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by 노유현

“탁, 탁”, “타다닥” 오늘도 신명 나게 컴퓨터 자판을 치며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나가고 있다. 글을 쓰며 삶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한 바를 투박하고 삐뚤빼뚤한 그릇에 옮겨 담아, 먹기 좋게 내려한다.


여름은 뜨겁다. 여름은 축축하다. 살벌하게 추운 겨울을 버텨내며 지새우고 새 생명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탄생의 경종을 울리는 봄바람이 콧잔등에 걸린다. 그리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름이 온다. 여름은 뜨겁고 축축하지만, 사람으로 비유하면 대학생 같다. 패기 있고 두려운 줄 모르며 생기가 넘친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선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한 노릇이다. 어쩜 그리 아이디어도 좋은지. 여름에 반짝이는 생각들은 날씨와는 정반대로 신선하다. 그 신선함에서 오는 여름의 열정과 뜨거움이 이마에 고스란히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린다.


나는 지금 뜨거운 여름을 살고 있다. 사회적인 나이로 치면 청년에서 중년으로 들어가는 시기에 근접했지만, 난 뜨거움이 좋다. 축축한 것이 왜 인지 좋다. 이마에 방울 맺혀 흘러내리는 여름을 닦다 보면 몸에서 더욱 생기가 돋는다. 삶 속에서 매 순간을 경험으로 부딪히고 좌절하며 살아왔던 순간들이 조금은 투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안 계셨다. 사회에서 시선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마음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나와서 취직하고 결혼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만, 희생을 감내할 줄 알아야 가능한. 그런 숭고함에서 나오는 평범함이다. 나는 그렇지 못한 모난 돌이었기에 그런 길을 걷지 못했다.


항상 무언가를 할 땐 ‘여름이었다.’ 26살,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가슴속엔 모험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험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만남 속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용사’ 같은 행동을 하고 싶었다. 누구도 “야 너 용사니까, 앞으로 잘해라!.”라며 시키지도 않았고 쳐다봐 주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부르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때는 인터넷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스마트폰은 물론 GPS라는 개념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네O버에서 웹 검색을 하며 ‘국토 종주’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었다. 국토 종주는 젊은 청년들의 꿈이자 로망, 뭐 그런 셈이다. 다 같이 한없이 걷다 밤하늘에 별을 보면서 서로 꿈을 이야기하고 쌀과 김치 등 한껏 짊어지고 함께 식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피로해소제를 “딸깍”한 병 따며, “우리의 청춘은 이제 시작이야!”라는, 마치 광고 카피라이터 같은 이야기.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정보라는 개념은 보물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수 시간 검색을 해서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찾아야 했고 또 중요한 내용이라 인쇄하고 싶은데 프린트가 없으면 직접 옮겨 적어야 했다. 사진은 해상도가 낮아서 잘 안 보이기 일쑤였다. 아무튼 국토 종주를 찾아보며 발견한 어떤 젊은 청년의 블로그. 나보다 나이는 3살 정도 어린 사람이었는데 내 기준에선 훨씬 더 멋지고 실행력이 좋은 모험가였다. 이 사람은 벌써 국토 종주를 했고 심지어 혼자서 모든 일정을 완보하고 직접 기록도 하며 잠도 야외에서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욱더 ‘용사’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픈 어린아이들을 위해 직접 자선 단체와 또 회사에 메일을 보내서 기부하는 캠페인을 내걸고 국토 종주를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생각만 하고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있고, 직접 실행에 옮겨서 남다름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블로그를 참고하여 국토 종주를 준비했다.


그 당시 파격적으로 유행하던 인터넷 마켓이 있었는데 바로 O마켓과 O션이다. 이곳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1인용 텐트도 준비하고 먹을 거와 걸으며 필요한 것들을 샀다. 그렇게 사고 나니 수중에 가진 돈은 바닥이었고. 다음 달 월세도 못 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겐 모험이라는 중대한 목표가 생겼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벤트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떠난 국토 종주는 이번이 벌써 3번째가 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약 550km.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은 매번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의 나에게 다시금 여름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준다. 그리고 그 모험을 떠나는 순간들이 바로 뜨거운 여름이다.


여름에 흘리는 땀은 당연해서 좋다. 여름이니까. 더우니까. 흘리는 땀에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땀이 아주 많은 사람도, 운동 후 흠뻑 젖어도, 이해가 되는 계절이다. 하지만 겨울이나 날이 선선할 때 그렇게 땀을 흘리거나, 옷이 젖으면. “어디 아파?”라는 말로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는 원래 땀이 많은데.’ 이래저래 말하기도 애매해서 “아, 몸보신 좀 해야겠다.”라고 그냥 웃고 넘기고 만다.


그렇게 도전을 이어온 지가 벌써 5년이 되어가고 있고 여름에는 항상 각종 도전을 해왔다. 21년에 시작한 소아암, 백혈병 환아를 돕는 캠페인 “당신의 미래는 아름답길” 제주도 100km를 시작으로 22년 서울- 부산 국토 종주 “당미아 2회”, 23년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 250km & 서울 한강 100km 달리기 “당미아 3회”, 24년 히말라야 EBC(5,364m), 칼라파타르(5,644m) 등정 “당미아 4회”를 이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100만 원을 기부하며 시작한 캠페인이, 나의 뜨거운 도전을 보며 함께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그동안 약 600만 원이 넘는 돈을 소아암, 백혈병 환아를 위해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도 나는 뜨거운 여름을 살고 있다. 이 여름이 언제 가을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하루 이마에 방울진 여름을 닦아내며 용사처럼 모험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어 무채색으로 퇴색되어 가는 순간 속에서도 아직은 뜨거운 여름이고 싶다. 누군가 옆을 스칠 때면 한 번쯤은 바라볼 수 있는 여름 냄새가 가득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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