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돌아왔다. 한 달 만에 마주한 집은 똑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어제 집 밖으로 나와 오늘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변화된 느낌보다는 익숙한 느낌들만 넘쳐났다. 밤낮이 바뀌는 시차는 어쩔 수 없어, 며칠 동안은 대낮에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숙제처럼 쌓여있던 먹고 싶은 한식들은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나도 아내도 변화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수백 장의 사진들과 몇 가지 기념품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행을 다녀온 흔적의 전부였다.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고 다녀온 여행은 아니었지만, 막연하게 ‘좋았다’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특별한 언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시작할 때부터 거창한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여행에서 치열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지내며 당시의 생활과 감정에 충실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세상의 전부일 것만 같았던 내 일상의 시공간들을 새롭게 맞이한 것. 화려하거나 놀라운 세상을 만나 내 머릿속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드는 일은 없었지만, 일상이 재구성된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은 예전의 모습을 벗어냈다.
아직 세상의 변화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삶의 출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연결.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지식과 경험들 외에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가 새로운 혹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실제 그러한 일을 해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다양한 분야에 많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식의 바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낚시가 많다. 때때로 연결된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비용을 요구할 때도 있다. 누구나 원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못 하는 연결을 나부터 시도해보려고 한다.
이 시도가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렇지만 맥없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 또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강하다. 사실 새로운 시작이니 만큼 엄청난 기대와 긍정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도 괜찮은데, 서른 중반을 지나친 나이가 이럴 때는 소용이 있나 보다. 긍정적인 전망만큼이나 부정적인 전망 또한 최면을 걸 듯 강하게 하고 있는 덕분에 오히려 담담한 기분이다. 그저 이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도 도움을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그걸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변화를 위한 나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은 요즘의 여행에서 이 기록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이야기다. 세계 곳곳을 오랜 기간 방랑객처럼 누비고 다니는 여행기, 눈에 띄는 사진과 특별한 경험담으로 채워진 여행기에 비해 이 이야기는 기록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린다.
그러나 이 기록은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에서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사실 정해진 것 없는 이 길을 향한 새로운 출발은 누군가 보기에 쓸데없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문득 내가 지나쳐버린 것들을 아쉬워하거나 다시 누리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을 향해 걷지 않으면, 그런 시절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한번 그쪽으로 가볼걸’
서른 중반을 지나쳤음에도 무모한 지금의 내가, 실패라는 이름을 다시 마주치더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가지 않은 그 길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다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