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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Mar 07. 2021

미국의 한 감화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오랫동안 은폐되었던비밀묘지가세상에 드러났다.책리뷰『니클의소년들』


니클 캠퍼스 북쪽, 낡은 작업장과 학교 쓰레기장 사이에서 시신 여러 구가 발견된다.

43구의 시신과 처참하게 깨진 두개골, 으스러진 갈비뼈, 부러진 손목뼈들이 함께 나왔다.

시신 중 7구는 신원을 결국 밝히지 못했다.

지옥 같은 곳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소년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은폐되었던 비밀묘지가 드디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플로리다주 마리아나의 남학교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한 감화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이야기 콜슨 화이트헤드의 장편소설 『니클의 소년들』 이다.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던 미국의 주법인 짐 크로법은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 한다는 인종분리법으로 미국의 인종차별과 폭력의 어두운 역사다.


1899년 주 정부에 의해 플로리다 소년 산업학교로 문을 연 니클은 "어린 범법자들이 지적, 도덕적 교육을 받고 훌륭한 시민의 품성과 목적의식을 지니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감화원"이다.

하지만 니클은 범법자만 오는 곳은 아니었다. 가출 소년들, 고아들, 의지할 곳이 없어 국가의 후견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사소한 경범죄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니클은 인종분리정책으로 백인과 흑인 아이들을 서로 분리된 시설에서 생활하게 했다.

비교적 좋은 시설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는 백인 아이들과 달리 흑인 아이들은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온갖 차별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수준 낮은 교육을 받으며 벽돌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까는 등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온갖 무례한 욕설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던 흑인 소년 엘우드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차 절도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화원 '니클'로 들어가게 된다.





난 여기 붙잡혀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 거야. 여기서 보내는 시간을 짧게 줄일 거야. 엘우드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고향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차분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니클도 곧 그의 그런 면을 알아줄 것이다. -p.85 중-



"거기 난간 붙잡고 놓지 마. 소리를 내면 더 맞는다. 그 주둥이 닥쳐, 깜둥이."


하지만 엘우드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했을 뿐인데, 관리원들에게 그런 이야기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피투성이 매트리스가 있는 매질 방 '화이트하우스'에서 엘우드는 끔찍한 체벌을 당하고 체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절하고 만다.


매질의 공간인 '화이트하우스'에서는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 무차별적으로 말채찍을 휘둘러 체벌하는 장소이다. 그곳에서 심한 매질당한 아이 중 몇몇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후에 그 아이들은 비밀묘지에서 유골로 발견된다.



"여기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잘 보고 생각해 봐. 널 여기서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너밖에는."


니클을 졸업한다고 한들 일부 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팔아넘긴다. 소년들은 노예처럼 일하고 지하에서 쓰레기 음식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소년들에게 니클 후의 삶도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예를 다루는 방법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잔혹한 재산을 물려받을 때, 놈을 가족과 떨어뜨려놓고 채찍질을 해라. 놈이 오로지 채찍만 기억하게 될 때까지. 놈을 사슬로 묶어두어라. 오로지 사슬만이 놈의 세상이 되게. 쇠로 된 징벌 상자에 한동안 집어넣어 햇빛에 뇌가 푹푹 익게 만드는 것도 놈의 기를 꺾어버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어둠 속에 둥둥 떠서 시간마저 초월한 느낌을 주는 어두운 감방도 마찬가지였다. -p.239 중-



2015년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백인 청년이 찰스턴의 한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총기를 난사한 백인 청년은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으면 수십 발의 총기를 난사했다. 최근 흑인을 향한 미국 경찰의 총격 사건들 또한 유색인종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논란을 야기하며 시민들의 격렬 한 항의로 이어지고 있다.

1965년 짐 크로법이 폐지됐음에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흑인 노예제도의 유산인 짐 크로법의 그늘은 여전하다. 인종주의는 미국인의 DNA에 들어있다.
-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 후 오바마 발언 중 -


우리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


엘우드와 터너는 니클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고 발각된 그들을 향해 총탄은 날아오는데 ...

결국 둘의 운명은 뒤 바뀌고 만다.






책을 읽으며 예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형제복지원 사건이 생각났다.


1975년 부산에서 운영된 복지시설 형제복지원은 3,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고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망케 했다.

충격적인 건 더 많은 국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 5살 어린아이들까지 납치하고 나이 불문하며 무자비한 구타와 성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나이는 고작 9~12세에 불가했다.

하지만 장애인과 고아들을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키며 인권을 유린한 형제복지원 원장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선고된다.


니클도 주정부가 지원하는 학생 보급품을 빼돌려 이익을 취하고 횡령, 승부조작 등 온갖 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며 부를 축적한다. 50년 후 니클의 소년들은 어두웠던 과거를 하나씩 꺼내며 니클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지만 니클의 관리인들은 전부 거짓이라며 발뺌한다. 은퇴 후 그들은 주정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훌륭한 시민상'을 받으며 과거 고통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소년들과 달리 편안한 노후를 보낸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은 전두환 정권 당시 국민훈장을 받았다. 그는 사건이 세상에 공개된 후에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복지재벌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인권을 유린하고 폭력을 방조하며 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가해자들, 소설 속 이야기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했다.


오는 3월 11일 32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판결 선고가 열린다.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판결이 내려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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