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몇 년 전 일이다. 혼자만을 위한 블로그를 하나 만들고 그해에만 스물여 편 가량의 자전적인 에세이를 썼다. 그 글들을 끄집어내서, 햇빛 아래 내어놓으려고 조금씩 고쳐 쓰고 있는 중이다. 미완성 글까지 포함하면 그것보다 많다.
이 글은 그 블로그의 글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글이다. 여러 기억과 관념들이 조금 어수선하게 결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가 쓴 이 글의 감정의 흐름이 좋다.
브런치에 다시 올리기 위해서 문장을 다듬다가, 문득 에필로그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쓰인 글의 완결성을 해치면서까지 굳이 에필로그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 글을 쓸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와 조금은 달랐다. 그 차이를 조금 분명히 해두는 것은 가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을 고치면서 마지막 문단을 읽었을 때 문득 모순된 감정을 하나 발견하고, 그것을 말로 조금 풀어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내 글의 마지막에 나오는 ‘세상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아지랑이’ 이미지는 내가 어린 시절에 지니고 있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판타지이다. 이 글을 쓰던 무렵까지만 해도 그 이미지의 흔적은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살다 보면 어떤 강한 감정과 결합된 채로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런 몇 안 되는 관념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빛바랜 나머지, 이 글을 읽으면서 ‘맞아 그때 그런 것이 있었지’하고 어렴풋이 그 기억을 짐작하는 정도이다. 굳이 비슷한 감정을 찾아보자면, 오래된 사진첩을 들추다가 지금과는 달랐던 자기 얼굴을 발견하며 드는 감정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게 모순을 느낀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풀어내고 있었다는 점이 어떤 역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래 넌 단순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거야...라고 단언해 버리기는 힘든, 보다 복잡한 감정이 그 속에 들어있다.
이 글은 죽음에 대한 글이 아님에도 나에게 자꾸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아직도 그런 식으로 사라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도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나서 그러고 싶다고 대답하겠다.
세상 속으로 흡수되는 아지랑이는 내게는 세상을 떠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가 죽은 후에 내 무덤이나 비석, 혹은 화장된 잿가루, 장례식, 내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 그러한 것들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문득 궁금해진다.
십 년쯤 더 흐르고 죽음에 조금 더 가까워 진다음,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그땐 또 어떤 심정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