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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Dec 10. 2015

잘츠부르크 등 #1
- 그 아우라는 그리움이 될까 -

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기차를 한 번만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십 년 전에도 이렇게나 많이 갈아타야 했었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기 전에 빈자리를 찾는 게 중요했다. 라우터브루넨에서 인터라켄, 베른, 취리히를 거쳐 뮌헨에 도착했다.


원래는 뮌헨이 아닌 잘츠부르크에서 묵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숙소를 계속 옮겨 다니며 힘든 걸 감안하면, 유레일패스로 기차 비용이 절약되는 상황에서 굳이 잘츠부르크에서 숙박할 이유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뮌헨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재밌게 보았고, 간혹 TV에서 방영할 때마다 넋 놓고 보았지만, 정작 그 배경인 잘츠부르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제야 ‘그곳’ 임을 알았고, 또한 ‘그곳’이 모차르트의 탄생지인 것도 알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도시. 이 단어 외에는 적합한 말을 쓸 수 없는 도시였다. 당일치기로 이 곳을 다녀온 덕분이었을까? 상투적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무엇 무엇의 도시’ 정도가 아니라, 잘츠부르크는 진심으로 모차르트만 존재하는 도시 같았다. 모차르트 생가를 비롯한 볼거리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옛 시가지를 쭉 둘러보았지만, 모차르트 얼굴이 그려진 온갖 종류의 관광 상품만이 눈앞에서 반복적으로 어른거렸다. 



그래도 상점마다 특이한 문양의 철제 간판이 걸려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는 이색적이었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간판들은 점포별 개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이 곳 거리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거리를 구성하는 상점은 바뀌어도 이런 형태의 간판을 만드는 것은 이 거리를 위해 지속된 것일까? 


2003년 정도부터 계절에 한 번 정도는 국내 여행을 다녔었다. 1박 내지 2박 정도의 여정에 버스와 기차 그리고 두 다리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여행이었다. 처음 다닐 때에는 아무런 관광시설도 없던 지방의 소도시들이 어느 틈엔가 지역축제라는 이름의 행사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문화재와 특산물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방문했던 행사들의 많은 경우는 먹거리 시장과 가수들의 공연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인지 눈에 들어온 이름에 혹해서 축제의 행사장을 찾는 경우는 없어졌다.


사실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얻기 위한 활동이다. 그 경험의 대다수가 보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구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과 산업이 그 세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에 말로 구체화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라는 것이 추가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오리지널 예술작품만이 ‘아우라’를 가지듯, 여행지에서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며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그곳의 분위기. 사실 그런 분위기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분위기는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게트라이데 거리의 하늘에 계속해서 철제 간판이 걸려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분위기에 대한 존중과 믿음 때문이 아닐까? 깨끗한 느낌을 받을 수 없고 비좁지만 광장시장의 빈대떡을 사람들이 계속 찾는 것은 그곳의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작은 규모라는 핑계로 계속 걷기만 해서 그랬는지 뮌헨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깨어 있었던 기억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는 맥주를 마시러 나왔다. 관광책자와 수많은 블로그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모두가 가리키는 맥주집은 호프브로이하우스였다. 그래서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인 아우구스티너켈러였다. 아우구스티너켈러 역시 무척 유명했지만, 비어 가든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확 동했다.


비어 가든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한 표현이었다. 우리로 치면 작은 공원 규모의 부지에 수많은 탁자들 그리고 한가로이 큰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맥주와 대화에는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병입 하지 않은 생맥주는 1리터짜리 라들러만 판매하고 있었다. 1리터 크기의 맥주잔을 들고 와이프와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디를 가든 맥주는 이것저것 마셔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먹어본 생맥주 중에서는 최고의 맛이었다. 물론 마시고 나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라들러라 맥주 특유의 쌉쌀함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지만, 깨끗함과 청량감은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1리터라는 양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에 잔의 절반을 비워냈다.(다른 곳에 라들러를 또 마셨지만 이때의 맛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추가로 바이스 맥주를 마시면서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삶, 이곳의 삶, 한국의 삶, 추상적인 이야기와 말초적인 이야기들이 순서 없이 등장해 자연스레 나열되었다. 옆자리에서는 한 가족처럼 보이는 노인과 장년의 부부 그리고 아이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쪽 너머의 청년들은 취기가 오르는지 일어서서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위협적이거나 방해되는 이들은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들이 많았지만 서로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분위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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