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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l 22. 2021

불법무단사설야매시인학교

야매 시인, 니체, 그리고 이성복


  ‘불법무단사설야매시인학교’라니…. 어쩐지 패기가 느껴지는 명칭이었다. ‘이래도 할 거야? 할 테면 해봐.’하는 식의 노골적인 도전장을 받은 기분이랄까. ‘시인학교’라는 고상한 단어 앞에 보란 듯이 붙어 있는 불온한 수식어의 중첩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애초에 ‘시인’과 ‘학교’부터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학교니까 선생은 있겠지 싶어서 그게 누군지 찾아 봤다. 부산대 앞 ‘헤세이티’라는 인문학 카페의 운영자였던 ‘황경민’이라는 사람인데, 본인을 ‘야매 시인’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카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입간판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입간판에는 사투리, 비속어를 버무린 짧은 글이 매일 업데이트되곤 했는데, 무심히 정곡을 찌르는 통에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곤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

  ‘밥 푸는 기 명상이고, 밥 노나 묵는 기 구도고, 땅 파는 기 공부고, 손잡는 기 실천이고, 좆도 아인 줄 아는 기 용기고, 모르는 줄 아는 기 지혜다. 선방에서, 단상에서, 교회당에서, 강단에서 개후까시 떨지 마라.’

  도대체 저런 글은 누가 쓰나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입간판 글들을 모아 엮은 책도 있었군. 선생이 중허지 대체 뭣이 중헌디.




  모임 장소는 중앙동 40계단 앞, 한 오래된 건물의 4층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헉헉대며 올랐더니 별다른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잔뜩 경계하며 들어선 곳에서 희미한 담배 향과 아재 군내를 느낀 순간, 나는 살짝 후회했다.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중앙의 낡은 탁자 하나, 이동식 화이트보드와 기타 몇 대, 그리고 풍물 악기들까지…. 공간의 정체성이 쉬이 파악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주인이 자기 좋을 대로 자기 편한 대로 꾸민, 아니 방치한 공간이었다. 역시나 ‘들어올 테면 들어오고, 말 테면 마라’는 식이었다.

  학생은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사실 평일 낮 시간대에 이런 모임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일 거라는 생각은 했으나, 꼴랑 한 명 더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선생님도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으니 나로서는 꽤나 불편한 자리에 온 셈이었다. (물론 그 분들도 내가 불편하셨겠지만.)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그런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와, 이거 어떡하나. 무슨 조합이 이래. 근데 이거, 학생이 단 둘이라 빠져 나가기도 힘들겠는데? 하….’

  어찌 됐든 이미 성사된 만남이었다. 통성명을 끝내고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편으로 내 편견과 한계를 응시했다. 평소 세대 격차, 성별 갈등 문제와 관련하여 “서로에 대한 무지가 오해와 혐오를 낳는 거야. 알려고 하지 않고 선부터 그어대니 불화가 생길 수밖에.”라고 잘도 말하고 다녀놓고, 또래와 동성을 넘어선 만남을 실제로 마주하자 뒷걸음질부터 치려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저들과 벗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고쳐 생각했다. 더군다나 시라는 연결 고리가 있다면야.

  게다가 시와 삶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에 난 심하게 감동했다.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메모하느라 뒷목이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제가 시를 가르치고 여러분이 배우는, 뭐 그런 걸 하자는 게 아입니더. 시라는 매개를 통해서 자기를 깨부수고 또 주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험을 함께 해 보자는 것이지예. 착한 사람 말고, 그냥 쪼매 더 나은 사람이 돼 보입시더.”

  나는 불현 듯 니체를 떠올렸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불태워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로워지려 하는가!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어쩜 똑같은 말을 하시는 군요. 나이를 먹을수록 맹신과 확신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또 한 번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들은 셈이었다. 나는 어느새 비장한 얼굴이 되었다.

  “시 한 편 써 볼끼라고 몇날 며칠 고민을 한들 당장 밥이 나옵니꺼, 돈이 나옵니꺼. 아무 것도 없어예. 그런데 왜 합니꺼. 누가 시킨 게 아니라예. 그냥 본인이 재밌어서 하는 거지. 돈 받고 하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희열의 순간이 분명히 찾아온단 말입니더. 무용(無用)의 쓸모라는 게 바로 그런 거지예. 삶에서 이런 부분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또다시 그의 말은 ‘노동이 아니라 투쟁을 권한다!’ 던 니체의 말과 오버랩 되었다. 이때 ‘노동’은 시대의 지배적 가치에 순치되는 과정, ‘투쟁’은 이와 대결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그 무렵 니체 철학에 빠져 있던 나는 이미 니체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듯한 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유희이자 놀이로서의 공부, 교환가치를 목적으로 두지 않은 창작 활동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인가 대신 얼마만큼의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고려한 결정은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은가. 대가나 보상이 중요하지 않은 즐거움의 영역을 적게나마 확보하는 것, 그건 삶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야매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야매 시인’이라는 말 자체가 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단 제도나 신문 잡지 권력에 의탁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를 썼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시로 누군가를 울렸기 때문에 덜컥 시인이 돼 버린다는 것, 정식(正式)을 거부함으로써 정식 밖의 존재들과 눈을 맞추려는 마음, 뭐 그런 거 아니겠나.




  이후 함께 읽은 이성복의 시론집은 페이지 하나하나가 다 시이자 아포리즘이었다. 『불화하는 말들』은 시 창작 강좌 수업의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구절, 밑줄 쫙쫙 그어 놓고 외우고 싶은 구절이 정말 많았다.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 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책에서 말하는 대로 산문과 시의 간극은 너무나 멀었다. 아예 다른 차원의 감각을 써야했다. 감상과 창작의 간극은 말해 무엇 하리. 일상에 쫓겨 근근이 몇 줄 써간 게 좋은 평을 받을 리 만무했다. 내 시에 대한 지적과 조언은 그야말로 돌을 내리치는 망치와도 같았다. 미사여구와 상투적인 수식어들은 모두 걷어내야 했다. 그건 내 언어가 아니니까. 절박함과 치열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니까. 자기감정에 도취되어 폭로하는 방식은 독자에게 메시지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았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중심에 세우면서도 빈터, 구멍 같은 것을 마련하여 시적 긴장감을 확보해야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어렵게 느껴진 부분은 이성복 시인이 언급한 ‘몽상’의 상태였다.

  ‘꿈과 일상의 중간 지점이 몽상이에요. 자면서 꾸는 꿈에는 저항할 수 없지만 몽상은 자기 꿈을 몰아갈 수 있는 거예요. 잘 말하는 건 ‘반쯤 말하는 것’이라 하지요. 통제와 무질서 사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 완전히 덮이거나 완전히 벗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실성한 듯이 중얼거려보세요.’

  실성한 듯한 중얼거림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나는 습관처럼 합리적이고자 했다. 내 안에 자리한 도덕성, 관념, 이성, 기준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주저앉히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땅을 파긴 팠는데, 뭔지도 모를 파편만 잔뜩 발견한 상태’, ‘더 나아가야 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데 자기가 자기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태’의 그 어정쩡함이랄까. 산문을 쓸 때도 내 행위의 이유와 의미를 찾아 ‘~때문이다’를 즐겨 붙이는 나로서는 그 성실함을 중단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또 한 번 내가 모범적인 쫄보임을 인정해야 했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사회적 자아에 얽매이지 말고 시적 화자에게 모든 권한을 줘버릴까. 그러면 좀 더 자유롭고 용감한 또라이가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과정이 버겁지만 즐겁고, 어렵지만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대로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 ‘눈송이와 같아서 읽고 나면 독자의 어딘가가 젖어 있는 시’가 영원히 남의 것으로만 머문다 해도 아쉬울 건 없다. 애초에 내가 원한 게 그런 경지가 아니었음은 두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나는 이미 시를 통해 삶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뭐라도 끄적여 볼까 마음을 먹는 순간, 이보다 더 막막할 수가 없다. 시 한 번 써 보려고 호흡을 고를 때마다 캄캄한 오르막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이 손쓸 수 없는 막막함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내가 보고 있는 사물, 내가 알고 있던 사실, 나의 감정, 나아가 나라는 존재까지 그 무엇도 확실하고 고정된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한없이 낮아지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을 울린 구절 하나,

  ‘시가 얘기하려는 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없는 것, 묻기 전에는 알았는데 물어보면 모르게 되는 것, 말하는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에요.’

시를 대하듯 삶을 대하고 삶을 대하듯 시를 대하면 나도 언젠가 ‘야매 시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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