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나나,『황금무늬고양이와 이쪽저쪽 세계』 오하나 옮김, 열매하나
오키나와 서남단의 이리오모테섬에서 살고 있는 ‘이리오모테산고양이’는 현재 100마리도 채 남지 않은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성장과 개발만을 중시하는 인간의 욕심, 편의와 속도만을 주시하는 인간의 무심으로 인해 황금무늬를 지닌 이리오모테산고양이들은 점점 자신의 삶을 잃어가고 있다. “저는 제 목숨을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그들의 말에 삶으로 답해야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정성껏 준비해 선보이는 책마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의 씨앗을 가득 담아내는 열매하나 출판사의 신간 『황금무늬고양이와 이쪽저쪽 세계』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80억 사람 친구’들과 같이 펼치고 깊이 나누고 싶은 그림책이다.
우주와 지구, 세계와 어느 섬에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황금무늬고양이. 몇만 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서 여행을 계속해 온 황금무늬고양이는 항상 이렇게 중얼거린다. “글쎄, 저쪽 세계에서 보면 저쪽이 이쪽이고, 이쪽은 저쪽인데 말이지.” 아무도 듣지 않는 그 중얼거림은 마치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이쪽과 저쪽을 자의적으로 구분 짓고 그 사이에 단단한 경계를 세우는 이들에게 가 닿지 못하는.
어느 화창한 날, 황금무늬고양이는 저쪽 세계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쪽 세계 소녀와 만나게 된다. 소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황금무늬고양이의 마음에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 감정은 황금무늬고양이로 하여금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어 소녀와 둘이 ‘함께’인 삶으로 날아가도록 이끈다. 바람의 우주, 하늘의 우주, 빛의 우주로 나아가는 동안 소녀와 황금무늬고양이는 함께 별의 자리를 그려간다. 마음 속 우주에서 꺼지지 않는, 머리 위 우주에서 빛나고 있는 무수한 별을 연결해 가면서.
소녀는 저편의 이쪽 세계에 두고 온 가족, 친구들 또한 여기의 저쪽 세계에서 자신과 함께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삶을 이전보다 더 포근하게 감싸준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황금무늬 고양이는 자신이 지닌 황금 열쇠로 저쪽 세계의 문을 연다. 그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온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아름다웠던 저쪽 세계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무수한 움켜쥠으로 인해 급격히 꺼져가는 저쪽 세계의 별빛들은 어디에서 다시 빛날 수 있을까. 어디에서 새로 빛나고 있을까. 저쪽 세계의 사라진 아름다움이 빚어낸 의문 앞에서 슬피 훌쩍이는 소녀(와 독자)에게 황금무늬고양이는 언제나처럼 말한다. 저쪽과 이쪽 모두에 관해 성립될 수 없는 정의를.
이쪽과 저쪽 세계 모두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이쪽과 저쪽 세계 모두가 앞으로도 지속되기 위한 ‘조건’. 황금무늬고양이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지우고 이쪽과 저쪽의 행복 모두를 지킬 ‘비밀’을 80억 사람 친구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전한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과 사이를 지키는 친구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모두의 삶을 존중하는 따스한 관심과 사랑 한 조각씩을 그러모아 함께 지켜낼 ‘바람과 하늘과 빛의 우주’를 바라보면서. 그 소중한 비밀을 내 앞에 고이 올려두고서, 황금무늬고양이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사람 친구들이 만든 황금 열쇠로 열기를 바라는 것은 이쪽과 저쪽 모두를 파괴하는 무수한 ‘경계’이지 않을까. 동시에 황금무늬고양이 자신이 지닌 황금 열쇠로 닫기를 바라는 것은 이쪽과 저쪽 모두를 지키는 하나의 ‘울타리’이지 않을까.
책에 담긴 이야기만큼 이를 감싸고 있는 외적인 물성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황금무늬고양이와 이쪽저쪽 세계』. 검정 양장 표지에 톰슨(도무송) 가공 방식으로 뚫어 만들어낸 ‘구멍’이 어떤 의미인지, 그 뚫린 ‘구멍’ 안에 담겨있는 금색 별빛이 어떤 마음을 발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몇 번을 울컥했는지 모른다. 사람 친구에게 먼저 내어 보여준 마음 빛을 사람 친구들은 너무도 쉽게 움켜쥐거나 꺼트리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면서. 매 페이지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황금무늬고양이의 ‘금빛 무늬’는 반짝이는 ‘금빛 면지’와 더불어 각자와 서로의 마음 빛을 지키도록 격려하는 환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그림책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띠지’와 이야기를 닫는 (동시에 책을 만난 이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마지막 장’ 안에는 독자의 깊은 이해와 넓은 공감을 돕는 글이 적혀있다. 천천히 반복해 읽는 동안 충분히 전달되고 다정히 연결될 마음으로 쓰인.
한 권의 그림책에 빼곡하게 담아낸 모든 정성에 얼마나 감탄하고 어디까지 감동받을 수 있는지.
부족한 글로 표현하기에는 이 그림책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덧붙이는 말 1_
앞면지에서 마주한 황금무늬고양이의 말은, 조원희 작가님의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 그림책과 연결해 깊이 사유하고 싶은 문장이다. 작고 사소한 존재를 작고 사소하게 대하지 않으려는 큰 마음을 닮고 담고 싶을 때마다 들여다보고 싶은.
덧붙이는 말 2_
언젠가 <세상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그림책>의 목록을 만든다면, 이 그림책은 그 목록에 가장 먼저 포함될 책들 중의 한 권일테다.
* 이노우에 나나 글/그림, 『황금무늬고양이와 이쪽저쪽 세계』, 오하나 옮김, 열매하나 출판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