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을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 / 책리뷰 『어린이라는 세계』
우리 집에는 성숙한 어린이와 알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다른 두 어린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말싸움과 몸싸움으로 나를 시험에 빠지게 만든다.
늘 자신을 유리하게 변론하고 상대의 잘못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두 어린이 때문에 매번 고난도의 미션을 받는 느낌이다.
내가 아이들의 잘잘못을 가리고 한쪽 편을 들어주면 다른 한쪽은 엄마에 대한 배신감에 울분을 토하며 나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후로도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뭐라고 아이들의 다툼에 판결을 내리나 싶어 어린이들의 다툼은 어린이들끼리 해결하라며 도망 다녔다.
그런데 내 눈에는 별거 아닌 일들이 아이들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심각하고 억울하고 중요한 문제였다는 걸 책을 통해 어렴풋 알게 되었다.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이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하다 독서교실을 열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교감하고 있다.
난 우리 아이를 잘 알아 하지만 부모는 결코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 약간의 기다림의 시간도 주질 못한다.
김소영 작가는 독서교실에서 많은 남의 자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어린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거 같다.
흔히 많은 육아서에 나오는 케바케(case by case), 부모 혼쭐 내는 훈수질 같은 이론 따윈 없다.
직접 어린이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생생한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내 때론 정겹고, 눈물 나고 행복하다.
서로 몸이 달라도 _________ 자
빈칸에 들어갈 말은?
작가는 존중하자라는 말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어린이에게서 돌아온 말은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서로 몸이 달라도 반겨 주자"
였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곱고 상냥한 마음씨에 나도 뭉클해진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p.37 중-
어린이는 허세를 부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추운 날씨 가벼운 옷차림에도 결코 춥다고 하지 않고, 잘 뜯기지 않는 과자와 실랑이하면서도 도움을 거부하고 끝끝내 씨름하는 아이들.
우리 집 둘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도 자신이 제일 잘한다며 허세를 부린다.
분명 못할 걸 뻔히 알 텐데도 끝까지 우기며 어설프게나마 그 일을 해내는 걸 보면 저 고집은 누굴 닮았는지 하며 고개를 젓게 만든다.
비록 허세일지라도 하루에도 몇 개씩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오늘도 므훗해진다^^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 키즈 존' '노 배드 페런츠 존' 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어린이를 감시의 대상, 문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커졌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만큼 심한 장난과 고성을 지르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어린이들은 주변을 살피며 말과 행동에 조심스러워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사실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을 하려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히려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무례한 어른들이 더 많다는 건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해라, 바른말 쓰고 바르게 행동해라 요구하면서 정작 어른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타인에게 폭언과 폭행, 약자를 비하하고 배척하며 편을 가르고 따돌린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깐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 -p.45~46 중-
사족이긴 하지만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친구가 새로 일터를 옮기면서 동료 교사들로부터 은따를 당하고 있다. 5명의 선생님이 있음에도 밥을 먹을 때도 4공기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차를 마실 때도 4잔의 찻잔, 간식을 먹을 때도 4개만 가지고 온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만 둘러앉아 그 어디도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새로운 선생님을 배척하고 따돌린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씁쓸하게도 이 모습이 일부 어른들의 세계다.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보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나는 장면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그런 문제일수록 어린이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어린이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까지도 볼 것이다. -p.236 중-
어른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도 한때 어린이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까마득해서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나름 부지런했고 진지했으며 성실하고 용감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자꾸 간섭하고 혼을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었다.
어린이를 거치며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어린이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잊어버리고 그 이해 못했던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윤가은 영화감독의 말처럼 무뎌지고 퇴화한 어른으로서 어린이의 세계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겠다.
'어린이의 세계'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려보고 나의 어릴 적 시절로 되돌아가 보기도 하며 어린이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이런 소중한 존재인 어린이를 우리 어른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단지 작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김소영 작가는 낯선 어린이에게는 상황 불문하고 존댓말을 쓰며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나도 배우고 싶은 자세고 태도다.
어른이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면 아이들은 스스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 노력한다.
우리가 어린이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한다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닐까.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p.219 중-
나도 작가와 함께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적극 동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