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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Jul 23. 2018

장르의 불균형; <인랑>(2018)

인랑은 인랑이 될 수 있을까

* 카카오 브런치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 줄 감상
치열한 이미지, 안일한 서사


이런 관객이라면
배우들의 비주얼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지운 감독의 팬이라면.(단, 천상의 피조물과 같은 수준을 기대하지는 마시라.)


이런 날이라면
겨울날, 하얀 창문을 보다 문득. 애절한 로맨스를 보자니 심숭생숭하고. SF나 액션을 보자니 말랑말랑 한게 땡기고. 그런 날. (어쨌든 여름 감성은 아닌 걸로)


간단 소개
강동원이 졸라 멋있고. 한효주가 졸라 예쁘고. 그와중에 영화의 톤앤매너는 그 분위기를 더하고. 통일을 하려는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그렸다는데, 김지운 감독이 그려내는 그 공간 역시도 매력적이다.             

          


나 혼자 진지한 리뷰


영화 <인랑>을 보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검색 결과, 영화의 제작비는 190억 정도로 600만에서 7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를 넘는다고 했다.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내 생각엔, 아무리 많이 들어도 500만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영화의 수준을 평가하고자 하는 건방짐이 아니라, 오히려 이 영화의 흥행을 걱정하는 팬심에서 나오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고, 강동원과 정우성, 그리고 김무열의 팬이었으며, 무엇보다 한효주를 응원하는, 그런 팬으로서 걱정이 묻어난 행위였다.  


영화는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다. 대한민국의 통일이 달갑지 않은 주변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가 들어오고,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에 따라 통일에 반대하는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고,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한 새로운 경찰조직 ‘특기대’를 조직한다. 이에 입지가 줄어든 정보기관 ‘공안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섹트’와 ‘특기대’사이에서 음모를 꾸민다. 그 음모의 중심에는 최정예 특기대원 임중경(강동원)과 임중경 앞에서 자폭해 죽은 빨간 망토 소녀의 언니 이윤희(한효주)가 있다. 여기서 로맨스가 피어나는데, 이 지점이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이는 장르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이것은 앞서 말한 내 걱정의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장르는 관객과의 약속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관객은 스릴러 장르에 기대하는 바와 로맨스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 각 특정 장르가 관객과 약속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인랑>은 SF장르를 표방하나, 로맨스로 귀결되는 서사 구조를 지닌다. 강동원과 한효주의 비주얼 자체가 없던 사랑도 만들어낼 만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로맨스가 아닌 SF를 기대하고 온 관객에겐, 배반감이 들 수 있다. 관객은 로맨스가 주는 애절함보다 SF의 쾌감과 상상력을 바랬을 테다. 자신이 기대한 바를 오롯이 충족하지 못한 관객은, 이 영화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동원과 한효주가 아름답고 애달파도 말이다.


영화는 로맨스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의 미덕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한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 <인랑>을 두고, “<인랑>의 세계는 다양한 장르 영화의 요소와 재미들을 한 영화 안에 담게 하는 최초의 경험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인랑>은 SF의 상상력과 액션의 쾌감, 스릴러 또는 첩보물의 긴장감, 거기다 로맨스의 애절함까지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같이 시사회를 보고 나온 관객 다수는 이 지점에서 영화 바깥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SF적 상상력이 드러나고, 액션에 집중하는 초반 30~40분(남산 타워 액션 시퀀스)까지는 다들 흥미롭게 영화를 관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갈피를 못 잡게 된 후반부터는 영화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강동원 혼자 지하 수로에서 공안부를 몰살하는 장면은 그 폐해를 보여준다. SF의 탈을 쓴 강동원이 펼치는 액션은 어떤 쾌감이나 긴장감도 불러오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엔 아쉬운 것들이 많다. 장르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것은 서사의 실패이지 영화의 실패는 아니다. 물론 대중영화에서 흥행에 중요한 요소가 이야기일 테지만, 영화의 스펙터클 역시 영화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영화 <인랑>은 우리가 기대한 어느 정도의 스펙터클은 만족시켜준다. 김지운 감독이 그려낸 근미래의 대한민국 풍경은 현실감 있는 디스토피아다. 이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인 오묘한 감정을 일으켜 낯선 환기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남산 타워와 지하수로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을 담아내는 감독의 공간 활용은 액션의 쾌감을 배가시킨다(앞서 재미없다고 언급한 장면은 공간의 문제라기보다 캐릭터와 장르 활용의 문제다). 이때 잿빛 도시 속에서 연출되는 검정과 빨강의 대조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감독의 미장센 역시 디테일하다. 특기대 요원 김철진(최민호)이 섹트인 구미경(한예리)과 싸우는 공간은 인형뽑기 가게다. 이들은 거대한 권력에 의해 움직여지는 인형뽑기 기계 속 인형과도 같다. 권력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모습이 인형뽑기 가게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약자와 약자의 싸움으로 말이다. 이와 연장선상으로 현대사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 남산 타워에서 임중경이 공안부와 싸우는 장면이 있다. 이 역시 우리 현대사가 가진 굴곡진 아픔이 여전하다는 감독의 미장센이다. 추가적으로 감독이 구태여 카메라로 잡아내는 책들 역시 영화 전반의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그리고 더욱 힘주어 클로즈업까지 하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까지. (이 책들과 영화의 관계는 나중에 쓰도록 하겠다.)  


영화는 화려한 배우진 못지않게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김지운 감독이 빚어내는 영화적 쾌감은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아쉬운 것은 장르의 혼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서사의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강한 영화이니, 큰 스크린에서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SF장르의 기대가 큰 사람들은 실망을 느낄 테니, 서사에 대한 기대감은 버리고 가는 것이 좋겠다. 아무쪼록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만이라도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지운 감독이 <인류 멸망 보고서>의 한 꼭지인 「천상의 피조물」을 멋진 SF영화로 만들어낸 만큼, 다음엔 꼭 SF 팬들을 설레게 할 멋진 작품으로 돌아올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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