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뒤쪽 나사 하나가 풀려 흔들흔들할 때에도

믿음만은 붙들어야지

by 블루밍드림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집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스스로 겁을 낼 때가 있다. 집착은 과욕을 낳고, 과욕은 실망을 남기니, 내 걷는 길 뒤로 고독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품 안의 바람, 품 안의 사랑, 그리고 품 안의 자식이랄까... 아이들은 그런 내가 또 얼마나 버거울까?


"여보세요?"

",,,,,,"

"말을 해."

"왜 아빠가 받아?"

"엄마 지금 설거지해."

"끊어."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끊어."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믿음이 없나 보다. "그러길래, 애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빠가 좀 되어 보라고." 텁텁한 맛의 그 잔소리는 술안주로도 참 별로다.




위스키 온 더 락 한잔에 내 고독이 노래져 갈 때, 하필 이런 글*을 읽었다.


제 딸이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군 입대를 하더군요. 제대로 된 결정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라크에서 전사한 친구의 묘지로 데려갔지요. 딸은 결국 입대를 했고, 1년쯤 지났을까, 그만 크게 다쳐 의병제대를 하게 되었죠. 곧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딸이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4년 다니던 회사를 관두더니 더 좋은 직장을 가겠다며 진학을 했습니다. 이제 곧 졸업인데, 글쎄 그 녀석이 교도관이 되겠답니다. 걱정이 되더군요. 주변 사람들은 수감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조언을 해댑니다. 저는, 어찌 되었든, 아들이 훌륭한 교도관이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막내아들은 ADHD랍니다. 요즘은 감정 조절도 좀 나아졌고, 화가 난다고 물건을 때려 부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들의 컨디션을 살펴 선생님들께 미리 알려드려야 해요. 이제는 그만 집을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가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매 순간이 너무 버겁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무엇을 선택하든 잘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니까요.


언젠가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죠. "내 머리 뒤쪽의 나사 하나가 풀려 흔들릴 때에도, 난 언제나 내 아이들이 잘못된 결정과 힘든 시기를 결국 이겨낼 거라고 믿을 거란다."




그런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밤별을 헤아리며 이불속으로 들어갈 때, 내 큰 손에 작은 손들이 닿을 때, 내 가슴엔 영원의 믿음이 새겨졌다. 아이들의 눈빛은 끝없는 질문이고, 내 다문 입조차 믿음의 대답이었다.


"내가 말 안 통하는 꼰대로 보이니? 그래, 나도 알아. 엄마보다 더한 잔소리를 하고, 실없는 말을 해대니... 너희도 답답하겠지. 그런데, 사실 그게 다 내가 너무 불안해서 그런 거야."

"아, 진짜... 또 시작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한 번도 안 물어보면서..."

"예전엔 말도 참 잘 듣더니, 이제는 눈빛에 짜증이 가득해. 내가 닦달하는 것도 다 너희가 아빠보다는 낫게 살았으면 하는 건데. 나중에 너희들 잘 되면, 그게 다 아빠가..."

"뭐, 아빠의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은 거네?"


머리 뒤쪽 나사가 풀려 사리분간을 못하게 된다 해도 자식들만은 굳게 믿는다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도, 난 술이나 들이키고 앉았다. '아휴, 바뀌는 게 없구나.' 위스키 잔을 입에 붙여 얼굴이 노래져가도, 머릿속에서 오가는 아빠와 아이들의 대화에는 노란 불빛 하나 반짝이지 않는다.


"저는 언제나 제 아이들을 믿을 겁니다. 그게 아이들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도록 제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이니까요."


술잔이 비었다. 그리고, 내가 읽던 그 글은 그렇게 끝이 났다.



*미국 미시간의 Dawn Levering이란 작가가 'This I believe'에 써 올린 에세이를 번역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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