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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Jan 15. 2016

헤이그 #1
-밥벌이에 관한 단상-

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원하는 것을 향해 간다. 아내가 유럽에 오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이었다. 동명의 영화와 책으로도 유명한 이 그림은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있다. 헤이그라는 도시는 사실 학창 시절 국사책의 헤이그 특사로만 기억되는 곳이다. 그림 한 편 보러 가는 것이지만 정말 원하는 것을 보러 간다는 마음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브뤼셀에서 당일치기 일정으로 헤이그행 기차를 탔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헤이그는 아담한 느낌의 도시였다. 역 밖으로 나서자 어디선가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다가 가까움을 직감할 수 있었다. 미술관을 향해 길을 걷다 우연히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지만 반응이 없어 결국 입장을 포기하고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많지 않은 전시물이지만 대부분의 전시물들이 한 번쯤 들어본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담한 규모에 많지 않은 전시물을 옹기종기 모아 놓은 덕분에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사실 큰 미술관은 규모에서부터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명한 그림들 그리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까지 크지 않은 그림들이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 한 구석부터 차올랐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 놓은 그림은 따로 있었다.          



니콜라스 마에(Nicolaes Maes)의 ‘레이스 짜는 노인’(The Old Lacemaker). 약해진 시력을 안경으로 보충하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레이스를 짜는 노인은 왠지 모를 숙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인간에게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끼의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인간이 죽음을 택할 수 없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일은 필수 불가결하다.


직장을 그만둘 때 나의 가장 큰 고민도 밥벌이였다. 이제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지도 큰 고민이었지만, 사실 밥벌이에 관련한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이 당연한 활동을 낮은 가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결심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이, 한편은 대단하지만 한편은 나 스스로가 일상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흔히들 자조 섞인 말처럼 내뱉는  밥벌이하는 삶은 사실 무척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그러한 일을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일을 해서든 밥벌이를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다양한 조언과 만류와 응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가져올 수많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과 시뮬레이션을 해본 것은 나 자신이었다. 언젠가 그 선택을 후회할지는 몰라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각오만큼이나 꾸준함이 필요한 데 이제 시작이라 고민이 많다. 꾸준하게 레이스를 짜 내는 노인처럼 삶의 순간들을 채워 나가야 하는데 순간순간은 여전히 어려운 것 투성이다. 


그저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는 구분선이 없지만 헤이그가 품고 있는 바다는 북해다. 이름만 들어보았던 북해는 왠지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바다였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도 휴양지로 이름난 스헤베닝겐 해변이라 그런지 한국의 어느 해변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떠들썩하지 않은 사람들의 물놀이가 정겹게 다가왔다. 북해가 아니라 남해의 어느 조용한 해수욕장 같았다. 



아내와 나는 해변가를 돌아다녔다. 진흙을 말려놓은 것 같은 얇은 모래들은 맨발에 보드랍게 밟혔다. 다음 걸음 내딛는 게 즐거웠다.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계속 시도하는 것이니까. 내일은 다시 새로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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