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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트라맨 Jul 06. 2024

영.

영.

그때 우린 참 어렸다 그렇지? 처음 놀이공원을 가서 신나게 놀다가 지워지지 않을 사진도 남겨보고, 너무 신나게 놀아, 허기짐에 떡볶이를 먹었더랬지. 그 순간에 먹던 떡볶이에 오뎅이 내 혓바닥에 각인되어 그 맛을 못 잊을까. 영.배 한 척을 빌린 듯이 사람이 없어 너와 나 둘이 강에 표류하듯 물결 따라가는 배 안에서 두근거렸지. 중간에  화들짝 놀라게 하는 용머리를 호기롭게 쳐보겠다고 까불던 나에게 참 귀엽다고 해주던 네가 더 귀여웠던 건 아는 건지, 금화가 잔뜩 실린 보석 상자를 보며 저거 가져가보자며 닿지 않는 그곳에 애써 팔을 뻗으며 까불다가 안내음이 나와 급하게 멋쩍었던 그 하루에 우린 지금은 어디까지 표류하고 있는 건지, 아직 섬에 닿지 않은 걸까. 편지를 써서 보냈다면 답변을 할 수 있는 곳까진 다다랐을까. 열기구에 올라 까마득한 지상을 보며 호기로운 허세 부리던 나에게 사랑스러운 듯 웃어주던 미소는 바람에 날려 이젠 어디에서 불고 있을까. 영. 사실 그대에게서 까마득히 멀어진 내가 어디쯤에서 웃고 있는지도 몰라서, 나침반이 필요한 것인데 나침반조차 구하기 힘든 척박하게 메마른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가곤 해. 이미 지독하게 엉킨 실타래는 꼬일 대로 꼬여서 전부 잘라내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인걸 알면서도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를 그 배 한 척을 마음에서부터 부숴내어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더랬지, 그게 쉽지가 않은 일이란 것을.

영. 차가 더러워서 새 차를 하다 우연히 그날의 습도, 불빛, 공간, 방향, 대충 그런 것들이 비슷하여 되뇌어보게 된 영.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지만, 아니게 된 우리에게 단 몇 가지의 좋은 기억이 있어서, 가끔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가 있어서 조금은 좋아. 싸구려 기억이 되었다 해도 몇 번을 구깃구깃 접어서 구석에 던져 버렸을지언정, 가끔은 다시 주워 볼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영.꾸준히 묵묵하게 변함없는 널 점점 잃어가는 것도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반증이겠지. 다만 깊게 체득이 된 미각, 후각은 잃는다면 조금은 슬프겠어. 그냥 그렇다고.


-당신의 이름이 영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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