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한 번 이라도 가본 적 있나요?

응급실 뼈 때리는 이야기 / 책리뷰『응급 의학과 곽경훈입니다

by 띵북


응급실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응급실이다. 임신 중 심한 입덧으로 탈수 증상이 있어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간호사가 링거병에 희석해서 넣어야 할 주사를 혈관에 바로 주입하는 바람에 순간 호흡이 불가능하고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이 와서 응급실이 난리가 났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주사를 놓고 몇 초 후 갑자기 눈이 뒤집히면서 뒤로 넘어갔다고 ㅜㅜ;

다행히 응급실인 만큼 빠른 조치가 이루어져서 수 분 후 안정을 찾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과호흡 증후군이 생겨버렸다.

병 나으러 갔다가 오히려 병이 더 짙어지는 거 같아 링거 주사를 다 맞지도 않고 서둘러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응급할 때 가는 곳이 응급실인데 왜 그곳에선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고성이 오갈까?

응급실 레지던트의 생생한 응급실 뼈 때리는 이야기 곽경훈 『응급 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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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좋지 못해 인기 없는 응급의학과에 지원하게 됐다는 저자는 '부조리를 바로잡고 열정을 다해 일하겠다'라는 정의롭고 다소 과대망상적인 목표 따윈 없었다고 했지만 환자의 생명 앞에서 최소한 정직하고자 노력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나 사회 문제 등에서 학습됐듯 정의는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없는 문제였다. 부조리는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는 그곳에서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응급실에서의 진단과 처치, 해당 임상과와 협력, 환자와 보호자의 협조가 순조롭지 않았던 사례들이 실려있다.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적어봤다.



수상한 전원 문의


요구하는 일에 문제가 있거나 준비가 미흡할 때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거나 해당 업계의 유력 인물과 친분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예 내용도 말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며 누구누구와도 친하다는 말부터 늘어놓으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p.47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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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 난종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라 수술적 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가 드문데 앞뒤 맞지 않은 말에 일방적인 전원 통보였다. 난소 낭종 파열로 인한 혈복강을 수술하다 생각보다 출혈이 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교수 레벨에서 얘기가 끝났다'. '레지던트까지 알 필요는 없는데' 같은 얘기도 이상했다. '윗선에서 얘기가 끝났으니 현장 인력은 나서지 마라'는 협박 아닌 협박은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숨겨야 할 잘못이 있을 때 내뱉기 때문이다. -p.48중-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저혈량성 쇼크가 확실했는데 출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심지어 중심정맥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CT 결과 간세포암 파열로 인한 혈복강이었고 간세포암이 파열되면서 떨어져 나온 암세포가 복부 전체에 씨를 뿌리듯 퍼져 버렸다. 수술이 성공해서 출혈을 막고 목숨을 건져도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 정도 죽음을 연기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컸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은 치료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


응급실로 음독 환자가 도착했다. 심전도와 혈액 검사 결과 심근경색으로 시술받았던 환자에게 안정제 과량 복용과 흡인성 폐렴이란 스트레스가 발생하면서 심근경색 역시 재발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응급실 상주 내과2년차 레지던트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심장내과의 문제가 아니라 한다 -> 호흡기 내과에서는 할 것 이 없다고 한다 -> 류마티스 내과, 신경과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심장내과 담당 3년차 레지던트와 전임의, 호흡기내과 담당 3년차 레지던트, 류마티스내과 담당 3년차 레지던트, 신경과 2년차 레지던트의 결론은 동일했다. 무례함과 짜증의 정도만 달랐을 뿐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고 흡인성 폐렴이 있으며 심전도와 심장효소 수치에 이상이 있고 승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겨우 혈압이 유지되는 환자에게 1000병상에 가까운 대형 병원에서 모든 임상과가 '우리는 해 줄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졌다. -p.79중-

환자는 다음 날 심정지를 겪었고,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



전염병의 시대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때 바이러스 폐렴으로 실려온 임신 7개월 산모는 에크모를 시행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과,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환자를 서로 미루면서 시간은 지체 없이 흘러갔고 산모는 에크모를 시행해도 소생 가능성은 희박했으며 제왕절개로 태아라도 살려야 할 상황이었다. 태아가 태어나도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았기에 남편과 시아버지는 그 차가운 현실에 직감한 듯 선택을 미루었다. 둘 다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몇 시간 후 환자는 심정지에 빠졌다.

그제야 호흡기내과 3년차 레지던트는 흉부외과에 연락해서 에크모를 준비했다. 산부인과 당직 레지던트도 제왕절개를 통해 태아를 살릴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면서 태아에 대한 초음파를 실시했다.
에크모를 하려면 더 빨리했어야 했다. 제왕절개를 고려하는 것도 더 빨리해야 했다.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은 싫으나 그렇다고 비난받고 처벌받고 싶지도 않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야비한 선택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과, 산부인과 그리고 환자의 남편과 시아버지, 모두 그랬다. -p.198~199중-


책에 실린 사례들 중 임상과의 환자 미루기는 과히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중환자들은 서로 담당하지 않기 위해 온갖 변명들을 늘어놓고 있다.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떠안기에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사돈의 팔촌을 동원해서라도 병원에 아는 교수가 있다면 예외였다. 가벼운 증상이든 중증이든 교수와의 인맥은 하이패스권이었다.

저자는 그런 병원 시스템에 염증을 느꼈고 각 임상과 레지던트, 교수들과 번번이 부딪히게 된다.


"곽경훈 선생 말에도 논리는 있지만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아. 내가 야단치려는게 아니라 곽경훈 선생을 아끼기에 말하는 거야. 옳은 말이라도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면 하지 않아야 해. 그리고 우리 병원 교수들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내가 꼭 이 사람을 입원시키도록 하겠네. 늦어도 내일에는 신경과와 호흡기내과 가운데 하나로 입원할 수 있을 거야."


병원에 아무런 인맥이 없던 응급실 장기 환자는 결국 며칠 후 2차병원으로 '희망 없는 퇴원'이 결정되었다. 아무도 그 환자를 담당하지 않은 것이다.


세상을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어 본다면, 극소수의 영웅과 소수의 악당 그리고 다수의 평범한 인간이 존재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똑똑이'와 '멍청이'로 나눌 수도 있다. 이때 '멍청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p.297~298중-

무능력한 의사들 중 잘못된 진단으로 인해 환자를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저자와 교수 간의 언쟁이 오가게 됐고 교수의 판단이 틀렸음이 증명됐지만 교수는 끝까지 본인의 잘못된 치료를 진행했고 얼마 후 환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각 임상과의 전임의와 레지던트는 '환자의 이익'을 위한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교수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교수들은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병원에서 누리는 조그마한 권력을 두고 '정치적인 싸움'에 골몰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 지위가 높은 순서대로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모른 척하려 했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 혹은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목적이 없었다. -p.324중-


따뜻한 마음을 지닌 휴머니스트도 아니고 친절하고 상냥한 의사도 아니었다고 하는 저자는 때때로 윗사람들과 부딪히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의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중증 질환에 걸린 환자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투쟁이었다는 곽경훈 저자는 지금도 그 개인적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나도 병원에 대해서 딱히 좋은 기억은 없지만 친절한 간호사와 좋은 의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지금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방역복을 입고 그 누구보다 환자 가까이에서 그들을 치료하며 돌보고 있는 의료진에게 감사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의료 관행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하고 감시 장치가 가동되어야 한다.

환자와 의사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럴수 있길 바라본다.


띵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