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소도시 쿠에르나바카에서 죽은 자의 날 맞이하기
죽음과 축제, 도무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멕시코인들의 추모 방식은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많은 이들이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서 보았듯이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에는 묘지들뿐만 아니라 온 거리와 성당, 학교, 그리고 회사 사무실들까지 형형색색의 장식과 꽃으로 물든다.
멕시코시티 정착 직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근교 소도시를 찾던 중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마을 쿠에르나바카(Cuernavaca)를 발견했다. 쿠에르나바카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온과 맑은 하늘로 유명해,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인근 도시들에서 휴양을 즐기러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더불어 파스텔톤의 센트로가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한다고 하여, 죽은 자의 날을 맞이해 버스를 타고 방문해 보았다.
듣던 대로 봄처럼 아름다운 쿠에르나바카는 11월에 방문했음에도 티 없이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로 여행객을 감싸 안아 주었다. 분홍색, 노란색, 생동감 넘치는 초록색으로 꽉 메워진 센트로는 엽서 같았고, 작은 마을에 매력적인 공간이 어찌 이렇게 많이 숨겨져 있는지 짧은 일정으로 이곳에 방문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였다.
11월 2일 죽은 자의 날을 맞이하여 더욱 화려하고도 더욱 감성적인 장소로 변모한 관광 포인트들이 많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쿠에르나바카에서 죽은 자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세 장소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쿠에르나바카 대성당
(Catedral de Cuernavaca)
쿠에르나바카의 상징이기도 한 분홍색 성당. 규모가 크지 않지만 차분하고도 온화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사진 속 건물 외에도 다양한 예배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의 대성당들은 확실히 유럽의 성당들과는 다른 멋이 있다. 유럽의 경우 웅장함과 섬세함으로 교인과 비종교인을 압도시키지만, 중남미의 성당들은 정제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주곤 한다.
성당 내외부에는 크고 작은 추모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제단은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과 과일, 죽은 자의 날에 먹는 빵인 빤 데 무에르또(Pan de Muerto), 영화 코코에서 등장하는 금잔화(멕시코에서는 Cempasúchil이라고 부른다)로 빽빽하게 꾸며진다. 슬프지만은 않게, 그리운 고인의 얼굴을 추억하며 떠난 이를 그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2. 스펜서의 집 박물관
(La Casona Spencer)
점심식사 후,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우연히 발견한 La Casona Spencer는 지역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위해 지어진 파티오 공간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지역민들을 위한 연극과 춤, 전시 등의 무료 행사가 개최되며 죽은 자의 날에는 수공예 마켓과 작은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쿠에르나바카 출신의 유명인사,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대학생들, 심지어 생전에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었던 반려동물을 기리는 제단과 장식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차분하고도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시 공간들을 잇는 복도에서는 죽음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위의 이미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멕시코에서는 해골이 불길하거나 음산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두개골 장식은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찬양하고 즐기며, 저 너머로 떠난 이들을 슬픔 없이 기억하자.
카르텔, 총, 납치, 인신매매가 남 일이 아닌 멕시코이기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잃었을 것이다. 때문에 예기치 못한 이별이 찾아오더라도 보다 의연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천진한 미소를 띤 형형색색의 해골 장식품을 만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3. 보르다 정원(Jardín Borda)
18세기에 광산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돈 호세 델 라 보르다(Don José de la Borda) 소유의 여름 별장이었다는 보르다 정원. 옛 주인이 생전 식물학과 원예학을 연구하고 관상용 식물 수집을 즐긴 덕에, 현재는 쿠에르나바카를 대표하는 식물원이자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작은 도서관과 예배당, 카약을 탈 수 있는 호수 역시 갖춘 넓은 공원이기에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거주민들의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보르다 정원 역시 죽은 자들을 맞이하여 곳곳에서 지역 공예품 플리마켓이 한창이었다. 각종 부스와 테이블로 광장이 빈틈없이 메워졌음에도, 번잡한 느낌 없이 지역민과 관광객의 상생을 도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홀로 떠난 여행 속 충만한 행복을 느끼던 중, 나를 울컥하게 만든 건 금잔화 꽃잎으로 가득 채워진 분수대였다. 멕시코 식민 시대 이전부터, 금잔화는 '생과 사를 잇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죽은 자의 날이면 가정집의 현관부터 거실까지 금잔화 꽃잎을 융단처럼 뿌리는데, 그 이유는 고인의 영혼이 꽃 향기에 이끌려 길을 잃지 않고 안전히 집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 하지만 남겨진 이 중 누구 하나 눈물짓는 사람 없이 그저 '우리'의 추억을 복기하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생(生)을 단단히 쥐고 어루만지는 축제의 장. 쿠에르나바카 여행 이후로 죽음은 푸르고 음울하다는 관념을 탈피하고, 무한히 넘실거리는 황금빛 파도의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쿠에르나바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찬란한 생으로 가득한 장면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죽은 자의 날을 맞아 멕시코에 방문한다면, 작지만 온기 가득한 이 소도시에서 11월의 봄을 만끽해 보길 바란다.
▽ 쿠에르나바카 여행 관련 링크
https://www.turismomexico.es/estado-de-morelos/cuernav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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