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웃는다는 것

by 노유현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22살의 나는 세상이 무너지고 믿을 수가 없었다. TV 속에서만 보던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거기에선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그리곤 잡고 있던 손이 흘러내린다. 3일 장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입대했다. 조교들의 사나운 말투와 가혹한 현실이 누군가 마치 나에게 시련을 주는 것 같았다. 엄마를 마음속에서 제대로 보내지도 못하고 매몰차게 구르니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2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이 되었다. 그간 친구들의 편지와 소식 덕분에 조금은 외롭지 않았다. 자대로 배치를 받고 우편물을 전달하는 트럭 뒤편에 짐짝처럼 구겨져서 이동했다. 불편함도 있었을 텐데 동기들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 너무나도 무서웠다. 예전에 TV를 보면 군대에서 구타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는 장면들이 많았었고 나도 모르게 그런 장면들이 학습이 된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설렘보단 두려움이 한가득한 트럭 짐칸에서 마음을 부여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훔쳤다. 같이 탄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척 행동했지만, 서로 훔치기에 바빠서 다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으리라.


자대에 도착해서 전입신고를 하는데 긴장을 많이 한 터라 몇 번을 틀리는지 민망하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다. 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잘하고 싶었는데 자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선임들이 모두 모인 저녁 점호 시간에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고 노래를 한 소절 부르게 되었다. 사회에 있을 때도 잘 웃고 다니는 웃는 얼굴상이었는데, 장기자랑이 끝나고 자기소개를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알려주십시오!” 하면서 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점호가 끝나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어떤 덩치 큰 병장이 달려오더니 “야,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냐?” “우습냐?” 순간 다리가 풀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당최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웃으면 안 되는구나.’ 나는 그렇게 또 한 가지를 배웠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내며 어느덧 이등병 말 호봉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선임들도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 주며 작은 실수들은 감싸주는 부분들도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야생이었으며, 계급이 주는 권위의 힘은 인간다움을 잃게 만드는 경험을 새겨 주었다.


주말에는 대체로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며 군복이 아닌 활동복을 입고서 조금은 편하게 돌아다닌다. 어딜 가든 전부 보고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날이 바로 주말이다. 동기들 또는 후임들과 함께 PX에 가서 맛있는 냉동식품도 먹고 수다도 떨며 보내는 천금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편지가 온다. 평일에 오는 편지들을 받아 놓았다가 주말에 일괄 배분해 주는데 주로 가족들과 애인들의 편지가 많다. 또 면회를 나가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가족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먹고 바람을 쐬다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가족이 없었기에 면회는 먼 이야기였다.


편지 배분을 하는 부사관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노유현 편지 왔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마음에 화들짝 놀라서 “예?”라고 말실수를 했다. 군대에서는 보통 ‘다, 나, 까”로 끝나니까. 한순간의 말실수에도 군대라는 곳은 갑자기 분위기가 얼음장이 되고 만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곤 편지를 받아 들고 애정을 담아 손에 곱게 쥐어 본다. 이론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편지에는 온기가 있었다. 한 땀 한 땀 글자를 눌러쓴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편지는 엄마의 자매인 큰 이모가 보내주신 편지였다. 이름을 보자마자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서러움들이 한꺼번에 울분으로 토해지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다급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아무 일도 아닌 척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선 편지를 뜯어보지 않았다.


군대에선 불침번이라는 근무를 서는데 같은 생활관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인원 체크를 하는 근무이다. 그날은 불침번 근무가 있었는데, 나와 교대하는 친구는 동기라서 서로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마음 착한 친구였다. 불침번을 교대하기 전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화장실을 들렀다. 그리곤 주섬주섬 얼마 전에 큰 이모가 보내주신 편지를 읽어 보았다. 쏟아져 내려오는 눈물 사이로 큰 이모의 글씨가 보인다. ‘엄마가 없는데 마음 추스르며 거기서 잘하고 있니, 추운 날씨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가엾은 녀석. 그래도 용기 잃지 말고, 힘을 내렴. 네가 건강하게 잘 생활하여 무사히 전역하는 것이 엄마가 바라고 원하는 것일 거야. 유현이 파이팅!’ 편지를 보며 나의 모든 상황이 인정되었다. 그동안 혼자서 껴안고 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마음들과 묵은 감정들이 편지를 읽고 난 후 해소가 되었다. 큰 이모가 주신 편지엔 따뜻함과 또한 앞으로의 조언이 담겨 있었다. 십여 분을 정말 뜨겁게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다. 그리고 불침번을 교대하며 동기 녀석이 어깨를 손으로 툭 치며 힘을 내라는 표현을 했다. 아마 이 녀석도 같은 상황을 겪어 봤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 군 생활을 하면서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는 확신과 굳센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먹으니, 행동도 좀 더 다부져지고 점점 밝아지는 예전 모습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다시 활짝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상관이나 선임병에게 싫은 소리는 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사히 전역하여 사회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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