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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Dec 09. 2015

가을을 지낸 백수의 감상

Intermission #1

가을이 끝났다. 물론 달력의 가장 큰 숫자가 11에서 12로 바뀌었다고 계절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길을 걷다 마주친 가로수에 더 이상 떨어질 나뭇잎들이 없다는 걸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번 가을도 이렇게 지나갔다는 것을.


흔히들 사랑하는 가을은 사실 죽어가는 것들이 자신의 시신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곳곳을 뒤덮는 갈색의 물결은 한여름 속 생명력을 자랑하던 푸른 빛깔의  빛바랜 모습이다. 짱짱한 자세로 굳게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했던 수많은 이파리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다 보면 어느새 한 시대가 끝난다.



백수로 맞이했던 올 가을은 느낄 사이도 없이 지나쳐버렸다. 어리다 할 수 없지만, 젊다고 할 수는 있을 만한 지금의 내 상황에서, 이번 가을은 고민도 많이 하고 산책도 많이 하며 이래저래 책들도 몇 권 기웃거렸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시간은 언제나 부족한 부분만 머릿속에 각인되듯 이미 지나버린 가을에 아쉬움이 많다. 


이제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온다. 이번 겨울은 더 혹독하겠지. 겨울은 무엇이 있었다는 기억마저 덮어버리는 시간이니까. 막 뜯어낸 달력처럼 지나쳐 버린 가을에는 거리를 뒹구는 낙엽 같은 내 모습들이라도 있었다면, 겨울에는 그 조차 보이지 않는 시간이니까.



하나의 겨울을 잘 지낸 나무들이 새로운 잎사귀들을 선보이듯, 그 겨울 지나면 난 다시 새로운 이파리들을 만날 수 있을까?  먹고살 궁리를 해도 시원찮을 시간에, 괜스레 근거 없는 낙관론만 머릿속에 맴돈다. 이 겨울이 끝날 때쯤에는 한 끼의 밥벌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 모습이 나 자신에게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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