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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Mar 26. 2016

열심히 살았더니 파산했습니다

'노후파산'을 읽고

[출처 :  다음]


 일본 NHK스페셜 제작팀이 만든 이 책은 이 문장 하나로 요약된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며 살았지만 노인이 된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파산뿐이다.’     


한국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연금을 저축해서 노후를 대비한 일본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약 200만 명의 노인들이 파산상태에 처해있다. 월 100만원 남짓의 생활비를 연금으로 해결하는 상황에서, 몸이 아파 의료비를 추가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노인들의 선택지는 식비를 줄이는 것뿐이다. 그러기에 다음 달 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이 가까올 무렵, 두 뭉텅이에 1000원하는 국수 한 뭉텅이가 하루의 전체 식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가지고 있는 1000만원의 예금 때문에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장례비로 남겨 놓은 돈이라는 노인의 대답에, 예금이 없어지면 국가에서 지원해줄 것이라는 반응은 그 노인에게 얼마나 믿음직한 응답이었을까?


예전 사진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여행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체념섞인 소망을 내뱉는 노인은 여행은커녕 자신의 죽음에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돈이 없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사회적 유대감’으로 정의되는 가까운 누군가와의 만남마저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은 드러내고 있다.     


진정 아이러니한 것은 노후파산에 직면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젊은 시절 회사를 다니며 연금을 가입했고 지금 그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연금 수령액 또한 한국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2014년 12월 기준 한국 국민연금 월평균급여액 : 323,280원, 30만원 미만 수급자 전체의 61.1%)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일본의 노후파산이라는 현실이 한국에는 더욱 강력한 힘으로 들이닥칠 가능성이 큰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2010년 기준 OECD가 발표한 노인빈곤율이다.                     

[출처 : 「2014 국민연금 생생통계」에서 재구성, 국민연금연구원]

노인빈곤율이 한국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일본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의 상황이 일본보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누가보아도 합리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연금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을까? 기본적으로 연금은 현재의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구조다. 따라서 경제가 규모면에서 계속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노동이 힘든 노년층대비 노동가능인구가 많으면 노년층은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인구구조는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 「2014 국민연금 생생통계」에서 재구성, 국민연금연구원]

2014년에는 5.8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했다면 2040년에는 1.7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문제는 2040년이라는 숫자가 현재의 인구구조에서 가지는 의미이다. 인구통계학으로 경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해리 덴트의 『2018 인구절벽이 온다』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보다 22년 후행해서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베이비붐세대가 일본보다 22년 뒤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덴트는 설명하고 있다.(일본의 최대 출산시점 1949년, 한국의 최대 출산시점 1971년)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과 경제성장의 강력한 상관관계를 주장하는 이 책의 논지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할지라도, 한국이 일본보다 20년 정도의 시차를 가지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하면, 지금 일본이 경제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큰 변동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한국에 20년 뒤에 나타난다는 것이 된다. 앞서 제시한 2040년 즉 지금부터 20년 정도 뒤에는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현상을 한국이 겪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2013년 OECD 통계 기준 일본의 노년부양비는 40.4이며 1명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한 생산가능인구는 2.5명이라는 사실이다. 즉 2040년의 한국(노년부양비 57.2, 노인 1명 부양 생산가능인구 1.7명)이 현재의 일본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은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혹자는 한국은 주택소유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주택연금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6년 2월 기준 3억원의 주택을 가진 65세의 노인이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80만 9천원이다.(출처 :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서의 월 평균 국민연금액과 합치면 월 110만원 정도의 금액이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2015년 기준 1인가구의 최저생계비는 61만 7천원이며, 2인가구는 105만 1천원이다. 즉 빚 없는 3억원의 주택을 소유하고 1명이 평균의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노부부의 경우 최저생계비는 보장받는 셈이다. 


그런데 2040년 기준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현재 41세 이상의 사람들이다. 지금 주택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30대 중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이 3억원의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지금의 노년층보다 쉬울까?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본인의 소득 또한 일정하게 성장하고, 해당 소득원이 유지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일반적인 2~30대가 향후에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3억원의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책에서 재정적자의 문제 때문인지 연금수급액이 5% 정도 감소하게 되자, 한 노인은 천천히 말고 한 번에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젊은 시절 제빵회사를 열심히 다녔던 노인은 단팥빵이 먹고 싶다고 한다.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1000원짜리 단팥빵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노후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저성장이 현실화된 지금의 시점에서 전체적인 생산과 분배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야 한다. 들이닥치는 파산의 파도는 점차 높아지고 넓어질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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