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by 노유현

나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음악가였다. 근근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희망을 볼 여유조차 없었고, 볼 낯도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으로 꽤 반듯하게 살아냈지만, 고등학교 3학년부터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없는 살림에도 정말 부단히, 아니 부당하게 일을 해서였을까. 결국 군대 입대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군 생활을 하면서 어영부영 어느새 전역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유산 500만 원으로 집 보증금을 내고 위태로운 사회 초년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수입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기에, 음악가로서의 수입은 아예 없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사회 초년생이었다. 날마다 치킨집에서 치킨을 튀기고, 음악가로서는 튀지 않는 삶을 살아갔다.


어느 날 일 하는 치킨집에서 회식자리를 갖게 되었고 평소 잘 가지 않던 강남역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강남역이라 그런지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고 그곳은 직장인들의 성지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또 연말이라 더욱 인파가 많았던 것 같다. 술집에서 한참 젊음을 탕진하며 얄궂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쯤. 맞은편에 앉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부터 숫기가 없었기에 여자와의 대화는 참 어려웠다. 부끄러워서 실루엣만 흘깃 보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의 대화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서 재잘거리는 것이 참 시끄러웠다. 아까 그 실루엣에 집중하고 싶었고, 자꾸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본다. 이번엔 얼굴을 또렷하게 바라봤다. 정말 예뻤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예뻤다. 자꾸 보다 보니 눈이 마주친다. 그리곤 부끄러워서 얼른 피해버린다. 심장이 요동치며 그녀가 궁금해진다. 같이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일렁이는 내 심박을 들었는지, “아까부터 어딜 그렇게 보는 거야?” 물어본다. “응, 아, 아니야”라며 손사래 쳤지만, 짝사랑만큼 순수한 것은 없다고 했을까? 다 들키고 말았다. 좀 부끄러워지기 전에 얼른 화장실로 도망쳐버렸다. 화장실에서 애꿎은 손만 씻었다, 말렸다 반복하며 깊은숨을 들이쉬어 본다. 아. 근데, 변기 칸이 빨간색으로 잠겨 있다. 그리곤 코를 막으며 밖으로 나왔다.


우리 테이블 자리로 오는데,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우리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저 남자, 사랑에 빠졌데요 하하!” 하며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는 클럽 비트 못지않게 리듬감이 있었다. 화기애애한 자리에 재를 뿌릴 수 없어서 용기를 내어본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 같은 방향이라서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아저씨가 말은 안 하셨지만 분명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집으로 가는 시간이 그날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며 다음에 한 번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고, ‘예스!’. 나는 이제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난 남자가 되었다. 그날 밤에 신났던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집 앞에서 연락처도 교환하고 다시 만나기로 한 전날. 일이 끝나고 하루 종일 옷을 바꿔 입는 통에 시간을 다 보냈다. 어쩜 그렇게 옷이 없을까. 철 다 지난 블레이저와 군대 가기 전에 있던 보세 옷을 보며 자신감이 싹 사라졌다. 수중에 가진 돈도 딱 데이트 비용만 간당간당한 터라 옷을 살 수 있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신세 한탄까지 하기 시작하고 서글펐다. “사랑이 뭐길래.”


“틱, 틱” 엄지를 신나게 놀려본다. 그녀와 만나는 장소를 이야기 중이었는데, 항상 가본 곳만 가는 애송이라서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샤워하며 콧노래까지 불러본다. 머리를 말리고 잘생긴 표정을 거울에 한 번 지어준 뒤, 옷을 입었다. 향수도 뿌려주고 나가면서 마지막 거울을 보는데 촌스러움이 팍팍 묻어 나온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애꿎은 통장 잔액만 슬쩍 확인하고는 강남역으로 출발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는데 어깨는 점점 축 쳐져간다. 그리곤 멀리서 그녀가 보인다. 경직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본다. 그녀는 정말 멋있었다. 무용수였고, 본인을 잘 꾸밀 줄 알고 또 7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러 걸어가는데 어째 그날 만난 그녀와는 좀 다르다. 한 마디도 없다. ‘아, 내가 별로구나’ 그나마 간절하게 붙들고 있던 자신감은 낭떠러지에 그대로 추락했다. 식사는 카레를 잘하는 집으로 갔다. 카레를 분명 잘한다고 했는데, 그때 처음 느껴봤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숙연한 그 자리에서 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밥도 빨리 먹었던 것 같다. 식사가 끝나고 간단하게 차 한잔하자고 이야기했는데, 뒤에 일정이 있어서 바쁘다고 그녀는 먼저 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생각했다, ‘아, 끝났구나!’ 거지 같던 신세를 한탄하고 능력이 없는 스스로에게 매우 실망하며 일주일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십여 년을 무경력으로 이어오다 겨우 밴드 생활을 하게 된 음악도 때려치웠다. 밴드 리더와 말다툼하며 “나는 이제 이렇게는 정말 못 살겠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콘셉트로 가지고 있던 관리가 안 되어 끝이 다 상한 아주 긴 머리와 수염을 전부 정리했다.


말끔해진 자신을 보니 너무나도 속이 시원했다. 후회하겠지만, 그녀를 놓친 것이 더욱 후회가 되었기에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게 살기 싫었다. 변화가 필요했고 그 낡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반듯한 외모와 조금은 쓸모 있는 체력이 있었으므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일자리를 구하니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기존 아르바이트와는 다른 꽤 큰돈을 받으니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들에 관심이 생겼다. 그중 꽈배기 형태로 된 초록색 스웨터를 너무 사고 싶었다. 가수 성시경 님이 입은 모습을 보며 ‘저 스웨터 정말 예쁘다’ 하며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스웨터를 하나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을 하며 스웨터를 하나 구매했다. 물론 성시경 님이 입은 스웨터는 더 좋은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명품이었다. 그 스웨터가 배송되고 집에서 한껏 꾸미고 입어 보았다. 유행에 뒤저진 옷들 천지지만 리바이스에서 산 청바지 하나는 오래 입을 수 있었다. 그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머리도 살짝 만져 보았다. 그리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핸드폰을 열어서 카톡 메인 사진을 제일 자신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본다. ‘그래, 한결 낫다.’


그렇게 일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그녀의 카톡 메인 프로필이 변했다. 항상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새로 산 스웨터와 조금은 나아진 자신을 기억하며 ‘연락을 한번 해볼까?’라는 발칙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오후 2시. 술 먹고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안부 문자로 ‘잘 지내지? 카톡 프로필 사진 정말 예쁘다’라고 보내는 거면 괜찮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문자는 갔고, 시간은 흐르고, 왜 갑자기 몸에 열기가 올라서 땀이 나는지. 잠시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리고 지하 연습실에서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가는데. “카톡” 문자가 왔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정신이 아찔하다. 그리곤 확인한다. “응, 잘 지내지! 오빠도 잘 지냈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렇게 연락을 조금씩 하며 주말에 그녀가 좋아하는 팟타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제 무얼 입고 나갈지 알겠죠? 바로 초록색 스웨터지.


초록색 스웨터와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깔끔한 신발. 짧아진 머리에 말끔한 얼굴이 거울에 보인다. 오늘은 왠지 어깨가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집을 나선다. 그때 유행했던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야깃거리를 들고나가기 위해 ‘마녀사냥’ 재방송도 몇 편 돌려보았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 본 내용들을 상기해 본다. 그리고 저기 멀리 그녀가 보인다. 역시 오늘도 예쁘다.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마녀사냥’ 이야기를 살며시 건네본다. ‘오!, 그 프로그램 보세요? 저 성시경 진짜 좋아해요!’, 속으로 생각한다. 럭키!’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또 자신만의 이야기를 입혀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해본다. 마지막으로 배우 한석규 성대모사는 내 필살기인데, 필살기까지 모두 소진했다. 대화가 통한다고 느꼈고,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 무엇보다 나 자신이 거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감이 있었다는 말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저렴한 초록색 스웨터는 내게 희망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 후 그녀와 몇 번을 더 만난 후 우리는 서로 못 봐서 안달 나는 사랑스러운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게 보물이었고, 나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시작하다 약 3년의 연애 끝에, 여느 다른 커플들처럼 헤어짐이라는 역경의 관문을 우리는 넘지 못했고, 그렇게 아직 남아 있는 불씨를 외면하며 서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기억난다. “오빠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야.”


지금도 가끔 성시경 님의 노래 중 ‘아픈 손가락’이라는 노래는 들을 때면 풋풋하게 만나서 열정 가득했고 애잔하게 되어버린 우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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