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의 미래에 대한 작은 생각 #1
2020년 3월 23일 미국 다우 산업 지수가 급격히 하락해 19,000선이 붕괴되었다. 최근 3년을 기준으로 지수가 18,000선으로 내려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의 주식시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월 19일 종합주가지수가 1,400선으로 내려간 뒤 다음날 1,500선을 회복하자마자 그 다음 영업일인 3월 23일에는 다시 1,400선으로 내려갔다.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가 1,400선으로 하락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식시장이 이렇게나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 이유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 탓에 주식 시장의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근거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식시장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암울한 미래’는 투자자로 하여금 주식을 팔아치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주식만 그러했겠는가? 채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금융상품에 대한 대대적인 매도 공세와 가격 하락이 당시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최대한 자산을 현금화해서 가지고 있으려는 투자자들이 사들인 자산이 있다. 아니 구체적으로 자산이라기보다는 어떤 ‘현금’이 있다. 바로 미국 달러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3월 19일 최근 10년을 통틀어 최고치인 103.60을 기록한다. 원-달러 환율 또한 3월 20일 1,296원까지 폭등한다. 물론 이 환율도 최근 10년 동안 최고치이다. 이쯤 되면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달러를 못 사서 안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자산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위험이 없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것은 금이다. 그런데 금마저도 당시에는 꽤나 큰 폭으로 가격이 하락했었다(1,600원 대에서 1,400원대까지 하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중품으로 여겨지는 금마저도 사람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상황에서 달러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취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지극히 단순하게만 이야기하면 달러는 그저 종이에 잉크를 칠해놓은 것에 불과한 데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2020년 3월 당시 혼란스러웠던 전 세계 금융시장을 진정시켰던 조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당시 발표한 정책을 언론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3일(현지시각) 달러 유동성 ‘무제한 공급’이라는 미증유의 대책을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제2차 통화정책’으로 내놓았다. 지난 16일 1차로 내놓은 정책금리 ‘제로’ 수단으로는 기업·가계·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에 퍼지고 있는 ‘달러 확보 전쟁’ 불길을 누그러뜨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도박을 걸듯이 경제 동맥 수혈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은 그동안 양적완화를 발표할 때 자산 매입 규모와 기간을 명시해왔으나 이번에는 둘 다 언급하지 않은 채 “필요한 모든 조처를 동원하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겠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연준이 “바닥 없는 달러 공급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책 실험에 나섰다”고 전했다. 16일 정책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7천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재가동을 발표한 뒤 날마다 400억달러씩 매입에 나섰음에도 달러 확보 전쟁이 더 극심해지자 극단적 처방을 꺼내 든 셈이다.
연준은 성명에서 “민간과 공공 부문을 가릴 것 없이 실직과 소득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모든 조처가 동원돼야 할 때다. 코로나가 진정될 즈음에 경제가 기민하게 회복세로 돌아서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활동 중단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기업·가계·은행 그리고 정부부문까지 월급 지급 등을 위한 달러 현금 수요가 폭증하자, 연준이 수도꼭지를 틀듯이 금융시스템에 현금을 주입하고 나선 셈이다.
-한겨레, 2020.3.24, "미국 연준, 수도꼭지 틀 듯 달러 풀어 ‘불끄기’"
2020년 3월 23일 미 연방준비제도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미국 다우 지수는 최저점을 벗어나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증시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사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이와 비슷한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었다. ‘양적완화’ 정책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시중의 채권(국공채, 주택저당증권 등)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시중에 현금이 풀리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경기가 좋아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인 높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어난 현상만 가지고 지극히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전 세계적으로 금융 부문에 위기가 발생하면 달러를 많이 공급하면 된다는 묘한 명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달러는 금처럼 채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인쇄기로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미국 달러는 미국 돈이니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에 가깝게 찍어낼 수 있다. 만약 한국이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내도 괜찮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화폐를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이션 즉 물가가 상승해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인플레이션 조차 발생하고 있지 않다.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2008년부터 어마어마하게 돈을 찍어내고 있고 최근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더욱더 어마어마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일어나고 있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물가 목표가 2%인 것을 감안하면 해당 목표를 달성한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율이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 이제 거칠지만 심플하게 정리해보자. 전 세계적으로 경제, 금융에 위기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은 그 무엇보다도 달러를 찾게 되고 이에 미국이 맨 종이에 잉크를 묻혀 달러를 찍어내면 위기 상황은 일단 잠잠해지는 모습.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아니 미국 달러가 무엇이기에 이런 지위를 가지게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계속 이런 것이 가능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국 달러가 이런 위치에 이르게 된 이유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