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의 검은 마돈나
어쩌다 도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어쩌면 그날의 바르셀로나 밤하늘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마구 뒤섞여버린 맹렬한 열정으로 타블라오 데 카르멘(Tablao de Carmen) 플라멩코 극장식당이 후끈 달아올랐다. 손끝에서 휘감기는 치맛단은 마타도르 투우사의 붉은 카포테(망토)와 같아서 이성을 잃어가는 소처럼 숨이 가빴고, 느려지다가도 순식간에 빨라지는 발구름 탓에 연신 뿜어대던 무용수들의 거친 날숨은 의자에 걸쳐둔 외투 안감에 까지 깊이 베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그곳을 나서자, 바르셀로나의 밤은 끝 간 데 모르게 깊어있었다.
부르르 떨어 샀던 기타 선율과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와 금세 눅진거리던 노래도 우리를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가 일순간 찹찹한 공기에 휘말렸다. 그리고는 고풍스러운 골목을 따라 단정하게 늘어선 벽 가로등 불빛들을 스쳐지나 어둠 위로 솟구쳐 사라졌다. 포블레 에스파뇰(Poble Espanyol) 민속 마을을 돌아 나오려 하자 적막하고 차가운 아쉬움이 쉴 새 없이 발끝에 차였다. 성탄절 아침까지 하룻밤도 온전치 않은 카탈루냐의 심장부는 차분하다 못해 시나브로 눅눅해져 갔다. 외투에서 날숨들이 하나둘 삐져나오는 까닭이라 여겼다.
시체스 바다에 다다라 망상적 관음증이 음습한 피핑톰(Peeping Tom)이 되어보려 하였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시체스(Sitges)의 호텔을 향해 밤을 관통하여 차를 몰았다. 전조등 빛에 저항하여 부서져 내린 어둠에게서 검은 색소가 튕겨져 나와서는 흰색 세단 차창에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그새 곯아떨어졌는지 더 이상의 재잘거림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여름 시체스 바닷가는 벌거벗은 몸을 아낌없이 드러낼 용기가 농밀한 자들로 인해 한껏 달아올랐으리라. 이런저런 일탈의 사연들이 베었을 그 모든 알몸들이 다 떠나버린 계절이 되어서야 난, 범죄 현장의 폴리스라인을 남몰래 넘어보듯이, 허허한 바다를 찾아들었다. 음흉한 흔적이 행여 버려진 채 나뒹구는 게 없는지 애써 두리번거려 볼 작정이었다.
하룻밤의 깊고 푸른 잠이 지나자 범상치 않은 한줄기 빛이 호텔 방 창으로 찾아들었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자 지중해의 겨울바다는 라임과 코발트가 오묘하게 혼합된 빛깔을 한껏 펼치고서 큰 창을 가득 채웠다. 그 기세에는 잠에서 덜 깬 아이들도 맞설 도리가 없었다. 음란한 바다를 목도하려던 그늘진 욕망은 동공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푸른 멍이 들었다. 여러 번의 긴 호흡 후에야 성탄절 아침을 깨달았다. 시체스는 그날만큼은 고독하고 순결한 바다를 껴안고 있었다.
고통받는 자, 슬퍼하는 자들은 몬세라트 성모의 발아래 그 무게를 내려놓았다.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레네 산맥 동쪽 어드멘가 안도라가 숨어있었다. 은밀한 그곳을 찾아 시체스를 떠나온 지 한 시간 남짓되어서였을까. 그 길 위에서 톱니처럼 뾰족하고 황무한 바위들이 산기슭에 거대하게 솟아 있음을 보았다. 몬세라트(Montserrat)였다. 신성한 그 산 높은 곳 협곡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베네딕토회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를 찾아서 하늘 더 가까이 차를 몰았다.
대성당 안으로 발을 내디디어 때마침 성탄 미사를 목도하였다. 감춰둔 죄가 많은 탓일까, 구경꾼 행색이 부끄러웠을까, 순간 움찔거렸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어 좁은 계단을 찾아 오르는 행렬에 얼른 합류하였다. 몇 계단을 올랐을까, 여태껏 듣어본 적 없는 황홀한 소리가 거룩한 성당 내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팔백 년이 흐르도록 성모 찬송의 노래를 불러온 몬세라트 에스콜라니아(소년합창단)의 콰이어(Choir)는 불의의 습격이었고, 소프라노와 알토가 마찰하여 가열한 황홀한 파동에 불순한 영혼이 숨어든 눈시울이 그만 데고 말았다. 귓바퀴를 휘감아 돌고서 시나브로 아득해져 가는 천상의 노래를 차마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치유의 기적을 행하시는 검은 마돈나를 찾아 줄지어 계단을 올랐다. 제단 뒤 높은 곳 몬세라트 성모의 방에서는 램프와 촛불과 황금이 빛을 내었다. 영화로운 그림자와 향이 그 안에 가득하였다. 빛나는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으신 성모의 얼굴은 검게 빛났고, 시선은 시간의 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기 예수는 왕관을 쓴 채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렸으며 왼손에는 영생의 솔방울을 들었다.
몬세라트 성모상은 성 루카가 예루살렘에서 조각한 것을 성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옮겨왔단다.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880년이 되어 찬란한 빛과 천사들의 노래에 이끌린 목동들에 의해 몬세라트 동굴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지금의 성모상은 12세기에 만들어졌고, 성 루카의 성모상에 대해서는 더는 알려진 것이 없다. 교황 레오 13세는 1881년 몬세라트 성모 대관(戴冠) 후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정하였다.
기적을 행하시는 몬세라트의 마돈나여, 검은빛을 품어 떠나리다.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제 모습이라고 하였던가. 믿음이야말로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근거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교인이 아닌 들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검은 마돈나 앞을 줄지어 스쳐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처럼, 치유의 기적은 성모 마리아의 중재에 기인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을 따라 성모의 오른손에 들려진 반들거리는 원구(지구)를 어루만졌다. 모레네타 검은 성모상에서 평온함이 흘러나와 나를 잠시 스쳐가더니 거룩한 성당 안을 휘감아 돌았다. 아주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추었다.
처음부터 검었던 것이 아니었다. 믿음을 켜켜이 쌓아가며 기나긴 세월을 이어온 기도의 불빛에 반응하여 점차 검게 변하였다. 사람들은 검은 빛깔이야말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성모의 은총이요 믿음의 상징이라 여겼다. 성모 마리아의 길로 빠져나와 여느 순례자와 다르지 않게 층층이 늘어선 촛대 위에 작은 촛불 하나를 밝혔다.
힐링의 검은빛이 시간을 넘어 우리 집으로 날아들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성당 안을 가득 채운 은총은 몬세라트 뾰족 바위를 휘감아 지나는 바람에도 올라탈 것이고, 그러면 바람이 부는 한 거룩한 은총은 영원할 것임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하였다.
2025년 희년(禧年)이 시작된 지 한 달도 더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결코 사적(私的) 일 수 없는 울화병(鬱火病)에 침통하기만 하고, 검은 마돈나 앞에서 멈추어 섰던 믿음의 시간이 지금 내 곁에서 다시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에필로그: 그곳은 온통 설국이었다.
성탄절 때가 되면 설국을 그리워하였다. 구불구불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기어 올라 안도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조금은 거칠었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채 삼십 분이 남지 않았음을 알리자 깊은 산골에 눈발이 날렸다. 지난밤 전조등에 부서진 거무튀튀한 어둠의 색소가 부딪히던 자동차 차창 위로 쉴 새 없이 하얀 눈꽃이 내려앉았다. 지우고 또 지워도 자꾸만 더 빠르게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이제 머잖아 안도라 국경을 넘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