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십 년에서 몇 해 조금 빠진 햇수를,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갔을 무렵이다.
나는 시드니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워라밸 좋던 그곳에서 시간이 남아돌 때마다 무언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때 혼자만을 위한 블로그를 하나 만들고 자전적인 에세이들을 써내려 갔다.
그중 하나인 이 글은, 내가 썼던 다른 많은 글들과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어수선하지만, 내가 지나왔던 삶의 어떤 과정을 보여주기에 애착이 간다. 한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갈등 구조, 그러나 지금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그 무엇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은 한때 나의 일부분이었고, 계속 자기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이었고, 도전이든 도피이든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어떤 선택을 하게끔 만든 동기였다.
자신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성장기의 영혼들에게는 중요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십 대 초중반 무렵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런 단어들이 많이 오고 갔다. 개인주의자이니 보헤미안이니 쾌락주의자이니…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표현들이 나와 친구들의 입에서 많이 튀어나오곤 했다. 결국 한 사람의 실재는 언어적 표현에 다 담기지 못하고 넘쳐흐르거나, 그보다 한참 못 미치게 초라하기 마련이지만, 혼란스러운 젊은 영혼들에게는 그렇게라도 폭풍우를 피해 잠시나마 닻을 내리는 과정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그 갈등의 원인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세상을 탓하자니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거나 또는 자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고, 자신을 탓하자니 나 하나만 없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렇게 호기심 반 설렘 반 어쩌면 세상에 내가 자리할 공간이 남아있을지 확인할 겸,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해서 한국을 떠나 결국 원하던 자유로움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내가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은 그렇게 공간을 옮겨 해결했고, 내가 스스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부분은 끌어올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그 중간 어딘가에 균형지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더 이상 이런 주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들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어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또는 한국에 남아 똑같은 나이를 맞이했을 때 나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썼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다’ 식으로 이 또한 가정의 영역이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한국을 떠났을 때 그것은 자기다움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다움이라는 것은 정말 한순간의 관념이다. 자기다움이라는 것이 의식적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 환상을 품었던 완전한 자기다움을 허용하는 곳은 이 세상에 얼마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작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기다움이란 그냥 본능처럼 왜 그런 줄은 몰라도 ‘어느새 그냥 내가 그러고 있더라’라는 식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