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감히 모험을 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위인전이면 죄다 좋은 책인 줄로만 알던 내 어렸던 날에 '헬렌 켈러'의 이야기도 어쩌면 그저 공허한 성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셀프 주유소에서 내 차에 가솔린을 주입하는 광경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살면서, 욕심에 눈이 멀고, 자기 연민에 귀를 닫고, 좌절에 말문이 막히는 체험들을 지나며, 그녀의 이야기에서 '장애의 극복'이 아니라 '존재의 고립'을 견디는 잔혹한 용기를 보게 되더군요.
만약 내가 그녀처럼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말까지 할 수 없다면, 글쎄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내 인성의 구조를 바꿀 만큼 창의적인 수준의 의식을 갖게 된다 해도, 위인으로 불릴 수 있다 해도, 그런 모험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눈먼 사람이 바라보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푸른 풀과 더 푸른 하늘입니다."*
19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자 헬렌 켈러도 그 꼭대기에 올랐더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시력을 잃은 그녀가 고층빌딩에 올라 인간의 위대한 업적의 상징을 식별한다."라고 대서특필을 했고, 사람들은, 순수함인지 불순함인지, 손가락 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녀에게 실제로 무엇을 '봤는지'를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녀는 한 장의 편지로 답을 하였습니다.
"발아래로 뉴욕이 경이로운 태피스트리로 펼쳐져 있었죠. 정말 짜릿했어요. 허드슨 강은 번쩍이는 검의 날 같았고, 맨해튼은 무지갯빛 물속에 둥지를 튼 보석 같았지요. 태양계가 내 머리 위를 맴돌았고, 행성 한 곳에 부동산 투자를 해볼까 싶은 거친 욕망도 일더군요. 우울과 힘든 시절의 감각이 사라지고 별들과 어울려 경솔해지고도 싶더니만, 은하수 별빛 속에서 문득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답니다."**
그 편지는 성인이 된 뒤 다시 읽은 위인전과 같았습니다.
뉴욕을 걸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내가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생각은 내 감정이 평범하게 변해갈 때 무심결에 돌아보아 내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아무 상관없는 그런 가정(假定)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장나라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두 살배기 아이를 품에 안고 결국 먼 뉴욕까지 날아왔습니다.
지린내 나는 뒷골목을 지나고 부랑자들의 그림자와 교차하며 34번가 가까이에 이르자 콘크리트 정글 뒤편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불쑥 솟았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대표성은 잃었어도, 사납고, 잿빛을 띠고, 구름 높이에서 빛나고, 하늘을 긁어댔습니다. 흔들리는 응시 속에 그 빌딩을 감싸 안았습니다.
커서 기억되지 않아도 남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며 400미터를 수직으로 날아올라, 드디어 102층 전망대에 섰습니다.
아이는 젖병을 물고 내 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는 아이의 두 눈을 내 눈 삼아 뉴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발아래로 뉴욕이 경이로운 태피스트리로 펼쳐져 있더군요. 정말 짜릿했습니다. 태양계가 내 머리 위를 도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 마치 별빛 속 스타 뷰 오두막에 든 것처럼요.
그때는 정말 믿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이라도,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인상으로 아빠가 대신 바라본 풍경이 남아 있기를요. 보지 않았어도 느낄 수 있고, 기억하지 않았어도 떠오르는 회상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날 하늘 높은 곳을 스치던 바람, 노을로 변해가던 빛, 그리고 그 곁에 오래 머물던 엄마와 아빠의 미소일 것입니다. — 아이가 커서 행여나 존재의 고립에 빠질 위험에 처한다면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는 등대 같은 것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여행책과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사라졌고, 세상을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보다 두 배 높은 부르즈 할리파가 있지만, 나는 여전히 먼지 쌓인 뉴욕의 사진을 꺼내 봅니다. 내 마음이 곧 마천루입니다. 그 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목적지도 모르고, 언제쯤 지칠지도 모른 채, 다만 — 그날의 바람이 내 안에서 다시 불고 있음을 느낍니다.
*헬렌 켈러가 남긴 말들
**블루밍드림 번역
표지사진: littlekidbigc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