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비가 내리던 날

by 블루밍드림

여기는 밤새도록 비가 퍼부어댄다. 그 비가 지나친 집착 같아서, 매몰차게 창을 닫아 외면하였어. 비란 놈은 어찌나 독한지 수 만 번을 부딪혀 내 창에 약속의 점자 메시지를 적어대고 있어. 손끝으로 훑지 않아도 그 내용은 축축할 게 틀림없고, 내 후광의 죄악들이 씻겨 내려갈까 봐 오늘 밤 잠 못 이룰 것만 같아.


참 제멋대로야. 여기는 비가 흘러넘쳐도, 내 살던 요르단 땅은 먼지 풀풀 날리며 메말라만 가겠지. 올리브 나무에 꽃이 활짝 핀 지도 여러 달일 테니, 아침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 무더운 날들에 올리브 나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다. 그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며 올리브 나무를 칭찬하겠지.


10월 말쯤, 11월 초쯤, 검은색 열매가 올리브 나무를 칠할 팔할 덮어갈 때면, 요르단의 농사꾼들은 비 걱정에 편치를 못해. 올리브 열매를 따기 전에 비가 간절히 필요해서야. 그걸 바로 '올리브 비'라고 해. 올리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온 나무가 시커메져 가도록 수확을 못하고 농사꾼 아비나 도시의 자식이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 아무리 아니래도, 그만 수확하라고 재촉해도, 늙은 농부들은 그렇게들 말하곤 하지. 올리브 나무에 처음 내리는 비야말로 케케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열매의 색깔을 예쁘게 하고, 열매 안의 기름을 풍성하게 하고, 기름을 짜냈을 때 쓴맛이 덜나게 한다고.


올리브 비가 내리면 비로소 올리브 겨울이 온 것이고, 사람들은 그제야 평안을 얻어. 하지만, 올리브 비가 내린 후 요르단은 올리브 나무에 새 꽃이 필 때까지 지겹도록 비가 내려. 때로는 폭우에 쓸려 사람들이 죽기도 해. 비란 놈 참 제 멋대로야.


요르단 살 적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는 일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어. 머리카락이 쭉 뻗어 자라는 탓이고, 다운펌이란 게 있을 리 없는 탓이고, 단 한 번도 마음에 들게 잘라본 적이 없던 탓이고, 말 많은 미용사라도 만난다면 기가 빨리는 대가를 치러야 해서야. 어느 해인가 11월이 훌쩍 지나도록 올리브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나도 덩달아 하늘에 모인 먹구름을 세던 날이었어. 돌다 돌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어느 미용실을 찾았더랬어.


처음 몇 분은 40대 남성 미용사의 억센 수다에 치이고, 그다음 몇 분은 거칠게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에 치이고, 한 번 감은 눈을 다시 뜨기 어렵더구나. 서로가 지쳐갈 무렵 휑한 홀 안으로 플라시도 도밍고의 음색이 흐른다는 걸 알아차렸어. 너무도 쉬운 추리로 아도로(Adoro) 일 거라 생각했지. 위안의 노랫소리에, 그저 쥐가 뜯어먹은 것만 같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떴어. 그 순간, 창밖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우르르 쾅쾅, 마침내, 올리브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그 비도.. 기대 없는 실망까지 씻어내진 못할 것 같았어.


그나저나, 창밖의 저 비는 언제나 멈춰 설까 모르겠다.


.. 어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