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웃으며 살아가기

세상이라는 무대

by 하도

아마도 열 살 무렵이었나. 반 친구들을 생일잔치에 초대했다. 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때 코미디 프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웃기는지 다들 배꼽을 잡고 미친 듯이 데굴데굴 구른다. 문득 나 혼자만이 웃고 있지 못함을 의식했다. 나 혼자만이 이 상황에서 관찰자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지배적인 감정은 이랬다. ‘대체 뭐가 이렇게 웃기지?’ 나는 그 코미디의 웃음코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웃음바다에 끼어들지 못하던 이 불쌍한 꼬마는 친구들에게 "조용히 해!"라고 위압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자지러지듯 웃던 친구들이 조금은 조용해졌던가? 다행히도 자기 행동의 변태성을 깨닫기에는 그 꼬마는 너무 어렸고, 그 친구들 역시 한 또래 친구의 뜬금없는 고함에 상처받기에는 너무 어렸다.


잠시 후 코미디는 끝났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게임을 하며 놀았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 상황에서 그 코미디가 정말로 웃겨서 웃던 아이들은 얼마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가령, 그 순간의 상황적 규범이 아이들을 집단적 폭소로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코미디는 웃긴 프로고, 웃긴 프로는 웃으면서 보는 것이고, 남들이 웃을 때는 다 같이 웃어야 한다는. 더구나 아이들은 집단 속에서 그런 식으로 과장된 행동양식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고작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일 뿐이었다.


모두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었고, 단지 내가 조금 유별났을 뿐이었다. 나라는 꼬마는 일순간 느꼈던 소외감을 고함을 통해 친구들의 감정을 억누르며 해소하려 했다. 내가 웃기지 않는데 웃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의 감정과 행동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려는 엄격성은 내 성장기 대부분을 지배했다. 나에게 사회는 그 일치감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느끼게 만드는 방해물이었다.


오랫동안 관찰자의 위치는 나에게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진실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웃음의 코드를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일부러 관찰자가 되려는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강당에 모두 모여있는데,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진다. 무슨 일인지 몰라, 자지러지게 웃고 있던 옆친구에게 묻는다.


"왜 웃는 거야?"

"나도 몰라. 다들 웃으니까 나도 그냥 웃는 거야."


항상 이런 식이다. 사회적 시선 속에서 이방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웃음을 공유해야 한다. 그 보상은 사회적 장면 속에서의 높은 효율성이다. 자기 자신이 되기보다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구처럼 행동하는 것이 효율성도 높고, 사회적으로 돌아오는 대가나 보상도 짭짤하다.


적당한 효율성을 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장대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벼운 미소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장면 속에서 솔루션이 될 수 있는지, 지금은 이해하지만 나는 어릴 때 이 부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세월과 함께 나 역시 조금씩 사회화되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고함지르며 자기 방식대로 상황을 통제하려던 그 꼬마는 지금은 보다 무난하게 사회적 스킬을 배워나가고 있다. 다 함께 웃고 있을 때 표정 굳은 한 놈이 있으면 사람들이 겪는 불편한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볍게 지어주는 미소가 자신을 속이는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은 결국 그를 길들이는데 실패했다’


내 묘비에 이런 수사적 문구가 들어가면 과연 좋을까. 멋있게 들리는가. 이게 얼마나 뿌리 깊은 사춘기적 감성인지 잘 안다. 세상을 자아를 억압하는 대립상으로 파악하는. 그 속에서 나는 장렬한 투사의 이미지를 부여받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와 대립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다. 세상은 그저 내가 살아가고 활동하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그래서 그 무대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엄밀한 반대말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집단주의라 하자. 내가 균형감각을 찾기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한국이라는 집단주의의 가치가 다소 과장된 문화적 환경 속에 놓여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타고났을 기본적인 변태성과 더불어서,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질감과 함께, 나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기준에 대한 극도의 혼란감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한 때 한국만 떠나면 보다 자유로운 개인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저 하늘의 새들마저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나라고 그걸 못할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부터 먼저 말하자면 정말로 그랬다. 나는 보다 자유로워졌다. 다만 그것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보나 타협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였다.


혹시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민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줄이라고 부탁하고 싶다. 자유로움이란 외국의 개인주의적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그런 게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외국에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한 조건을 단순화시켜 보면 크게 두 가지 일 것이다. 첫째, 보다 개인주의적인 문화권 그리고 둘째, 내가 이방인이라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여행 작가들의 마케팅 방식에 너무 빠져들지 말자. 첫 번째 조건에 대해 환상을 품고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결론과 함께 결국 실망감을 겪게 될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관점에서 한국보다 조건이 조금 나을 뿐이지, 살아보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은 전부 다 똑같이 일어난다. 이제 캐나다에 도착한 지 고작 두 달 되었다는 어느 유학생의 ‘자유로움이 있는 곳이라 좋아요’ 식의 감성 충만한 수기를 읽다 보면 마케팅의 위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기대감에 들떠 그저 텅 빈 공간에 조차 자유, 낭만, 여유로움 등의 가치를 투사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두 번째 조건을 못 견뎌하다가 결국은 한인교회를 찾는 등 다시 자발적으로 관계 중심적인 삶으로 돌아간다. 살아오던 습관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라고 하는 것은 그저 개인적 가치가 아주 조금 더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적 환경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원래가 집단적이다. 개인주의적 문화권이라고 해서 당장 자유로움의 천국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다. 역사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유럽권에서 파시즘 같은 폐해를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온 시민의식의 일종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개인주의자야’라고 요란하게 강조하면서 그 말과 함께 수많은 사회적 책임감에서 도피할 수 있을 듯 여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개인주의란 마치 대학 학과를 고르듯 고를 수 있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인 듯싶기도 하다. 이런 소란스러운 태도를 보다 보면, 개인주의를 마치 이기주의와 동의어인양 매도하는 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부자연스러움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개념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의식 속에 어떤 사상이 담겨있건 결국은 그냥 자기 타고난 성향에 맞춰 살아가게끔 되어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불러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주의자이기 이전에 그저 개인적이다. 그래서 굳이 개인주의자라는 카테고리 속에 스스로를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도 없이 나는 언제나 그저 개인적이었다.


인간은 원래가 무리를 짓는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적절한 어휘를 모르겠다. 그냥 집단주의라는 말을 계속 쓰자.


집단주의가 한 특정 문화권의 비정상적인 특성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수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다만 정도가 다를 뿐이다. 한국처럼 단일 문화권인 곳에도 있었고, 다인종 문화권인 곳에도 있었다. 같은 유럽권에서도 개인주의적 문화가 두드러지는 곳, 집단주의적 문화가 두드러지는 곳 다 따로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가장 집단주의적인 경험은 한국이 아니라 보다 자유로우리라 기대했던 미국계 회사에 있을 때 겪었다. 지금은 시드니에서 개인성을 보장해 주는 한 회사를 우연히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룹을 짓는 무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험이 늘면서 세상과 삶은 언제나 기대에 조금씩 못 미친다는 것도 배웠고, 그와 더불어 이러한 구도를 바라보는 태도가 보다 관대해진 것 같다. 모든 것을 삶과 문화라는 관점 속에서 보다 있는 그 자체로 바라보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늘어난다. 그렇게 세상과 내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내가 겪었던 성장기 진통의 한 원인은 내 안의 내재된 개인과 집단이라는 대립각이 너무나도 날카로웠다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개인적 일 수도 완전히 집단적일 수도 없다.


지금은 내가 사회적 장면 속에서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순이란 개인주의라는 의식을 소유할 때 그 의식에 반해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자라기보다는 그저 개인적인 성향이 남들보다 강한 한 개인일 뿐이다. 그럴 일은 물론 없겠지만, 설령 그 개인이 내일 갑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도 그건 한 개인의 관심사의 자연스러운 발현일뿐 억지스러운 그 무엇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개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개인주의자이기 이전에 실존하는 인간임을 이제는 잘 의식하고 있다. 또한 그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역시 어떤 집단주의자나 이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더불어 살아가기를 선호할 뿐이라는 점도 이제는 잘 이해한다.


물론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건 난 여전히 개인적인 사람이고, 개인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개인적인 삶을 지켜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의 연결마저 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 함께 웃으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다 함께 웃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만 억지로 웃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다 함께 웃는 세상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다 함께 웃는 세상에는 반드시 강요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다 함께 웃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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