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는 없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없었다
'Congés payés, Adieu tristesse'
'유급 휴가, 슬픔이여 안녕' 이런 뜻의 불어야. 그런데, 이게 일본의 어느 옷가게 이름이기도 해. 말도 안 된다 싶지? 그래도 무언가 엘레강스하고 낭만적이지 않아? 어릴 적 일본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기억의 저편에서 반짝거리는 듯도 해.
"올해만 해도 파리의 일본 대사관은 최소 4명의 관광객을 본국으로 송환해야 했다. 호텔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생각한 여성 두 명도 포함돼 있었다."
'파리 증후군'이라고 들어본 적 있을 거야. 샹젤리제 거리엔 에디트 피아프의 라비앙로즈가 흐르고, 클래식한 카페엔 에스프레소 향기가 흐르고, 밤에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별빛이 흐르고.. 달콤한 꿈을 타고, 열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파리까지 왔건만..
"친애하는 일본인 여러분, 파리는 장미꽃이나 갓 구운 크루아상의 향기보다는 오줌과 담배 냄새가 더 유혹적입니다."
파리의 거리에는 산산이 부서진 꿈들이 나뒹굴고, 감당 못할 실망과 충격으로 속은 메스껍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심지어 환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지.
그런데 말이야, 이 웃픈 일본제 신드롬이 내 오랜 꿈마저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어.
나 어릴 적 위다(Ouida)의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어..
"네로와 파트라슈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그 둘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 같은 세월을 살았지만, 한쪽은 어린아이였고, 다른 한쪽은 이미 늙어버린 개였다."
너도 기억나? "랄랄라 랄랄라..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난 아직도 그 노래를 기억해. 조막손 만하던 애틋한 빛이 내 겉모습처럼 바래긴 했어도 까맣게 잊을 수는 없었어.
그리고, 길지 않은 그 둘의 이야기는 대충 이렇게 끝을 내고 있었어..
"낭랑한 종소리가 찬 서리를 뚫고 울려 퍼졌고, 눈 덮인 들판엔 햇살이 비추었다.. 그 둘에게 죽음은 오래 사는 것 보다도 훨씬 더 가련한 일이었다. 애틋한 사랑 속에서 한 아이를 데려갔고, 순수한 믿음 속에서 다른 하나마저 데려갔다. 아이의 팔이 개를 꼭 껴안아서 힘을 주어 떼어 놓아야 했다."
온 가족을 앞세워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을 찾아왔어. 풍차 방앗간이 삐거덕 거리던 시절의 이십 리 가로수길은 조바심에 삐끗거렸고, 그 길 끝에서 호보켄 마을을 만났지. 일본사람들은 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대성당에서, 또 이곳에서, 두 번, 두 눈 가득 눈물이 차오른다고 해.
연립주택 늘어선 좁다란 회색 거리에서 짧은 머리의 네로와 작은 개 파트라슈를 보았어.
활짝 웃는 얼굴일 거라 믿었었지.
그랬더라면, 일본사람들은 슬픔을 증폭할 절호의 기회를 상실한 채 충격과 실망에 철퍼덕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까?
"플란다스의 개는 이제 그만 놓아줘야겠어."
작은 아이는 뭘 안다고 '먼 길'을 '추위'에 떨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연속적 가혹의 단어에 그만 눈물이 글썽해. 그 슬픔 어디 갔는지 성모마리아 대성당 앞에서는 파트라슈 가묘*를 밟고 춤을 추다 야단을 들었어.
일요일 오후 그랜드 바자르엔 사람들로 북적였어. 아마도 우리네를 실없는 일본사람인 줄만 알겠지.
"Rêves de l'après-midi, Adieu l'enfance" 오후의 몽상, 동심이여 안녕.
플란다스의 개를 찾아 떠난 짧은 여행은 그렇게 파란 선글라스와 오렌지색 풍선 두 개와 낭만적 불어로 끝이 났어.
..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1980년대쯤 안트베르펜 시는 몰려드는 일본사람 때문에 호보켄에 어린 소년과 강아지 동상을 세웠다. 도요타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앞에 파트라슈 가묘(명판)를 놓았다. 가묘는 나중에 돌 모포를 덮고 잠든 네로와 파트라슈 조각상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