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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Dec 14. 2020

미국 달러가 세계 최강이 된 이유는?

미국 달러의 미래에 대한 작은 생각 #2


현재 미국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화폐다.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무역 결제의 약 50%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무역 결제뿐만 아니라 외환 거래에 있어서도 전체 거래의 절반 정도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각국의 중앙은행이 대외 지급 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외환준비금)에서도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다. 사실 무역 결제, 외환 거래, 외환준비금 등과 같은 자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미국 달러가 현재 세계에서 제일 널리 쓰이는 화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달러가 이러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 달러가 공식적으로 세계 통화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은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세계 모든 화폐 중에서 미국의 달러만이 금과 고정 비율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고(금 1온스 당 35달러) 다른 화폐는 금 대신 달러와 고정 환율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통화체제이다.   


기본적으로 화폐가 다른 국가끼리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다른 화폐를 매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외환거래가 활성화되어 주요 외화를 구입하고 매각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특정 국가 입장에서 외국 화폐는 해당 국가의 상품을 구입하는 일이 아니면 사용할 곳이 없는 돈이다. 게다가 무역을 위해 특정한 국가의 화폐를 구입했는데 갑자기 해당 화폐의 가치가 심하게 낮아지게 되면 해당 화폐를 구입한 쪽은 심각한 손해를 입게 된다. 결국 다른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끼리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공통으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일반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 바로 금이었다.


금은 오랫동안 세계 무역을 위한 화폐로 이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무역량에 대비해 금의 제한적인 생산량 증가, 이동과 보관의 문제 등으로 인해 무거운 금덩어리를 대규모 무역 결제에 활용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금 자체보다는 금에 특정 국가의 화폐 가치를 고정시켜서 활용하는 금본위제를 통해 오랜 시간 국제 무역이 이루어져 왔다. 금본위제의 시대에 주요한 세계 통화로 먼저 자리 잡은 것은 영국의 파운드화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세계의 중심적인 통화가 되고 이후 미국의 달러가 세계 통화가 된 것에 대해 이 분야의 전문가인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런던이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된 이유는 자명했다. 영국은 최초로 산업경제를 일군 최대 교역국이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런던의 금융시장도 커져갔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은 이미 잘 개발된 은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1694년에 프랑스와 전쟁을 치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된 영국은행은 현대적 중앙은행의 기능을 수행했다. 또한 금본위제에 따라 영국의 화폐는 안정된 가치를 자랑했다.
...(중략)...
19세기 무렵 런던은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들은 런던에서 부채를 상환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외국과의 교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영국은 해외투자도 많이 했다. 영국 은행들은 해외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파운드를 기준통화로 삼았다. 파운드 대출이 보편화되면서 해외 정부들도 결제의 편의성을 위해 런던에 계좌를 개설했다. 이 계좌들은 이후 '보유고'가 되었다.

영국은 또한 원자재와 곡물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요 상품 거래소인 맨체스터 면화거래소, 리버풀 옥수수시장, 런던 금시장이 생겨났다. 영국은 운송과 보험 같은 교역 관련 서비스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런던은 국제무역에 필요한 신용을 얻는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 은행들은 교역의 편의를 위해 모든 신용을 파운드로 제공했다. 그 결과 파운드가 국제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어섰다.

 ...(중략)...

2차대전 후 25년 동안 달러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2차대전을 통해 국력이 강화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미국 경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다(냉전이 격화되면서 갈수록 고립된 소련은 집계에서 제외). 달러는 전 세계에 걸쳐 자유롭게 거래되는 유일한 통화가 되었다.

달러는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지배적인 통화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밖에서도 달러는 금만큼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은 온스당 35달러라는 고정된 가격에 금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격은 1934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정한 것이다. 미국은 2차대전 후에도 이 가격을 고수할 것임을 재확인시켰고, IMF에 달러의 액면가를 신고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국제통화체제를 관리하기 위해 창설된 IMF의 합의문을 달러를 국가별 환율의 기준으로 삼아서 고유한 지위를 인정했다. 경쟁통화의 발행국인 독일은 개방된 금융시장이 없었고, 프랑스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뒤떨어졌다. 영국은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달러는 지배적인 국제통화일 뿐만 아니라 영연방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국제통화였다.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금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의 공급량은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국제적 평판이 나쁜 소련과 남아프리카가 주요 공급처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매입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달러와 미국에 독보적인 위상을 부여했다. 미국의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해외의 상품과 기업을 사들여도 미국 정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나라들은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유일한 보유통화가 된 달러를 쌓아두기에 바빴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자크 루에프의 표현에 따르면 미국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무역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외의 상품과 기업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자원을 그냥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프랑스 재무상이 불평했던, 바로 그 과도한 특권이었다.
-아이켄그린, 2011, [달러 제국의 몰락]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사실 세계 통화가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금에 가치가 연동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갑작스레 미국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대다수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금에 연동된 달러가 더 이상 금과 연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 달러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영국 파운드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세계 통화로의 지위를 잃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실제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각국 통화가 차지하는 비율을 아래 [표]에서 살펴보면, 미국 달러의 비중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감소했지만 다른 통화에 비해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표]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통화 구성 (단위 : %)

자료 : 아이켄그린, 1996, [글로벌 불균형]과 IMF(https://data.imf.org) 자료 활용해 필자 작성

 주 : 반올림으로 합계가 100이 되지 않을 수 있음.


외환보유고만이겠는가? 필자가 앞선 글(달러는 무제한으로 찍어내도 괜찮다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계 금융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달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신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금'과 더 이상 가치가 안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미국 달러가 왜 국제적으로 신뢰를 받을까? 가장 큰 이유는 대체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아이켄그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처럼 달러의 몰락에 대한 예측과 현실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몰락할 것이라는 말이 많아도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며,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렇다.
 
게다가 달러는 현직 프리미엄을 누린다. 어떤 통화로 가격을 매길지 고민하는 수출기업들을 생각해보라. 수출기업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경쟁상품에 대비하여 가격 변동을 되도록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기업들이 달러로 거래를 하면 따라 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른 국제거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달러는 대다수 국제거래에 사용되면서 외환시장에서도 핵심적인 통화로 자리잡았다. 다른 나라의 수출기업들은 공급업체, 직원, 주주들에게 돈을 주려면 먼저 이익금을 자국통화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달러는 통화선물시장도 주도하게 되었다. 수출기업들은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예상 밖의 환율변동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 수출기업들도 상품 수출기업들처럼 고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경쟁자와 같은 통화로 가격을 매긴다. 따라서 과거에 국제 채권이 달러로 표시되었다는 사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지속되는 경향을 만든다.
 
중앙은행들 역시 미국이 더 이상 교역과 금융거래의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달러를 기준으로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른 중앙은행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러에 대비하여 환율을 안정시키면 다른 많은 나라의 통화에 대비해서도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 또한 달러는 통화정책의 기반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선뜻 불확실한 변화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은행들은 해외부채를 표시하고 교역에 사용하는 통화를 보유하고 싶어한다. 보유고를 운용하는 목적은 해외부채와 교역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은행들은 환율기준으로 삼는 통화를 보유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은 투자 수익을 반기는 동시에 보유고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제한하고 싶어한다. 또한 환율기준으로 삼는 통화는 구매력 측면에서 가장 큰 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배적인 기준통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2009년 중반 기준으로 유로에 연동된 통화는 27개인데 비해 달러에 연동된 통화는 54개나 된다. 중앙은행들이 보유통화를 다변화하려면 달러 외 다른 통화로 표시되는 채권시장과 예금시장이 미국만큼 풍부한 유동성을 가져야 한다. 이 계산은 보유고 포트폴리오를 통해 안정성과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가정은 비현실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준을 느슨하게 할수록 달러에게 유리할 뿐이다.

중앙은행들은 원활하게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유동적인 자산을 보유하고 싶어한다. 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자산은 시장 조작에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국채시장이 회전율이나 거래비용 측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졌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 국채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시장이다. 이 사실은 미국의 경제 규모와 금융시장의 발전도를 반영한다. 기존 구도는 자기 강화적 속성을 띠고 있다. 미 국채시장은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해외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새롭게 유입된 해외투자자들은 미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늘려준다. 따라서 현직 프리미엄은 국제금융 중심지가 되기 위한 경쟁뿐만 아니라 보유통화가 되기 위한 경쟁에도 도움을 준다. 물론 현직 프리미엄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통화별 가격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비용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향후 그 이점이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융계에서도 현직의 이점은 무시할 수 없다. 재선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달러가 밀려날 것이라고 보기 힘든 유일한 이유가 바로 현직 프리미엄이다.   
-아이켄그린, 2011, [달러 제국의 몰락]


무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특정 국가의 중앙은행이 자국 화폐와 관련해 가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목표는 '안정성'이다. 수출과 수입 과정에서 환율이 급등락을 한다면 그에 대한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수출과 수입을 딱 한 번만 하고 안 할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거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수출입으로 인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획이라는 것을 짤 수가 없게 된다. 경제 활동에서 가장 치명적인 예측불허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장 많이 쓰이는 외화를 보유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보유한 외화를 필요시 즉각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외화가 쉽게 거래될 수 있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다른 화폐들은 없는 것일까? 다른 화폐들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현재 회의론이 팽배하지만 유로는 외환시장 거래의 31%, 국제보유고의 28%를 차지한다. 유로는 한참 뒤처지기는 하지만 국제통화를 향한 모든 경쟁부문에서 당당히 2위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로가 더 빨리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유로는 아직 나온 지 10년 남짓밖에 안 된 신생 통화다. 또한 유럽의 채권시장은 미국보다 작고 유동성이 부족하다. 독일 국채는 안정성을 높이 평가받지만 유통량이 미 국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기금과 보험사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채권의 대부분을 만기때까지 보유하기 때문에 유동성이 더욱 떨어진다. 다른 유로 국가들은 더 많은 채권을 유통시키지만 안정성이 뒤떨어진다. 가령 이탈리아 국채는 유로존에서 가장 많은 발행액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불안한 경제 전망 때문에 보유가치가 떨어진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국채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유로가 나라 없는 통화라는 것이다. 즉, 단일 국가의 정부가 아니라 회원국 정부가 전체 유로를 뒷받침한다.
 ...(중략)...
단일 정부의 부재는 달러에 대항하는 유로의 힘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유럽에 경제적 문제가 생기면 회원국 사이의 복잡한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한다. 가령 한 나라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재정위기에 빠지면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한 다음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어렵고, 합의가 결렬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상 밖의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섣불리 유로를 축적하기가 어렵다.
-아이켄그린, 2011, [달러 제국의 몰락]


이렇게 달러의 위치가 공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 경제의 규모와 금융 시장의 크기가 세계 1위이며, 달러 표시 증권의 유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오랫동안 국제 통화 역할을 해왔다는 관성이 여타국 경제활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리고 대안적 국제 화폐로서 거론되는 통화들의 약점을 따져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파운드스털링이나 스위스 프랑은 영국 경제의 규모가 미국의 1/6, 스위스는 1/30밖에 안 되어 경쟁 상대가 못 된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훨씬 큰 나라이지만 일본 정부가 오래 전부터 경쟁적 환율유지와 산업 정책 추진을 위해 엔화의 국제적 사용을 꺼렸던 유산이 있는데다가 이자율이 제로에 가까워 엔화가 외국인에게 매력을 잃었다. 중국의 인민폐는 중국 금융 시장의 성숙도가 낮아 중국 스스로도 인민폐의 국제 화폐 지위 달성 목표를 2020년으로 잡고 있다. 흑자국인 데다가 주변부와 보완적이기보다 경쟁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이 목표도 달성이 쉬워보이지 않는다.
-양동휴, 2015, [화폐와 금융의 역사 연구]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미국 달러의 대체제는 없다. 덕분에 미국은 종이에 잉크를 묻히기만 해도 값어치가 생기는 '달러'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달러의 위상으로 미국이 누리는 혜택이 무엇일까?


현재 미국이 가장 강력하게 누리고 있는 혜택은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원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게 되면 적자가 발생한 국가의 화폐가치가 떨어져 수출경쟁력이 상승해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화폐가치가 떨어져 수입물가가 상승하고 그로 인해 구매력이 떨어지는 현상 또한 발생한다.


미국 경상수지 현황(1960~2013) [출처 :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그런데 현재는 미국이 막대한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해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달러로 표시된 외환준비금(미국 재무부 채권 등)을 계속해서 매입함에 따라 달러의 가치가 유지되는 상황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미국은 돈을 찍어낼 수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관련해서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제 경쟁력 하락 때문에 경상 수지 적자가 계속 쌓이는데도 이를 조정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의 저축이 늘어야 하는데 민간 소비도 줄지 않고 정부 재정은 적자를 키운다. 달러 가치는 경착륙의 위험을 안고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이 3조 달러 이상, 기타 동아시아 흑자국을 합하면 5조 이상, 여기에 산유국이 2조 정도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팔지 않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달러 가치 하락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재정 적자도 재무부 증권 등을 중국이 계속 구입하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위 '안전 자산'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이다. 달러와 환율-페그를 한 나라들이 많을수록, 이 같은 '글로벌 임밸런스'의 상황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양동휴, 2015, [화폐와 금융의 역사 연구]


그런데 이러한 미국 달러의 위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지극히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미국이라는 국가가 찍어낸다는 이유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달러인데 말이다. 국제통화였던 영국의 파운드화가 미국의 달러로 대체되었던 것과 같은 그런 전환은 과연 일어나지 않을까? 사실 미국 달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이미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다음 글에서 미국 달러의 미래에 대해 세밀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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