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한참 추웠던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온다. 봄이 데려오는 생생함은 아직 느낄 수 없지만 곧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년간의 학습으로 심화된 능력이다. 꽃바람이 콧잔등에 걸리어 두 볼이 발그레지는, 생생한 봄. 그런 봄이 곧 온다.
봄은 또한 계절이 바뀌는 시기다. 움츠렸던 새싹들이 태동하고 작게 여물던 꽃 봉오리가 틔워내는 그런 계절. 태양이 집으로 가기를 머뭇거리는 그런 날. 날씨는 밤낮으로 기온차가 크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환절기가 다가오자 피부는 사막처럼 메마르듯 건조해진다. 젊음의 생기가 넘쳐흐르던 20대엔, 피부에 보습도 필요 없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며 피부에도 수분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얼마 남지 않은, 피부에 수분을 가득 공급해 줄 수 있는 나의 정원. 손에 바디로션을 가득 짜낸다. 메말라가던 피부결에 로션이 닿으며 조각거린다. 한참 바스러지던 피부는 어느새 보드라워지는 놀라운 마술.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펴 바른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하루를 살아내며 온몸에 붙은 피곤과 삶의 때를 씻어내는 시간. 거품에 시간의 때가 묻어나고, 흐르는 물엔 때가 섞이어 시원히 흘러내린다. 머리에 스민 물기와 온몸에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을 닦아내며 흐르는, 가사 없는 흥얼거림. 청아해진 몸을 이끌고 보습을 위해 로션을 찾는다.
로션이 없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어리숙한 자신에게 되묻고 되물어도 돌아오는 건 의미 없는 외침.’ 기억이 안 나.’ 시절 인연이 왔을까. 헤어짐이 주는 서글픈 마음을 안아 들고 새로운 정원을 들이려 한다. 시들어가고 있는 시절 속 보습 없이는 더 이상 하루를 머물러내기가 힘들기에.
며칠간 두근대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아침이면 일렁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로션이 왔다. 기쁜 마음으로 시간의 때를 벗겨내곤 황급한 손짓으로 로션을 한 손 가득 덜어낸다. 평소 바르던 로션과는 사뭇 다른, 장미향이 진하게 어우르며 피부에는 흡수가 잘 되지 않는지 하얀 페인트를 얇게 펴 바른 것처럼 찰나의 시간 동안 피부에 남아있다. 현명하지 못한 소비를 했음에, 미간이 찌푸려지다 이내, 향긋하게 코끝에 걸리는 장미향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현명하지 못하면 어때? 이렇게 향이 좋은데’ 새로운 로션의 길이 열리는 중이었다.
그날 저녁. 그 향긋한 장미향을 느끼며 잠이 들고파, 서둘러서 흐르는 물에 몸을 훔친다. 한 손 가득 덜어내어 향기를 맡고 온몸에 곧게 펴 바른다. 피부에 흡수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잠시 동안의 침묵.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바디 로션의 몸체를 든다. 그리고 빼곡하게 적힌 글씨들을 눈과 머릿속에 담고 이해하기 시작하려 하는 순간. 우아한 장미의 그림이 들어간 이 녀석의 정체가 큰 글씨로 적혀있다.
“바디 워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냥 웃기로 한다. 바보 같고 우스운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의 삶은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