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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Feb 23. 2023

선생님은 내가 거기서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꼭 봐야 할 영화 <다음소희>


"사랑합니다. 고객님

상담원 김소희입니...."


"시발 됐고, #$%*&%#"

"한번 하자고.."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김소희

학교 최초로 대기업 사무직 현장실습이라며 너무 좋아했지만 현실은 하청에 하청. 콜센터 현장실습생이다.

온갖 욕설에 성희롱에 모욕적인 말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던 18살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

이것이 실화이기에 더욱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소희야. 버텨야 한다."

"선생님은 내가 거기서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현장실습 말이에요.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대학병원 인턴십 같은 건가 했어. 실전에서 기술을 배워야만 완성되는 교육이라는 게 있으니까"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은 교과과정 중 하나라 필수로 거쳐야 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사회에 내던져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기업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한다. 춤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수다 떨기 좋아했던 평범한 여고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실적이라는 미명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이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고작 현장실습생이라는 거. 언제 그만둘지 모르기 때문에 인센티브는 두 석 달 후에 나 준다는 거였다.



"그럼, 돈을 안 주겠다는 거와 뭐가 다르냐고요."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친구들에게 위로조차 받을 수 없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손목을 그어도 부모님은 모른 체하는 거 같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슬퍼할 겨를 없이 웃으며 콜을 받아야 하고,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어떡해서든 설득해 방어해야 한다. 콜 수를 다 채울 때까지 퇴근을 하지 못하고 야근도 수없이 해야 했던 소희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어떡해서든 해지를 막아야 하는 해지방어팀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서비스가 불만이라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마음으로 전화하는 고객의 마음을 잡기라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그들은 하루빨리 해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텐데 콜을 스무 번 넘게 돌리며 해지를 차일피일 미루려 하는 기업 방침에 어떤 고객이 평화로울까. 결국 쌍욕과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콜센터 직원들은 끝없이 방어를 해야 했다. 총 직원 670명, 한 해에 그만두는 직원 629명.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린 실습생들이 메우고 있었다.



소희의 죽음에 부당함이 있었음을 직감한 형사 배두나는 콜센터, 학교, 교육청까지 수사 영역을 넓히며 죽음의 이유를 밝히려 하지만 고작 18살 여자아이 죽은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는 비난의 소리만 듣는다. 취업률을 높여야 예산을 받을 수 있는 학교와 관할 학교의 취업률을 높여야 교육부의 예산을 받을 수 있는 지방 교육청은 성과를 올려야 인센티브를 준다는 콜센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젠 교육부 가시게요. 그럼 그 뒤에는 어디로 가시게요.' 라며 무기력하게 말하는 교육청 장학사의 말에 극 중 형사 배두나도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도 무너지는 마음이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대형 극장에서는 겨우 하루 오전 한 회만 상영하고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수많은 스크린에는 대형 제작사들의 영화들이 보란 듯이 걸려있다. 이른 아침 근처 소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다시 추워진 날씨가 더욱 매섭게 느껴진다. 그 추운 겨울,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던 소희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추웠을까. 어른들이 이 사회가 결국 소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잡아주지 못했다.



정주리 감독은 하나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연관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신 또한 방관했던 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영화 제작에 나섰다고 한다. 영화 하나로 사회 전체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화 한 통에 조금만 친절할 수 있다면 아니 짜증만 내지 않는다면, 오로지 실적과 경쟁이라는 시스템으로 직원들을 옭아매는 시스템이 개선될 수 있다면.. 현장실습과 취업률만으로 예산을 책정하는 교육부 제도가 개선될 수 있다면... 그것들이 모여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을 수만 있다면..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영화 <다음 소희>를 봐주길 바라게 된다.


일은 할만해?
또 욱 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말해도 돼


https://youtu.be/wu9epe97B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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