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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Apr 30. 2021

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직원들

 장애인이 덤이 아닌 주인공인 직장 '아지오' / 책리뷰『꿈꾸는 구둣방』


책 한 권을 받는데 마치 부드러운 고급 가죽 구두 한 쌍을 받아 든 느낌이 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북 커버다.


불편한 몸으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아지오(Agio)'에 대해서는 예전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사진이 보도되면서다. 대통령의 낡은 신발은 언론에 큰 이슈가 되었고 밑창이 닳을 때까지 신은 신발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졌다. 그리고 신발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지오'는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텼을걸 조금만 더 견뎠을걸 '아지오' 유석영 대표는 눈물을 삼키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얼마 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좋은 뜻에 공감해 주는 시민들의 선한 마음이 모여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아지오 공장에 불이 켜졌다.


'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직원들' 장애인이 '덤'이 아닌 '주인공'인 직장  '아지오' 『꿈꾸는 구둣방』  이다.



유석영 대표는 아지오의 설립 이념인 '청각장애인의 자립' 이라는 것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청각장애인의 일터를 마련해 직업인으로 자립하게 돕는 것이 아지오의 철학이며 이를 지켜나갈 때 그 가치가 만들어지고 성공의 기회 또한 열린다는 것을 그는 믿었다.


그래서 두 번째 '아지오'의 문을 열었을 때도 청각장애인을 고용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그들을 구두 장인으로 배출했다.

그것이야말로 아지오의 성공이라 생각하고 아지오와 청각장애인 장인들이 한국의 제화 기술을 보전하는 날을 꿈꾼다.


아지오가 다른 구두 제작사와 차별화되는 또 다른 점은 바로 고객을 직접 방문해 발을 실측하고 고객의 발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을 제작하는 것이다. 평발, 망치발, 요족, 내향성 발톱, 티눈, 굳은살까지도 확인하고 발끝까지 전해지는 혈액순환 장애나 관절염, 디스크, 당뇨, 고혈압까지 확인해 발이 가장 편한 신발을 만든다.


이런 아지오의 특별함으로 디자인은 같아도 각양각색의 형태와 크기의 구두가 존재한다

그리고 더 느려도, 가장 트렌디하지 않아도 인간의 손길에 더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아지오의 고객이다.


서로를 살피고 배려하는 문화가 커가고 있음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선한 힘을 발휘하고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꿈꾸고 동참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보았다. 무조건 싼 제품이라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같은 돈을 써도, 심지어 더 비싸더라도 더 가치 있게 쓰고 싶어 하는, 윤리적 소비 혹은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중략-
더 소중한 것을 지키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소비에 신중해지고 대량생산과 기계화에 지쳐 다시 사람의 손길이 깃든 물건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 세상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아지오도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아지오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좋은 구두를 만들며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다.
 -p.215~216 중-



장애를 가진 그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에 그는 끊임없이 문을 두들겼다.


패자는 말이 없다지만 유석영 대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달음을 주었기에 성공담보다 귀한 실패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신은 덕분에 대박이 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닌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내리막길을 갔다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기까지 그 긴 여정을 이야기해 준다.

그의 이야기에 좌절에 주춤하며 위축되어 있는 내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일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보다 사회의 일부가 되어 동료들과 어울리고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일은 그에게 사회인으로서의 일상을 가져다주었고 자연스러운 소속감을 주었다.
-p.31중-


책을 읽으며 이토록 감사한 마음이 든 적이 있었을까?

얼마 전 '왜 일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일에 대한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고민에 아지오의 유석영 대표가 현답을 주었다.

일에 대한 가치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거, 나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나의 일과 삶에 기쁨을 준 것이었다.


내가 작업한 디자인을 좋아해 주던 클라이언트,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다며 울던 학생들, 내가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  내가 쓴 글에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인친들, 언제나 묵묵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 그들이 나에게 일에 대한 가치를 알려주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울컥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무기력해있던 나에게 작은 불씨를 지펴주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아지오처럼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묵묵히 나아가야 함에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온 나와 당신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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