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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Nov 21. 2015

파리 #1
-적응의 시작-

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양손에 캐리어 두 개를 꽉 쥐고는 지상으로 나왔다. 항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파리의 중심지가 아닌 약간 외곽인 벵센느(Vincennes)여서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우선 숙소로 가는 것이 가장 급했다. 길 자체가 복잡하지 않아 많이 헤매지 않고 숙소를 찾았고, 열쇠를 받기 위해서 숙소 주인의 친구가 일한다는 근처의 미용실로 향했다.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동양인 남자여서인지 아니면 영어를 잘 못해서인지, 날 보자마자 별다른 확인이나 이야기 없이 바로 숙소 열쇠를 내주었다.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아닌 누군가의 집에 묵는다는 것이 사실 묘했다. 십 년 전 배낭여행을 했을 때는 한인민박에 몇 번 묵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곳은 사실상 영업 공간이 아닌가. 그에 반해 이 곳은 누군가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는 집이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확실히 대중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을 하면 맡게 되는 그 집의 냄새. 먹는 것, 바르는 것, 놔두는 것 등 때문에 생기는 그 집만의 향기. 무엇이라고 비슷한 향을 찾을 수 없었지만, 프랑스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 에어컨이 없어 와이프가 잠깐 걱정을 했지만, 정작 파리에 있을 때는 더위보다는 해가 없을 때의 쌀쌀함에 감기를 걱정해야 했다. 서둘러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도착한 날 어느 정도 파리를 돌아다닐 계획은 있었지만, 사실 크게 그 계획대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에 첫날부터 무리를 했다가는 전체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기내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육체적 상황과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급격한 배고픔으로 날아왔다. 우선 집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몇 군데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곁눈질로 가격표를 보면서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가격이야 숫자로 되어 있어 큰 문제는 없었는데, 오직 프랑스어로 채워진 메뉴판 덕분에 어디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적당히 사람들이 먹는 걸 살펴본 후 스테이크를 파는 것 같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점원이 손짓 발짓에 적당히 영어를 섞어 설명해줘서 수프, 라비올리, 스테이크 등을 주문했다. 스테이크는 소 안심을 얇게 썰어서 구워낸 것이었는데 정말 잘 구웠다라는 찬사를 줄만한 맛이었다. (와이프는 아직도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 중  그때 그 스테이크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의 나름 저렴하게 파는 메뉴 중에서 골라 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식사는 확실히 맛이 있었다. 특히 와이프는 나름 최선을 다해 서빙을 하는 점원에게 감동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에서의 첫 식사라는 의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메뉴 선택을 못해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어도 별다른 눈치를 주지 않은 그 식당의 분위기와 점원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만족스러운 첫 끼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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