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베르사유 궁전에 왔다. 전날 많은 그림 덕분에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잠을 충분히 자서 그런지 몸 상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십 년 전에 이미 대면한 것임에도, 화려하게 꾸며 놓은 궁전과 엄청난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정원은 여전히 얼떨떨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화려함과 웅장함만큼이나 날 놀라게 했던 것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었다.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국적의 다양함이 무색할 만큼 궁전과 정원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정원은 무척 드넓어서 돌아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궁전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것에 압도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압도할 만한 것은 세상에 드물다. 빈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곳곳을 장식과 조각, 그림으로 채워놓은 궁전과 나뭇잎 하나까지 줄을 세워 놓은 정원은, 세상에 희귀하게 존재하는 ‘압도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압도적이지만 동시에 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압도적인 건축물이 주는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권력의 강화와 과시를 위해 탄생되었을 것이 분명한 이 공간에 대해 한편 씁쓸했다. 이왕 궁전을 짓는 것이라면 크고 멋지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살지도 못 하고 누리지도 못 할 공간을 위해 온몸이 부서질 만큼 일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흔한 생각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수준’이라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어렵겠지만, 베르사유 궁전은 분명 ‘과한 수준’의 건축물일 것이다. 물론 덕분에 루이 14세 조차 꼼꼼히 보지 못했을, 화려하고 웅대한 궁전과 정원을 지금의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구석구석 볼 수 있게는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