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 킹 콜은 '크리스마스 송'을 노래하고

- 판타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블루밍드림

영포티 vs. 디즈니 어덜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일까, 저녁 뉴스가 지루하다. 따분한 소설 한 권을 손에 들고 멍하니 앉았더니, 내 귀 가까이에서 빙 크로스비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노래하고, 프랭크 시나트라는 '징글벨'을, 냇 킹 콜은 또 '크리스마스 송'을 노래한다.


내 가슴 구석진 어딘가에선 아직도 그 노래에 속절없이 설레니, 그 노래에 설레어 잠 못 들던 수십 년 전 그 나이가 여태껏 용케 살았나 보다. 그 세월에 달라진 건... 버텨내는 무게의 차이일까, 아니면 꿈을 소리 높여 말하지 못하는 법을 알게 된 그것인 걸까.


화장실 거울 위에 내 얼굴이 비친다. 세월이 먼저 거기에 도착해 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건 왜 하필 “젊은 척하지 말라”는 사회적 명령 그것일까. 어쩌지 못해, '영포티(Young-Forty)' 자가진단 질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건 대체 뭘까? 그것들은 "이제 나이가 있잖아."라고 나를 세차게 몰아붙인다.


영포티로 보일까 봐 나이키 운동화조차 꺼린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대체 그게 왜? 따지고 보면, 미국에는 '나잇값 못하고 돈지랄한다'는 더 뿌리 깊은 세월 조롱인 'Disney Adult', 그러니까 '디즈니 덕질하는 어른'도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보이더구먼 말이지.




소년 - 판타지를 꿈꾸다


모두들 잠이 들고, 긴 하루가 짙은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늙은 캐럴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지미니 크리켓의 디즈니 노래가 들려온다.


When you wish upon a star
Makes no difference who you are
Anything your heart desires
Will come to you


어렸을 적, 디즈니랜드는 '별을 보며 빌어 볼 만큼' 멀고 먼 꿈이었다. 이따금 '사랑의 편지'를 들고 학교 사택으로 찾아오는 시골 교회 목사님이 내가 알던 유일한 낯선 어른일 만큼 난 너무 먼 곳에서 살았다. 지금처럼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내 작은 가슴에선 "뿌드득" 눈 밟히는 소리만 유독 크게 울렸다.




'하나 → 셋 → 넷' ← 꿈을 좇는 여정


-늘 나 혼자이더니, 둘이 되었다-


5개국 유레일 패스 두 장, 백팩 하나씩 둘러멘 가난한 신혼부부는 은은히 반짝이던 꿈의 냄새를 좇아 유럽으로 향했다.


그래, 가자,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현실 속 디즈니 판타지라 불리는 그 성 앞에 섰을 때, 소년은 분명 청년이 되어 있었다. 어른이 되는 건 동심을 잃는 일이 아니라,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인지도 몰랐다.


하품하고 트림하고 방귀 트고 사는 사람들은 살아선 안될 것 같은 아름다운 성을 올려다보며 긴 감탄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의 '판타지'는 다 채워지지 않았다. 현실의 무게를 견뎌 온 시간만큼, 꿈은 이미 다른 형태의 꿈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둘이 금방 셋이 되었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연수를 가게 되었다. 운 좋게도 L.A. 에서 하루 일정이 비었다.


드디어 가는구나!


나는 기어이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메인스트리트 U.S.A.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년의 가슴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네버랜드에 어둠이 내려앉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에서 신비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When you wish upon a star" 음악은 심장 한가운데로 스며들었다. 미키마우스가 두 팔을 들어 올려 파바 팍팍 불꽃을 터뜨리고, 팅커벨은 빛의 궤적을 그리며 하늘을 갈랐다.


그 순간, 나는 그곳에서... 나만을 위한 순수의 기쁨을 따서 옛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두 살 아들의 아빠는 홀로 누린 황홀함이 미안했는지, 디즈니랜드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사들고 돌아왔다.


“아들, 잘 봐봐. 저기 진짜 좋지?"

"아빠가 저기 꼭 데려다줄게."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는 반복적 플러팅에 넘어갔고, 얼빠진 아빠는 어설픈 고개 끄덕임 하나에 충분히 설득되고 말았다.


-아직 넷이 되기 전이었다-


아들이 한 살 더 먹은 어느 여름날, 도쿄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 성 앞에 우리가 섰다.


놀라운 건, 동화 속에서 가장 열광하던 사람이 아들이 아니라 여전히 나였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지만, 내 발걸음이 먼저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의 즐거움보다 내 유년의 꿈이 더 크게 웃고 있었다.


두 살 보다 세 살이 나을 거라 믿었지만, 아들은 그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히죽히죽 웃는 것은 그냥 나뿐이겠다.



-마침내, 넷이 함께-


사는 형편이 좀 나아졌다. 다시 노이슈반슈타인 성 앞에 섰다. 꿈의 원형 같은 풍경이 안갯속에서 실루엣을 드러냈다.


엄마는 옛 배낭여행의 기억에 잠기고, 아이들은 바람을 잡고 햇살을 쫓아 뛰었다.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질겼던 꿈이 '조화'를 이루는 그 순간들을 알아보았다.


"얘들아, 디즈니랜드에 엄청나게 멋진 성이 있잖아. 그게 바로 이 성을 본떠서 만들었대."


아이들은 그 말의 특별한 무게도 모른 채 성의 탑보다도 높이 웃음을 띄워 올렸다. 그 순진한 순간들이 어떤 판타지 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질투심 많은 작은아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인데도, 형만 디즈니랜드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분개하였다.


그래서 또 떠났다.


겨울, 크리스마스, 우리 넷.


머라이어 캐리가 'All I Want'를 부르던 계절이었고, 우리는 파리 디즈니랜드로 날아갔다.




영포티 보다 더한 조롱거리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세월이 흐른 탓일까, 디즈니 판타지를 좇던 꿈이 비로소 멈춰 섰다. 꿈이 멈춰 선 대신, 그리고 말이 줄어든 대신, 눈빛이 길어졌다. 그 눈빛에 머무는 시간은 세월을 잊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돌이켜보면, '하나 → 둘 → 셋 → 넷' 세월을 좇아서, '노이슈반슈타인 → 디즈니랜드 →...' 꿈을 모아서, 마침내 한 장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때그때 스쳐가는 기쁨을 자신들의 언어로 기억하였다.


서로 다른 꿈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고요하게 맞닿으면, 나는 세월과는 다른 나이를 가슴에 품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이 밤...


내 가까이에서, 빙 크로스비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노래하고, 프랭크 시나트라는 '징글벨'을, 냇 킹 콜은 '크리스마스 송'을 노래한다. 나는 조금은 품위 있게 "When you wish upon a star..." 그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내 가슴속 깊은 어딘가에선 아직도 그 노래에 속절없이 설레고, 그 노래에 설레어 잠 못 들던 그 나이가 아직 거기 그대로 머물렀다.


판타지는 그래서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그렸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그림을 보노라면, 그 또한 죽는 날까지 가슴 한구석에 어리석은 동심 하나를 꽁꽁 숨겨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히틀러가 그린 노이슈반슈타인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