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아지랑이
아마도 이십 대가 저물어가던 무렵의 어느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다가 이 세상에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 십몇 년 앞선 어느 날 점심시간, 나는 학교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창밖 운동장에 축구공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궁금했나 보다.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너 개미를 관찰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내가 무슨 말을 이어가려던 것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답에 친구는 내가 무슨 지랄이라도 떤 것처럼 툴툴거리다 사라진다.
세상을 패턴처럼, 시각적인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그때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비유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모두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주변 세상을 지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가 축구를 즐기지 못했던 이유도, 축구경기의 모습이 직사각형 위로 하얀 점 하나가 가끔씩 오르내리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이름을 가진 채 땀과 거친 호흡과 생동하는 맥박으로 살아 숨 쉬는 선수들과 그에 열광하는 팬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 모두가 공 던지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할 때 나라는 아이는 한 구석에서 눈앞의 아지랑이가 보여주는 기이한 패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홀로 사로 잡혀있었다. 그러한 추상적 패턴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곤 했다. 사물들은 내게 상식적이거나, 일상적인 의미로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즉 이름이 있는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안감에 자주 시달렸다. 경험과 그에 따른 감정을 잘 통제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침울하거나 또는 충동적이었고, 또 가끔은 파괴적이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곳이었고, 내가 본 것을 타인과 교류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그런 세상에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배웠다. 내가 지독한 연습 끝에 가까스로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십 대 후반이나 되어서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정말로 그랬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나는 거의 벙어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무 말이나 재잘대는 친구들을 멍하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바보인 줄만 알았다. 그런 식으로 뒤늦게 그리고 간신히 말을 배우고 나서는, 나는 내가 겪은 것들을 더 이상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소통이 가능한 것만을 소통했다. 무정형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소통하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저 소통이 가능한 것들만을 소통하며 살아가니까.
말을 배우고 나서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이나 감정을 통제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달콤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봄날, 사진 수업 과제를 하기 위해서 나는 니콘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한 친구와 함께 거리로 나갔다. 주제는 ‘일상과 풍경’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골목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전봇대 위 전깃줄만 골라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찍었다. 함께 나갔던 그 친구는 내가 과제를 장난 삼아하는 줄 알았는지 계속 키득거리며 재밌어했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고, 내게는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이 거기 있었다.
그렇게 사진 기술을 서툴러도, 나름 괜찮은 풍경을 찍었다고 생각했고, 교수님도 밝은 하늘 위로 검은 선들만 엉켜있는 내 사진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사진의 의도를 묻는 교수님의 형식적인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할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나는 그저 내 경험만을 찍었을 뿐이었다. 순수한 경험에는 언어가 개입되지 않는다. 그 사진을 찍는 내내 나는 어떠한 말들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네트워크적이고 도시적인 삶의 상징이 어쩌고 저쩌고… 전부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들이었다. 아직도 그런 말들이 왜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내가 그 수업에서 홀로 A+를 받았을 때, 내 친구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어느 가을날, 나는 마드리드의 한 학교에서 디자인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 잡지사와 연계된 미디어아트 프로그램 수업에 참여했고, 나는 코딩을 했고, 점과 선들이 연결된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스크린 위에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좋아했고, 유일하게 선택되었고, 그 잡지에 내 이름과 함께 실리게 되었다. 비록 그때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설명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것도 낯선 언어로. 그럴듯한 아무 말이나 골라 제목을 만들고, 의도를 꾸며내고, 의미를 지어내어야만 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게 보이는 것, 또는 내게서 흘러나오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이처럼 언어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순수한 체험을 의미 없는 언어로 채워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언어로 포장한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 지금도 직장에서 내 업무 방식이나 과정을 설명할 때 종종 어려움을 겪곤 한다. 나는 언제나 결과물을 내어 놓지만,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할 때는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단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가끔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오만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쏘아주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그냥 안다. 나에게 증명을 요구하지 마시라.
드로잉 연습을 위해 흰 종이를 한 장 꺼내서 이젤 위에 걸쳐 놓는다. 목탄 조각을 하나 집어 들고 선을 그려나간다. 선을 긋는 행위에는 어떤 기대감에서 오는 떨림이 있다. 잠시 후면 실망감으로 뒤바뀔 그런 종류의 떨림이 있다. 삐뚤빼뚤. 선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제법 잘 그려졌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가끔은 있지만, 보통은 원근감도 조금씩 이상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연스러움과는 항상 거리가 먼 이 삐뚤빼뚤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연친화적인 양식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한 건축가의 말을 떠올려보자. ‘자연 속에는 직선이 없다.’ 그래서 그는 곡선만 가지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 말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 그 후 얼마 후의 일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십 대가 저물어가던 무렵의 어느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자연 속에는 직선은 물론이고 삐뚤한 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종이 위에 삐뚤하게 드로잉 할 때 생겨나는 그 못생긴 선이 자연 속에는 없다. 그 삐뚤빼뚤한 선은 오로지 우리가 드로잉 할 때만 생겨난다.
그 후로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하곤 했다. 그 풍경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도시이건, 한가로운 시골 모습이건, 또는 두 평 남짓 너저분한 내 방안이건 상관없었다. 조화로움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나는 그 조화로움에 늘 감탄하곤 했다. 고개를 들고 한 번 둘러보자. 그 어디에도 부자연스러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무언가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린 선이 삐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이 무질서해 보여도 사실은 그러한 것이 아닐 것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 모든 것이 허물어져 폐허가 되어도 그곳에는 자연스러움 만이 깃들어 있다. 인간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려 슬퍼할지 몰라도, 자연의 관점에서 폐허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직선이나 완벽한 원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다. 삐뚤한 선을 가지고, 완벽한 세상을 그려내는 일은 언제나 도달하기 힘든 꿈과 같다. 나는 삐뚤하게 그린 내 드로잉을 들여다본다. 나는 무엇을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이미 세상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듯, 눈앞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려 한다.
내 선은 여전히 못생겼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린다.
가끔씩 말을 배우기 이전 시절을 떠올려본다. 흐릿하고 빛바랜 이미지들이지만 내가 느꼈던 몇몇 감정들을 섬세하게 기억한다. 비록 소통 능력의 미숙으로 곤란한 순간들을 많이 겪긴 했지만, 경험의 질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무정형의 패턴들에 둘러 쌓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오로지 이 세상만 떡하니 존재하는 그런 체험이었다.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이미 말을 배워버렸으니까. 아마도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회적 장면 속에 통합시키기 위해서 정말 오랜 시간을 노력해 왔다. 그렇게 말을 배우고, 나이를 먹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사회화되어 가면서, 한동안 언어에 조금 과하게 집착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마치 언어에 통달하는 길이 이 세상 속에서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내가 미처 취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가끔씩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세상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가고 싶을 때가 있다. 비록 시간은 늘 부족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그러한 사치스러운 여유를 다시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어에 통해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집착을 지금은 많이 내려놓아 간다. 자연스러운 자기 본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대신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쓰고, 가끔 외국어를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내가 사라질 때 세상 위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지랑이처럼 세상 속으로 스르륵 흡수되었으면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꿈꾸어 왔다. 그리고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내 이름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