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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15. 2024

아테네 'A Journey thru Time' ①

세계여행 에세이: 그리스 아테네 (1화)

그리스란 나라는 내게 늘 어렵다. 마치 대학 때 수강했던 그리스로마신화 과목의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대해 기술하시오'라던 시험문제를 다시 받아 든 느낌이랄까. 아테네에 다녀온 지인이 "가서 보니 돌덩이 밖에 없더라"라고 소감을 말했던 것도 아테네가 여행객에게는 그만큼 어려워서 그럴 것이다.




한때 홈쇼핑에서 인기리에 판매하던 여행 상품이었던 튀르키예(서방 유력 언론은 여전히 Turkey라고 부르는 나라)를 다녀왔거나 중동 국가를 여행해 본 분들이라면, 그리스를 '세심히' 둘러보다 보면 이 나라에서 무언가 아랍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단 그리스 땅이 척박하고 여름이면 엄청 덥고 건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의 역사 그리고 튀르키예와의 아주 특별한 관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는 것부터 그리스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를 헬라스(Hellas)라 부른다 (영어 국가명: Hellenic Republic). 기억해 보면 그리스 신화 중에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자 제우스는 대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는데 이때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퓌라가 방주를 만들어 타고 살아남고서는 "커다란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는 테미스 여신의 뜻을 받들어 돌을 어깨너머로 던지자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를 만들고 퓌라의 돌은 여자가 되어 인류가 부활하였다'는 꽤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데, 데우칼리온과 퓌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헬렌(Hellen)이고 바로 그리스 민족의 시조로 여겨진다.


그리스 역사를 크게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공동체 국가 '폴리스'의 고대 그리스,

- 기원전 323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알렉산더 대왕의 알렉산드로스(또는 마케도니아, 헬레니즘)제국,

- 395년부터 1453년까지,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나뉜 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오늘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은 비잔틴(동로마)제국 통치 시대,

- 튀르키예인들이 건국한 오스만제국 (1299년부터 1922년까지) 통치 시대, 그리고

- 1830년에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의 근현대 그리스


여기서,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 민족은 알렉산드로스제국 멸망 후로 1832년 독립국가 건국 때까지 자신들만의 국가를 가져보지 못하였고, 독립국가 건국 후의 근현대 역사 역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고대 그리스가 남겨놓은 민주주의의 근본과 눈부신 유산과 달리 그다지 찬란하지 못하여 강대국이 되기는커녕 최근까지도 지속된 경제위기에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리는 수모를 겪어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는 2018년 8월 IMF 등의 구제금융에서 벗어났지만 유로화 사용 국가 중 유일하게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으로 남아있다가 2023년 10월에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투자적격 등급을 회복했다.)


이를 두고 그리스 지식인들은 그리스가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아오며 국가와 국민 사이에 유대 관계가 끊어진 데다 근대화 과정에서 프랑스혁명 (1789년부터 1799년까지)이나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계몽주의와 같은 변화의 바람조차 없이 구식 오스만제국과 유럽 사이에서 적당한 것으로 타협하려고만 하다 보니 현대에 이르러 탈세와 같이 국가를 속이는 것이 마치 애국적인 국민의 의무가 됐다고까지 비판하였다고 한다.


그리스 관점에서 서로마는 유럽 오랑캐에 의해 일찍 멸망했지만 동로마(비잔틴)제국은 그리스 정교를 믿고,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그리스 출신들이 득세를 하며 천년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리스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대 그리스가 아닌 비잔틴 시대에서 찾기도 하는 반면에, 오스만제국 통치시대 수백 년 동안 서로 섞이고 닮아가며 함께 살아온 튀르키예와는 지금 현재까지도 갈등의 역사를 쓰고 있다. (오스만제국은 그리스 정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크게 박해를 하지도 않고 민족 자치권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어 그리스인들이 오랜 세월 언어와 풍습 등 민족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22년 12월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이 (2003년부터 2014년까지는 총리로, 2014년에는 대선을 통해 사상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당선) 그리스를 향해 날린 발언이 해외토픽으로 알려졌는데, 내용인즉 "If you don’t stay calm, a country like Turkey will not be a bystander." 그러니까 '그리스가 튀르키예 본토 앞바다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무장을 한다면 튀르키예는 탄도미사일을 아테네를 향해 날릴 수도 있다' 뭐 그런 협박이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에 대해 알아보자.


다음 지도는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영토를 확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출처 : Wikipedia


1830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는 지도의 짙은 파란색 부분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영토를 넓혀 나갔는데, 발칸전쟁에서 오스만에 승리한 그리스는 연두색 부분과 같이 이스탄불 지역을 제외한 마케도니아 남부지역과 에게해 섬들을 취했고 이때 현재의 그리스 국경 대부분이 확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후 오스만제국이 급격히 쇠퇴하자 오스만제국 본토로 진격해 들어가서는 지도의 노란색 부분인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역에까지 영토를 넓혔다.


아타튀르크(튀르키예 국부)가 그리스를 포함하여 외세를 몰아내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하며 잃었던 노란색 부분 영토를 되찾기는 했지만, 튀르키예 본토 코앞에 위치한 에게해(Aegean Sea)와 지중해의 섬 대부분을 그리스에 빼앗겼다. 이 영향으로 두 나라는 지금 현재도 배타적 경제수역 (EEZ. Exclusive Economic Zone) 다툼, 사이프로스(그리스어: 키프로스) 분단과 같이 정치경제적 대립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튀르키예 본토에서 그리스를 몰아낸 다음인 1923년에 양국 간 합의로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튀르키예 땅에 거주하던 그리스인 150만 명 정도가 그리스로 쫓겨나고 그리스에서는 50만 명의 튀르키예인들이 추방되었다. 그리스로 쫓겨난 사람 중 40만 명가량은 그리스 말을 전혀 할 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튀르키예 땅에 살지만 그리스 정교를 믿으면 그리스인, 그리스 땅에 살지만 이슬람을 믿으면 튀르키예인으로 분류되어 쫓겨났고 그렇게 추방된 사람들은 대부분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렇듯 그리스 역사를 알아보면,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오랜 세월 음식, 음악, 복식(의복) 등 아는 듯 모르는 듯 서로 간에 많은 것들이 공유되고 섞여버렸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렘베티카, 부주키, 그리고 Maria Farantouri - 기차는 8시에 떠나네 (To Treno Fevgi Stis Ochto)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정서의 음악이 파두(Pado)라면 그리스는 렘베티카(렘페티카)가 그리스 정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몇 곡 들어보면, 내게 들리기는 파두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창'의 느낌도 나며, 부주키라고 부르는 그리스 전통악기 (2,500년 역사의 이 악기도 그리스에서 튀르키예로 다시 그리스로 돌고 돌며 근대화된 악기라고 한다) 반주는 심지어 일본의 샤미센 음악 느낌까지 난다.


'난민으로 집을 떠날 때 딱 한 가지만 챙겨야 한다면?'을 주제로 한 사진작가 브라이언 소콜의 사진 중에 지중해 건너편의 독재와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 시리아의 난민 오마르 씨가 향수를 달래며 연주하는 부주키도 보인다.


출처 : 한겨레 21


앞서 그리스와 튀르키예 간 인구 대이동 얘기를 했었는데, 튀르키예 땅에 살다가 하루아침에 그리스로 쫓겨난 사람들은 당시 그리스의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빈민층으로 전락하였다. 렘베티카의 어원이 바로 빈민층을 뜻하는 튀르키예어라고 하고, 그들이 주로 정착한 아테네에서 멀지 않은 항구 도시 피레우스에서 특유의 노래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White Rose of Athens (아테네의 흰장미)와 같은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도 좋아했지만, 포르투갈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로드리게스)가 파두의 상징이라면, 그리스에는 인권운동가로도 알려진 마리아 파란투리 (Maria Farantouri)가 존재한다. 그리스도 1967년 군사 쿠데타로 독재정권이 들어서서 197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민중가수이던 마리아 파란투리도 이 기간 동안 해외 망명생활을 했다고 한다.


조수미 씨를 포함하여 여러 유명 가수들이 불러서도 유명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 '헬라스(Hellas)의 목소리' 마리아 파란투리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돌아올 줄 모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애절한 갈망이자 기어코 돌아오리라 믿는 강인함이 렘베티카의 한스러운 선율을 타고 흐른다고 해야 할까.


https://youtu.be/5J3HZxp7utQ?si=ogxh7CvsrcgD2NLZ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카테리니행 기차

11월은 남아있지 않으리

당신 8시를 기억하지 말아요

당신 8시를 기억하지 말아요

카테리니행 기차를

11월은 남아있지 않으리

 
갑자기 당신을 다시 찾았어요
레프테리에서 우조를 마시는 당신을
밤은 다른 곳에는 오지 않으리
당신만의 비밀로 간직하리
당신만의 비밀로 간직하리
그리고 기억해요, 누가 알까요
밤은 다른 곳에는 오지 않을 것을
 
기차는 8시에 떠나네
하지만 당신은 홀로 남았네
카테리니 초소를 지키며
안갯속에, 5시부터 8시까지
안갯속에, 5시부터 8시까지
당신 심장에서 칼이 되어
카테리니 초소를 지키며
 
(이 곡 한글 가사가 거의 다 번안된 버전이라서, 영어 번역본을 찾아 나름 한글로 옮겨 보았다. 가사 자체가 알려진 바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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