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나를 떠났다

감정의 밑바닥

by 하도

회사 근처에 멕시칸 스타일의 바가 하나 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둔 예전 회사 동료 하나가 발견했는데, 금요일 퇴근 후 다 같이 데낄라샷과 맥주를 하러 종종 찾는 곳이다. 하루는 잔업 처리를 하느라 다른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조금 늦게 도착했다. 아무도 안 들어가고 바 입구 근처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 친구 하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풍경은 한국이나 여기나 매한가지다.


요즘 같은 시대에 흡연자와 무슨 의리인지. 나는 담배를 끊은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먼저 들어가라는 권유에도 예전 감성을 떠올리며 그 무리에 같이 동참하기로 했다. 그렇게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묻는다. "너는 담배 안 피워?" 끊었다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담배 끊는 거 어려웠어?"라고 바로 되묻는다.


"어려웠지… 한 십 년 걸렸거든."


잔잔한 폭소가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한 번 계산해 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흡연 욕구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정확히 삼일 밖에 안 걸렸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작심삼일을 반복하면서 수년을 소비했고, 또 담배를 끊은 후 자타에 의한 간헐적인 유혹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또 수년이 걸렸으니, 십 년이 걸렸다는 대답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느 유명 작가가 그랬다지. ‘금연이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나는 날마다 금연한다’라고. 나 역시 날마다 금연하기를 십여 년 반복해 왔던 것 같다.


담배를 끊었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종종 어떻게 끊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럼 나는 ‘담배가 싫다는 마음이 정말로 생기면 담배를 끊는 것은 쉽다.’라고 대답해 준다. 여기서 핵심은 담배를 ‘끊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담배가 ‘싫다는’ 마음이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실 담배를 사랑하고 있다.


배우 최민식이 어느 방송 프로에서 담배를 가리키며 ‘가족들조차 내 속은 모르지만 이 놈만큼은 내 속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다 봤다.’라고 말하는 걸 봤는데, 그런 식의 애착관계야 말로 니코틴의 강력한 중독성을 넘어서 담배를 끊기 정말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담배에 대한 진정한 혐오감이 한 번 깃들면 금연 자체는 정말 쉽다.


움베르트 에코는 철학적 사유의 결론으로서 금연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철학적인 두뇌의 소유자는 못된지라, 그 대신 스스로 담배가 싫다고 감정적인 세뇌를 걸어 금연에 성공했다. 세뇌에 걸린 시간은 정확히 삼일. 금연 직후 니코틴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난 여전히 그 세뇌에 걸려있다.


같은 방식으로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순서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금 유치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효과는 좋다.


첫째, ‘나는 담배가 정말 싫다’ 또는 ‘담배를 또 피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따위로 짧고 되뇌기 쉬운 문장을 하나 고른다.

둘째, 금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쉬지 않고 반복한다. 이때 이 문장과 함께 실제로 혐오의 감정을 실제로 느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만일 한 순간이라도 되뇌기를 쉰다면 담배를 사랑하는 마음에 다시 잠식당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셋째, 그렇게 니코틴이 배출되는 기간인 삼일 동안 끊임없이 반복한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만일 직장인이라면 업무는 잠시 머슬메모리를 사용해서 건성으로 하되 마음속으로는 이 자기 세뇌 작업에 집중한다.


충분히 집중했다면 삼 일 후 금연의 첫 번째 고비를 넘김과 동시에 알게 모르게 담배를 향한 혐오감에 이미 세뇌당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흡연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 혐오감을 호출해 내기가 스위치를 딱딱 켜고 끄는 것만큼 쉬워짐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이 과정의 첫 단계에서 고른 그 문장은 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로 작동한다. 그리고 일단 흡연에 대한 혐오감이 드는 순간부터 자제력이라 부를 것도 없이 담배를 피고자하는 욕구는 흐릿해질 것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담배를 계속 피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기 싫어지는 순간 담배를 끊을 수 있게 된다.


욕망과 행동습관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는 이처럼 일차방정식만큼이나 단순한 게 아닐까?


마약이건 도박이건 섹스 혹은 소비 중독이건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하기 싫다는 마음보다 강하다면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조차도 고통이다. 반면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강하다면 자제력이라는 것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사실 한 가지는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랜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의식 이전에 깔린 마음이 바뀌기 시작하면 변화는 시작되고 또 점차 가속된다. 십 년이 걸려서라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습관이 있다면, 결국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금연에 성공하고 나서 스스로 고무되어 마치 금연전도사인양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설득하려 들려다 몇 번인가 욕을 처먹기도 했다. ‘너나 잘하세요.’ 지금은 남들이야 담배를 피우건 말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금연 성공은 건강을 지키고, 수명을 늘리는 것 이전에 마음과 습관 사이의 연결 고리를 경험적으로 파악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질을 전방위적으로 개선시켜 나가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나는 금연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불굴의 의지’ 나 ‘강인한 정신력’ 따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는 자신에게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며 주는 보상 요법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해 힘들어서 허덕거리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정면으로 응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트릭을 사용해 조금 바꾸었을 뿐이다.


내가 싫어했더니, 담배가 나를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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