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게릴라라는 느낌을 이만큼이나 강하게 드러내는 이미지가 또 있을까? 그러나 저항과 혁명을 상징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요즘에 국한한다면 역설적이게도 상업적인 용도의 이미지로 꽤나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통해 그의 인생을 알게 된다면, 이미지로만 소비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체 게바라에 관해 열광하는 작가가 마치 신을 숭배하는 신도의 마음으로 오랜 시간 자료를 수집해 만들어낸 한 편의 멋들어진 예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전진을 외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단련하며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체 게바라의 모습은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라도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발작처럼 찾아오는 천식이라는 육체적 고통과 의사라는 직업은, 동일한 조건의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안락한 삶을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해방이라는 거대하면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인생의 목표로 선택한다.
전투와 행군 속에서도 틈 날 때마다 이어지는 스스로의 학습과 동료들에 대한 가르침은 이런 어리둥절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진정 가능한 일인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체 게바라는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다루었다.
사실 필자는 이번에 이 책을 정확하게 네 번째 읽었다. 술술 읽을 수 있음에도 쉽게 손을 뻗치지 않았고 뻗칠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에 가로 막혀있다는 느낌이 들고 편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픈 마음이 넘쳐날 때 그리고 꼭 이 책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럴 때 이 책을 읽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그리고 4년 뒤 석사과정 그리고 6년 뒤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4년 뒤 지금. 흘러버린 시간만큼 책의 겉모습은 시간의 때를 품게 되었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하다.
젊어서 맑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는 자는 바보요, 나이가 들어서도 맑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라는 칼 포퍼의 말은 전반적으로 합당한 것인지는 몰라도 끝없이 자신이라는 달걀로 체제라는 바위를 때려 대는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는 평가일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로 정치라는 이슈가 많은 미디어에 도배되고 있는 요즘. 입법기관이라는 권력을 얻고자 하는 개인의 권력의지와 자원의 분배와 관련해 정의라는 사회적 문제가 교차하는 선거판에 체 게바라만큼이나 스스로를 단련하고 본인의 꿈을 향해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혹여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라 해도 무엇인가에 자신의 존재가 흔들려 고민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누가 보아도 죽음이 당연한 상황을 계속해서 부딪쳐 나가는 그 모습, 그리고 스스로를 쉼 없이 단련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왠지 모를 감동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