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근교 보랏빛 마을 Brihuega
스페인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여름철(7~8월) 대부분의 회사들이 하절기 단축 근무를 시행해 정시 퇴근시간이 3시로 당겨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주 1회는 평일에도 근교 여행지들을 쏘다니며 한낮 기온 37도에 육박하는 마드리드 시내를 잠시 망각하곤 했다.
스페인 중부 소도시 중, 여름철 딱 이삼 주간 진보랏빛 라벤더 융단이 펼쳐져 여행자들을 매혹하는 작디작은 마을이 있다. 브리우에가(Brihuega)는 마드리드에서 차량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과달라하라 주의 소도시로, 인구가 채 3,000명이 되지 않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봄, 가을, 겨울에는 이렇다 할 관광 스팟 하나 없지만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마드리드를 비롯한 인근 대도시에서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여행지로 탈바꿈한다.
본래는 여타 스페인 소도시처럼 노란빛을 띤 소박한 모습의 브리우에가. 하지만 라벤더 축제 철이 되면 온 동네가 연보랏빛으로 물들어 아기자기한 멋이 가득하다. 다만 여느 스페인 내륙 지방과 같이 한낮 햇살이 매우 따가우니, 네다섯 시 넘어 방문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8월 무렵 스페인은 여덟 시는 넘어야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 이른 저녁을 먹고 와도 충분하다.
마을 곳곳의 오밀조밀한 가판대에서 라벤더 꽃으로 만든 방향제, 술, 사탕 등의 기념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천연 라벤더 오일과 신선한 꿀 등의 특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시내의 상점들을 기웃거리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시내에서 30여분 떨어진 라벤더 밭은 거의 그늘이 없어, 위에서 언급했듯 해질 무렵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쩔 수 없이 일찍 도착했다면, 석양이 질 때까지 더위를 피하고 브리우에가만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장소를 추천한다.
La Celestina Cafe, Brihuega
라 셀레스티나 카페는 브리우에가 시내의 유일한 감성 카페로, 다양한 홍차와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투박한 모양새의 케이크를 판매한다. 관광객도 많이 찾지만, 아기자기하고 빈티지한 살롱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는 라벤더, 장미 등 꽃향 디저트를 기피한다. 자연에서 온 식품이라기에는 다소 인공적인(아무래도 어렸을 적부터 사용하던 섬유유연제가 인공향스러운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 듯하다) 맛 때문에, 이러한 디저트를 먹고 트림을 하면 위장에서 피존 냄새가 올라와 갓 돌린 빨래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브리우에가에서만, 그리고 이 철에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라기에 라벤더 케이크를 한 조각 주문했다.
생각보다 거북하지 않은 라벤더 향에, 크림치즈를 섞었는지 식감이 빡빡한 크림이 촉촉한 시트와 잘 어우러진다. 얼음설탕을 곁들인 아랍식 박하 티를 한 입 머금으니 고온건조한 스페인 여름 공기는 어느새 걷히고 입도 기분도 한결 산뜻해진다.
Campos de Lavanda, Brihuega
디저트를 먹으며 땀을 식혔으니, 브리우에가에 온 목적인 라벤더 밭으로 향할 시간이다. 구글 지도에서 Campos de Lavanda를 검색해 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아가면, 눈이 멀 듯 아름다운 보랏빛 라벤더 농원이 등장한다.
도심과는 멀찍이 떨어져 가족들과 연인들의 웃음소리, 희미한 꿀벌 날갯짓 소리, 말발굽 소리만이 들리는 평화로운 라벤더 밭. 저 멀리 보이는 작달막한 나무들 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밖에 보이지 않아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작은 팁을 주자면, 브리우에가에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흰 옷을 입고 있다. 보라색 꽃과 대비를 이루어 청량하고 밝은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린넨 재질의 흰 원피스 또는 블라우스를 입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해질녘 평원은 붉은 석양을 머금어 부드러운 황금빛을 띤다. 풍뎅이의 등껍질처럼 반들반들 빛나며 바람에 나부끼는 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딘가 묘하고 슬픈 기분이 들더라.
비록 자차가 없으면 방문하기 힘든 곳이긴 하나, 가끔 스페인 관련 포털 또는 카페에 브리우에가에 갈 동행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반드시 평일 오후를 노려 사진을 잘 찍는 동행과 함께 방문하여, 꿈결 같은 해질녘 라벤더밭을 감상하고 오기를 바란다.
올해의 브리우에가 라벤더 축제는 7월 17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기념으로, 라벤더 밭에서 각종 문화 행사가 펼쳐진 가운데 춤을 추며 식음료를 즐겼다고 한다. 내년 여름 마드리드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라벤더 향기에 파묻혀 라이브 음악과 술을 즐길 수 있는 브리우에가 축제를 잊지 않길 바란다.
▽브리우에가 라벤더 축제 관련 링크
https://www.festivaldelalavan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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