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조도로프스키 영화 세 편은 다음과 같다.
<엘 토포, 1970>
<홀리 마운틴, 1973>
<성스러운 피, 1989>
그리고 이 십여 년 전 한국에 있을 때 그의 그래픽노블 한 권을 번역본으로 읽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흥미를 끌어당기는 컨셉과 다르게 그의 작품들은 기괴하고 매우 지루하다.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얻다가 추문에 휩싸여 지금은 그 이름마저 금기어가 되어버린 모감독의 영화들처럼 외적인 만듦새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꾸벅꾸벅 졸곤 했다.
단 그날만 빼고.
조도로프스키가 내한했을 때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영화가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영화는 영화 자체니까. 이해하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보는 대로 느끼지 않고 ‘어렵다’고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옳지 않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잘 알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영화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돕는 것이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 같다. 어쨌거나 영화는 영화다. 내가 ‘이거다’라고 설명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그날 시네마테크에서 그 영화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이해'하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매 장면마다 스스로 이해 가능한 어떤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랐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삶도 그와 똑같다.
우리가 삶이 던져주는 매 순간의 의미를 즉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이란 '이해'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건져 올리며, 삶을 살아내려고 한다.
글쓰기나 예술은, 그 삶의 순간들을 무한한 방식으로 재배열하며, 무한히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낸다.
그래서 삶의 매 순간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한하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은,
바로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날, 그 골목길에서, 내가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방법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되돌아보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