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잔임함의 끝은 어디인가? 책리뷰 /
인간의 잔인함의 끝은 어디일까?
읽기가 힘들 정도로 숨통을 조여온다.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이 가족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비참하게 무너트릴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화제의 책 모드 쥘리앵 작가의 실화 『완벽한 아이』 이다.
남자는 부인이 될 여자가 대여섯 살 때 그녀를 선택하고 가르치며 학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딸 모드를 낳았다.
남자는 계획하에 딸의 형체를 빚고 조각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건 그의 일생을 걸친 과업이었다.
이제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모드는 아버지의 계획만큼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렵다.
자신이 너무 허약하고 서툴고 너무 어리석게만 느껴지고, 아버지 앞에만 서면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얼굴에서든 몸에서든 그 어떤 것도 다른 사람이 읽어낼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잡아먹히고 만다. 나약한 인간들이나 바깥으로 표정을 드러내는 법이다. 훌륭한 포커꾼이 되고 싶으면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 살 된 모드는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는 '무표정 훈련', 어두운 지하실 홀로 의자에 앉아 극한 공포를 느끼며 몇 시간이나 버텨야 하는 '죽음에 대한 명상', 수면을 줄여서까지 수학, 음악, 문학, 라틴어, 독일어 등을 배워야 하는 '혹독한 교수법', 즐거움은 중대한 과오라며 언제나 눅눅한 오래된 빵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나 새해 같은 특별한 날은 오히려 새벽 2시까지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학습과 더불어 잔디를 깎고 동물을 돌보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며 심지어 송아지 도축까지 도와야 하는 끔찍한 노동까지 해야 했다.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첫 수영 수업은 단순하고 간략했다. 어머니는 그냥 나를 물속에 빠뜨렸다. 나는 발버둥 치고 비명을 지르며 물을 먹는다. 내 몸이 정말로 물속으로 가라앉으려는 순간 어머니가 뛰어들어 건져주었다. 그런 뒤에 다시 시작된다. 나는 다시 소리치고 운다. 숨이 막힌다. 어머니가 다시 나를 건져냈다. "바보같이 계속 울어댈 거야? 혼날래?" 어머니는 나를 다시 물속에 밀어 넣었다. 나의 몸은 물속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버둥거린다. 하지만 한 번 더 빠질 때마다 정신이 점점 더 움츠러든다. -p.65 중-
나는 6시에 일어나서 십 분 안에 준비를 마치고 옷도 입어야 한다. 이제 열쇠가 나한테 있으니, 내가 방문 자물쇠를 풀고 6시 10분에 어머니를 깨우러 간다. 아버니가 힘주어 말한 대로 "6시 10분이다. 9분도, 11분도 안 된다." 나는 분침이 9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복도로 나가고, 정확히 10에 올 때 어머니 방문을 두드린다. -p.98 중-
모드는 초인이 될 훈련을 받는 사람이기에 통증을 느껴서는 안 된다. 병이 나도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몸이 조금만 불편하다면 오로지 아버지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 오줌을 받아내는 것부터 이동할 때 부축, 잠자리에서 혹시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해 어머니와 함께 미동도 없이 불침번을 서는 것까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가스라이팅 당한 그녀는 아버지의 계획하에 지배당하며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날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다 자신을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아이라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도움받을 자격조차 없는 나쁜 아이 일까?
하지만 모드를 가장 괴롭히는 건 가끔 집안일을 돕는 레옹이다. 그가 집에 오는 날은 악몽이 시작된다.
여섯 살 어린 모드를 향한 성적 학대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어느 날 레옹이 딸에게 행하는 잔인한 장면을 목격한 어머니는 모른 척 돌아 나가버리고 모드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나를 지켜주는 방패이며 보호자이자 수호천사라더니, 뭐든 볼 수 있고 뭐든 다 안다더니, 무엇보다 어떤 게 나에게 좋은지 다 안다더니, 삶의 모든 순간을 이 세상의 추함과 인간들의 사악함에서 나를 지켜내는 데 바칠 거라더니, 나의 행동을,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전부 확인하더니. 아버지의 대단한 감각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나는 분노와 고통으로 숨이 막힌다. -p.116 중-
뽀족한 침이 솟아있는 높은 철책 담 그 집 안에는 자신을 선택받은 영혼이라 믿으며 가족을 지배하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고 초인으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며 오히려 가하는 정신적, 육체적 학대는 고통과 두려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세상이 타락했다며 딸을 보호하겠다는 그는 그야말로 '악' 그 자체였다.
과연 그녀는 자유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달려요, 살아야 할 삶이 있잖아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책과 음악, 동물들이었다.
카프카의 『변신』 , 발자크의 『시골의사』, 『오디세이아』의 아테나, 도스토엡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의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생각과 인물들은 그녀를 동일시하게도 하고 자유로부터 갈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헝가리 랩소디>는 영원히 이곳에 묶여 있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말해주며 그녀에게 용기를 준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물들과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며 고통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기도 한다.
이 책의 실제 인물이자 작가인 모드 쥘리앵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감금된 희생자들이 탈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 하나하나가 자유로 나아가는 출발점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책이 실화라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다. 그런데 먼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 이야기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밥 안 먹고 낮잠을 자지 않는다면 아이를 발로 밟고 이불로 덮어버려 숨도 못 쉬게 학대하는 어린이집 교사,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장기가 파열돼 사망에 이른 유아, 음식 하나 주지 않고 아이를 쇠사슬에 묶어 며칠 동안 가둬 탈진에 이르게 하고, 트렁크에 감금해 아이를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한 계모, 굶기고 감금하고 협박하고 고문에 가까울 정도의 학대까지.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아동 학대의 실태에 할 말을 잃는다.
맑고 순수한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이 그 어떤 도움과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 잔인한 현실에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아동학대 방지법에 대한 여러 시민단체의 항의와 국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서야 법 제정을 시행하는 정치인들이 참으로 야속하다. 꼭 어린아이들의 비참하고 슬픈 사망 사건이 터져야만 뒤늦게 서로 법을 만들겠다며 떠들어 대는 그들이다.
그래 늦었더라도 앞으로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이 고통받는 일이 더 이상 없길 우리 모두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기를...
진짜 천사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그곳에서만이라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