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공간 속, 작은 화분처럼

글을 다시 쓰는 이유

by 하도

하나.


브런치를 시작하는 이유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와도 같다. 브런치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그 이유에 대해서 한 번 글을 써보자.


살아오면서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었고, ‘자기를 표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시나리오 쓰기에 몰입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적인 세계와 상업적인 글쓰기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길을 포기했고, 그 후 한국을 떠났다. 그러다가 지난 몇 년간 일기 따위나 끄적거리던 나에게, ‘글쓰기를 다시 진지하게 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는 것은 작지만 분명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영어에 치이고, 밤이 되면 피곤하다. 주말이 되어도 일단은 쉬어야 하고, 기본적인 일상을 처리하고 나면 남는 시간은 늘 부족하다.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완전한 자유로움을 누릴 줄 알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살았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8년 전쯤, 나를 빼면 누구도 읽지 않을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아직은 ‘젊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이였다. 그리고 그해에만 약 스무 편가량의 자전적인 에세이들을 썼다. 그리고 또 다른 십여 편의 미완성 글들. 나름 공들인 글도 있었고, 대충 휘갈긴 글도 있었다. 유년시절부터 그 무렵까지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보며 쓴, 자의식 충만한 글이었다. 나 자신에 관한 사적인 글이었고, 나는 작가가 아니었으며, 또 수익이나 기회 창출을 위한 글이 아니었기에, 그 글들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때가 글쓰기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일 것이다. 그 후, 흔한 표현으로 ‘삶에 치여서’ 꾸준히 글을 써오지 못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종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잠시 현실에서 자신을 분리시키고, 흐릿한 기억 속을 헤집으면서 당장 쓸모없는 것들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그 과정이 항상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씩, 일 년에 한두 번쯤, 글쓰기를 다시 해보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안 가 그만두었다. 그때 그 블로그는 막막한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방치되었고, 지금은 구글에 검색해도 잡히지 않는다.


다시 8년이 흐른 지금, 나는 더 이상 ‘젊다’고 말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이’라는 감각은 본래 상대적인 것이고, 시대에 따른 그 개념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라도 말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사이, 세월이 적게나마 흐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만큼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뀐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나와 세상과 자아라는 이 삼각관계 속에서 내가 늘 지니고 있던 긴장감이 많이 누그러졌다. 뭐 화해라고 불러도 좋고, 성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혹은 타협, 체념, 또는 순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종류의 긴장감이 나를 한때나마 글쓰기로 이끌었던 원동력이었다면, 내가 그 이후로 글쓰기를 멈추었던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지금 나는 그런 긴장감을 더 이상 많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다시 글을 쓰려고 하자니 무엇부터 써야 할지 막막한 감정이 든다.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처럼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 말이다.



둘.


내가 살아온 시간을 십 년 단위로 조심스럽게 요약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십 대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던 자기부정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내 이십 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글자 그대로 경멸하면서 보냈고, 그 후 삼십 대는 외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덧 사십 대를 맞고 나서 지금까지 또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사십 대의 흐름 위에 있는 지금, 내 삶을 스스로 관찰하고 묘사하자면 글쎄, 나는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그 과정을 끝마친 게 아니기에 요약은 섣부르고, 내 사십 대의 남은 기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 어느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항상 굴곡지기만 하다면 그것도 피곤한 일이니까.


외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안정되어 가면서, 나는 삶에 의미를 더해줄 다른 무언가를 탐색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다. 하지만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하겠더라. 자산 형성에 힘쓰면서 짜릿한 성공을 꿈꾸거나, 아니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줄줄이 낳아 삶을 더욱 바쁘고 무겁게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주말마다 열심히 캠핑을 다니면서 자연 속의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나는 시큰둥했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내가 변하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여전히 꿈꾸듯 멍하고, 여전히 현실감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때 그 블로그에도 글을 쓰는 이유를 마련하려 지금처럼 글을 하나 썼었다. 앞으로 한동안 공개해 나갈 글들의 씨앗이 여기에 담겨있다고 생각되어서 그 글의 일부를 여기에 가져와 본다.


16살쯤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모아 왔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들 하며, 성적표들, 수많은 각종 경시대회, 미술대회 상장들 또는 학급임원 임명장 등등 전부 모아 깡그리 불태워버렸다.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추억들을 발견했을 때 정작 나보다는 어머니가 오열하면서 무척이나 슬퍼하셨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님을 잘 알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을 것이다. 한 때 온갖 종류의 성격장애를 앓던 나는 한 번은 병원에서 나름 거액을 지불하고 심리검사를 받았다. 흥미로운 결과 하나가 있었는데, 내 안에 상이 맺히고 유지되는 시간이 남들에 비해 매우 짧단다. (그래서 내가 기억력도 나쁘고 공부를 그렇게 못했구나.) 그리고 그것이 내가 끊임없이 겪던 만성적 공허감의 주요 원인일지도 모른단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공허감을 겪어야 했겠지만 그 후 세월이 한 참 더 지난 지금 그런 공허감은 더 이상 겪지 않는다. 흘러가버리는 것들에 대해 편안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공허감은 흘러가버리는 것들을 붙들려고 하기 때문에 겪던 어떤 증상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 블로그에 썼던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는 무엇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을까, 또는 무엇을 그렇게 지워버리고 싶었을까 질문해 본다. 기억은 희미하게 바랬고, 그 감정의 결이 어떠했는지 감각적인 기억을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것은 아니다. 어떤 기질적 결함은 공허감을 낳고, 그 공허감은 다시 성격적 왜곡을 낳는다. 그 왜곡은 내면에 상처를 쌓아 올리고, 상처는 다시 자기부정의 감정을 쌓는다. 그리고 그 부정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공허감을 다시 재생산한다. 그렇게 공허가 스스로를 되풀이하는 그 구조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고 싶다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면에 말이 쌓여가면 한 번쯤은 그걸 글로 풀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남아있었던 그 블로그의 글들은 그런 식으로 내가 풀어내야만 했던 말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글들은 미완성이고 불안전하며 미숙한 문장으로 써져 있었지만, 내가 지나온 성장기 삶의 한 과정과 변화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변화를 짧은 말로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좋은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지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겠다.


삶에서 허무를 느낄 때, 어떤 이는 그걸 파괴하고자 하고, 어떤 이는 그 속에 작은 화분 하나를 살포시 내려놓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태도의 차이일 것이다.




셋.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저 글 속에 썼던 말과는 다르게 나는 아직도 그러한 만성적인 공허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분명히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땅 위에 두 발을 굳건히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이 없다. 그런 종류의 감각을 지닌 타인들을 보면 한 없이 부러워진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삶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당연한 얘기지만, 조금씩 늘어가는 계좌의 잔고를 바라보며 혼자 미소를 짓는다든지, 빈약한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메모앱을 생활과 업무에 적극 활용한다든지, 지금처럼 글쓰기를 통해 아무도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들이다.


시간차가 꽤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8년 전 썼던 그 블로그의 글들이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어떤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었지만, 그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갈 때 가슴 한구석이 든든해지는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건 그냥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 어느 데이터센터 서버의 한 구석에 저장된 데이터 조각에 불과했겠지만, 그곳에는 아무리 작아도 내가 스스로의 삶 속에서 직접 끌어올린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요즘 들어 그런 감정을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부쩍 들었다.


글쓰기가 지니는 효용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그런 글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지금 여기 놓인 무언가로 바꿔 놓는다. 내가 한 때 지녔던 문제점은 그렇게 쌓여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게 너무나 불편해서 그것들을 전부 해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자신의 초라함에 대한 흔적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그것들을 자신의 일부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태도 변화일 지도 모른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느껴지는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 있어서, 그래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만들라고 충고하지만, 글을 쓰는 것도 그런 감정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써 본 경험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자의식 강한 글쓰기를 공개된 장소에서 계속한다는 것에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든다. 나는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극도의 불편함을 느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자신에 대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지 요령이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내가 느끼는 사적인 감정들, 특히 나 스스로를 대할 때 느끼는 그 혼란스럽고 불편한 감정을 온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그 블로그의 글들은 그 불편함을 극복하는 과정 중의 하나였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글을 쓰는 것도 그다음 단계의 작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적어도 아무 글이라도 끄적거리는 동안만큼은, 흩어지고 잊혔던 기억과 감정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삶이 그다지 공허한 대상이 아니라고 느끼게 해 준다. 아마도 글을 좋아하고 쓰고 읽는 모든 이들이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꾸준히 오래 글쓰기를 하다가 자신에 대해서 할 말이 남지 않아, 세상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렇게 나는 세상에 나를 조금 드러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세상에 나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8년 전의 내 모습과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보니, 아마 그때처럼 거칠어도 생기 있는 문장을 다시 쓰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문장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자신이나 세상과 화해하는 경험이 늘면서 문장은 좀 더 나긋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종류의 자기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조용한 즐거움을 준다.


삶이라는 텅 빈 공간 속에 작은 화분 하나를 심고 시간을 들여 키워 내는 일, 글쓰기가 과연 그 일에 도움이 될지 이번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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