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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Nov 27. 2015

1년 전 규슈에서

Intermission #0

분수가 솟아오르듯 뿜어대는 빗줄기 속을 뚫고 이부스키로 향하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은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을 때 가장 큰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비에 대해 야속한 느낌이 많았지만, 어느덧 이런 비가 싫기 보다는 오히려 이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덜컹거리는 관광열차 속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지만, 그 주변을 부산한 빗줄기가 감싸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끝이 없는 여정 속에서 잠시 만난 침대칸에서의 쪽잠이 너무 고마운 것처럼, 투박함이 일본식의 박력 있음을 만나 편안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사실 둘째 날이다. 첫째 날은 일상에서의 벗어남을 배우는 날이고, 둘째 날에야 비로소 다른 공간 속에 있는 순수한 나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어제의 배움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바뀐 오늘을 다시 살아야 하는 건,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인간에게는 어쩌면 숙명 같은 것이기에 나 또한 오롯이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 둘째 날을 지내야겠다.



차창 너머 만난 바다를 향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나도 신이 난다. 박력 있는 이 이부스키행 열차처럼, 기차 너머 뿜어대는 빗줄기처럼, 이번 여행 속에서 내 존재가 한껏 솟아오르기를 바란다.



                                                                                                                                                2014년 7월 31일


                                                                              -괜한 귀찮음에 예전 글들을 뒤적거리다가 툭툭하고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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