그것이 원죄 극복의 방향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는 십자가상을 비롯한 각종 고상들이 곳곳에 있고, 성경책과 기도서들이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일 년 넘게 주말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어도, 어디 가서 ‘무교’라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앞으로 마주할 무수한 삶의 순간에도 나는 때때로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고 또 위안 받을 것이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궁극적으로 신이 나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함이라는 논리는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삶의 진정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성실한 신도가 될 자신은 없다. 하느님 앞에서 맹세한 결혼이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할 수 없다는 순진한 결심 따위도 내겐 없다. 나에게 종교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이고,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기엔 신은 너무도 먼 당신이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어떤 것이든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설픈 이해로 성경과 니체 철학의 의도를 곡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 어쨌거나 내면의 혼돈을 새로운 창조의 밑천으로 삼고 싶다. 이리저리 기웃대는 와중에 내 삶과 생각과 믿음을 끊임없이 갱신하며 살아야지. 아무래도 당분간은 탕자의 삶이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