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골목길, 잊혀진 시간
극장 옆 아파트에 세 들어 살 때, 그곳에는 남는 방 하나가 있었다. 그 방의 세입자는 자주 바뀌었다. 주로 관광객들이었다.
내가 머물던 지역은 라띠나라고 불리는 빈티지적인 구시가지였던지라, 관광객들로 늘 붐볐다. 아파트가 붙어있던 극장은 그 지역에서 유서 깊은 장소였다. 그 맞은편에는 널찍한 공공 시장 건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고, 온갖 종류의 바와 레스토랑, 작은 옷가게나 기념품 파는 곳이 즐비했다. 아파트를 나서면, 그 앞은 극장 입구 바로 옆이라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머리를 단정히 하느라 거울을 보곤 했다. 집주인은 낮에는 배우였고, 또 밤에는 어떤 바에서 관리일을 맡고 있었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요르 광장을 지나 이 십여 분 걷다 보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빈 방에 미국인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얼마나 머물다 갈까. 갈색 머리, 안경, 주근깨.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자였다. 나이는 언뜻 보기에 나보다 두어 살 많아 보였다. 정확한 나이는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고 또 물어볼 일도 없었다. 인류학 박사 과정의 일환으로 마드리드에 왔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올 일이 뭐가 있는지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학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이니까.
집에서 지낼 때는 주로 공부에 바빠서 옆방에 누가 지내든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도 잠시 거쳐가던 다른 관광객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가끔씩 집주인과 셋이 모여 함께 맥주를 마시고 짧은 잡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그녀는 주로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무렵 만나던 두 살 어린 도미니카 출신의 한 여자애한테 관심을 쏟던 중이었다.
하루는 책만 보던 그녀가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테이블에 남아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었고, 그녀는 소파 한 끝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줄은 알지만, 영어 대화를 실생활에서 경험한 적은 많지 않아서 자신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기가 도와줄 테니까 영어로 한 번 대화해 보자고 했다. 우리는 보통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이른 초저녁이었고, 집주인은 이미 카페에 일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눈앞 테이블에는 어느새 와인병과 하몬 한 접시가 놓였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가끔 와인을 한 모금씩 홀짝 거렸다. 내가 다음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말을 멈추면, 그녀는 마치 영어 선생님처럼 내가 하려던 말을 자신의 짐작으로 대신 말해주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페인어로 "Si, Eso es!"(맞아, 바로 그거야!)라며 맞장구치고는 다시 영어로 돌아와 하던 말을 이어나가곤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술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입에서 영어가 술술 붙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영어가 점점 능숙해질수록, 그녀도 점점 더 몸을 기울이며 내 말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잡담을 넘어서 가벼운 토론으로 번졌다. 무슨 주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논박하며 열심히 말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고학력자답게 토론을 매우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 논리도 세우고 내 영어도 도와주고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듬거림을 멈춘 내 입담과 논리가, 그녀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뿔싸,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잠시 후 그녀는 주변에 펼쳐져 있던 책들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섰다.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잠들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났지만, 아마도 내 실수가 맞을 것이다. 언쟁이 일어나면 상대방에게 지지 않으려는 내 습관은 그때까지만 해도 꽤나 남아있었다. 지금은 상대방을 말로 이기려 하기보다는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알아도 모르는 체하며 맞장구치는 법도 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철이 덜 들었을 때였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내내, 그녀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매력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미안한 감정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녀가 그날도 심심했나 보다. 누가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리길래 방문을 열었더니 그녀가 서 있었다. 시네마테크에 같이 영화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무슨 영화인데?"
"나도 몰라. 그냥 가서 보자."
아파트에서 조금 걸으면 닿는 거리에 작은 시네마테크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마드리드 구시가지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먼저 프로그램부터 확인했다. 그날 저녁의 프로그램은 칠레 감독인 조도로프스키가 멕시코에서 찍은 영화였다. 저 유명한 <La Montaña Sagrada, 1973>. 한국에는 홀리 마운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난해하고 상징적이다. 또 추상적이고 잔인한 영화다. 나는 그 영화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지루함 때문에 끝까지 잠들지 않고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마도 여자랑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날따라 집중이 잘 되었다.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가 다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그 미로 같은 길을 다시 걸으며 집에 돌아올 때, 우리는 줄곧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 그녀는 자기가 본 것을 가지고 이론적 정리를 다 마친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묻고, 서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화를 위해 그 구불구불한 길을 조금 더 돌아갔다.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덕분인지,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런데 이야기가 영화 메시지의 핵심 중 하나인 불교적 인식론으로 넘어갔을 때, 그녀는 또 말문을 닫았다. 이유를 몰랐다. 내가 또 무슨 실수라도 했을까?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우리가 아파트에 거의 다가왔을 때 나는 문득 그녀의 나이를 물었다.
"너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
"그럼. 스물여섯 살이야."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
나보다 연상이라 여겼던 그녀는 사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재밌는 사실은 그 대답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묘하게 불편했다는 것이다.
아마 여기에 내 변태성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남자가 기대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기분이 나빴다. 아마도 나는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의 실제 나이를 들었을 때, 나보다 어린 여자애한테 너무나 진지하게 많은 얘기를 했구나 싶은 말도 안 되는 당혹감이 밀려왔다. 나보다 똑똑한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말문을 닫자, 이번에는 그녀 쪽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할 말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감정 저 밑바닥에 있던 부조리한 불편함이 그 순간의 분위기를 정말 부조리한 방식으로 불편하게 몰아갔다. 우리는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낡은 시계 바늘처럼 조용히 그러나 또박또박 흘러갔다. 다만 그 후로 그 구시가지 골목길을 다시 걸을 때마다, 그 불편했던 감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일반적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더 편하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좀 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사귀거나 데이트를 즐기면서 이런 경향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보다 나이 많은 상대와 보다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이성관계를 바랐던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남성에게 끌리는 여성들에게 파더 콤플렉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내게는 어쩌면 마더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상처만 남기고 화해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면, 품 안에 애기처럼 안겨드는 걸 좋아하곤 했다. 내 안에 어떤 미성숙된 면모, 성장이 덜 된 아이가 남아서 어떤 보다 성숙한 포근함을 바라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일까. 설명이 필요하다면 어떤 설명이든 갖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감정 속에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 골목길 막다른 곳에 있던 시네마테크는 문이 닫혀있었다. 나는 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낮시간이지만 아파트 옆 극장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영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녀도 내게 영어를 청하지 않았다. 두어 번쯤 약간의 어색함 속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각자 읽던 책에 관해서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몇 달 후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마드리드에 남아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나보다 열 살 어린 다른 여자애를 사귀었다. 오랜 시간 나를 조용히 좋아해 주었던 아이였다.
전부 오래된 일이다. 지금은 나보다 어린 여자가 더 좋다. 진지한 대화보다는 실없는 농담이 더 좋다. 그리고 이 도시에 도착한 이후 지난 몇 년 동안은 여자친구도 없었고 데이트도 거의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적인 관계를 피하려고 했다. 그냥 그게 편했다. 낮에는 동료들과 어울려 그저 일하고, 밤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그저 오롯이 즐겼다.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해 꼭 누군가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전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다. 내가 지난 몇 년간 여자친구가 없었다고 말하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자기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자기가 누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거절했다. 살다 보면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놀라기는. 독신주의라는 말도 못 들어봤나.
아마도 나는 평생 혼자 살아도 편안함을 느낄 것 같다. 물론 가끔씩 어떤 그리움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