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트루아(Troyes).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주어진 하루를 온전하게 보낼 곳을, 아내와 나는 기차 시간표에서 선택했다. 가지고 간 여행 가이드북에는 찾을 수 없는 지명이었다. 굳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무심코 확인한 검색 결과 역시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거의 없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DSLR과 가이드북 등을 넣어 다니던 가방은 숙소에 둔 채로 기차를 탔다.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서 내린 그곳은 그저 한산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대합실에 있는 도시의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해독할 수 없는 불어는 당연히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그림으로 성당임을 알 수 있게 표시해놓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상 역에서부터 계속 직진만 하면 닿을 수 있었다.
역 밖으로 나서자 함께 내렸던 몇 안 되는 사람들마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정표처럼 따라 걷던 큰길은 금세 사라지고 골목길들이 나타났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집들이 나타났다. 대도시에서 볼 수 있던 화려한 형태의 집들은 아니었지만, 한 눈에 보아도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 이었다. 한산한 몇 개의 거리를 지나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외벽 모서리에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이드로 추정되는 남자가 조각상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프랑스식 영어가 꾸준하게 거리에 울려 퍼졌다. 주의 깊게 듣고 있는 여행객들의 대다수는 한 눈에 보아도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다.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 궁금함에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귀동냥도 도둑질 인가하는 자격지심에 근처만 서성거렸다. 동양인 남녀가 가까이 다가간다고 놀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근처에 다가간 우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 지방도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거리에서 마주친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즐겁고 흥미로운 것 같았다.
나에게도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무엇인가를 보든, 먹든, 경험하든, 새로운 것을 찾아 가는 것이 여행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것이 항상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것일 필요는 없다. 매일 반복적으로 걷던 출근길을 조금만 바꿔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쳇바퀴 구르듯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탈출이 여행이라면, 여행은 꼭 화려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 물 마시듯,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어딘가로 향했던 것 같다.
무엇을 위해 방문하지 않은 트루아에서 유일하게 목적지로 정했던 커다란 성당에 도착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생피에르생폴 대성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성당은 도시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웅장했다. 외부는 노트르담 성당을 닮았지만, 내부는 훨씬 밝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이었지만, 한동안 다시 보기는 어려운 풍경이었다.
성당을 나와 걷다 보니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와 마주쳤다. 운하의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현대미술품들이 이채로웠다. 조용히 흘러가는 운하, 푸른 바탕에 군데군데 뜯어놓은 구름들 그리고 그 사이를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이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득 트루아라는 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에 오르자 실감이 났다. 한 달 동안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던 기차는 한동안 한국에서나 타게 될 것이었다. 캐리어를 양손에 들고 기차에 오르던 모습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 모습이었다.
마지막 밤은 샴페인과 함께 했다. 한 달을 빠듯하게 생활한 덕분에 샴페인 한 병 정도는 여유 있게 마실 수 있었다. 마땅한 안주가 없어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슬프지 않았다. 때로는 꿈꾸듯 때로는 현실이듯 한 달이 지났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만큼이나 만들어내겠다는 설렘도 생겨났다. 늘 그렇듯 여행은 계속 새롭게 다시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