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을 산 흡혈귀와 그 고요 (1)

시간에 대한 감각

by 하도

하나.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자.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이 얘기를 하면 내 나이를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스토리텔링 위주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루카스아츠나 시에라의 그래픽노블 게임들. 이미지와 스토리와 퍼즐이 결합된, 환상적인 세계. 그 게임들은 어린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꼬마에게 게임 살 돈이 있을 리 없었고, 엄마 몰래 전화선으로 연결된 모뎀을 통해 게임 하나를 다운로드하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그 행위가 불법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전부 외국에서 제작된 게임들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게임은 전혀 없었다. 나는 영어를 몰랐고, 스스로 퍼즐을 풀어나갈 역량도 없었지만, 게임잡지에 실린 공략을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어드벤처 게임들을 클리어했다. 재미를 느끼기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 뜻 모를 이미지들을 엮어서 나만의 스토리를 상상 속에서 만들곤 했다.


그 초등학생 꼬마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게임을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났다. 머릿속에서 만들어 보고 싶은 게임의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게임을 만들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꽤 먼 곳에 있던 대형서점까지 걸어가 두꺼운 책 한 권을 사 왔다. C++에 관한 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너무 어려웠고, 빌게이츠 같은 천재 소년이 아니었던 나는, 시작도 제대로 못해보고 금방 포기해 버렸다. 그 책은 책장 한편에서 꽤 오래 먼지만 뒤집어쓰고 남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보다 게임을 몇만 배 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당시 나는 지나친 몰입으로 부모님께 컴퓨터를 압수당해서 더 이상 게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자기 꿈은 게임 개발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나는 “너도 더 크면 나중에 생각이 바뀔 거야”라고 점잖게 충고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않은 그 꿈을 빼앗기면서, 속에 어떤 작은 쓴맛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또래 나이의 중학생이었을 뿐이었다.


또 세월이 흐르고 나는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어릴 때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아도 종종 게임을 즐겼다. 한때 내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어드벤처는 한물간 장르가 되어버렸지만, 그 대신 게임 자체는 화려한 그래픽과 함께 엄청나게 발전해서 점차 영화 못지않은 복합적인 스토리텔링 매체가 되어갔다. 하지만 나는 영화라는 따로 몰두할 대상이 있었고, 게임에는 더 이상 진지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로 나오는 게임들은 언제나 내 관심을 자극하곤 했다. 한 번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화일이 나랑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게임 기획이나 스토리 쓰는 일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는 사람을 통해 취업 가능성을 타진해 봤다. 하지만 신입으로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한국이었으니까. 게다가 리니지나 디아블로 같은 주류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던 내가,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캐나다에서 일하던 무렵의 일이다. 그곳 회사에서 게임은 영화나 뮤지컬처럼 하나의 문화코드 같은 것이었다. E3 같은 큰 게임쇼가 열리면, 회사 사람들은 업무 중에도 다들 모니터 한쪽 구석에 생중계 윈도를 조그맣게 띄워놓고 관람하곤 했다. 오랫동안 게임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던 나는 그런 식의 게임쇼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는 무슨 게임을 해봤냐, 나는 무슨 게임을 할 거다.’라는 식의 대화를 업무 중에도 자연스럽게 나누곤 했었다. 크고 작은 다양한 게임 제작사들이 몰려 있는 캐나다에서 게임 산업은 상당히 좋은 직업군이었고,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어떤 자연스러움이 깃들여 있었다.


그때 내 뒷자리에는, 그 핸섬함으로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던 아주 잘생긴 일본계 캐나디안 친구가 하나 있었다. 자기는 늙어 죽을 때까지 게임을 즐길 거라고 말하던 그 친구는 내게 수많은 예술적인 인디 게임들을 추천해 주었다. 스팀 플랫폼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튼 진로 문제 따위로 한동안 게임을 즐길 기회가 없었던 나는, 어느새 무한한 깊이를 지니게 된 게임이라는 매체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게임 문화는 영화광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들 알겠지만, 한국에서 게임의 지위는 영화보다는 축구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 무렵부터 조금씩 게임을 다시 즐기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게임은 더 이상 예전만큼 내 상상력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 오랜 시간 게임을 붙들고 앉아 있을 집중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겠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 보니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더 재밌고, 또 스토리의 리얼리티를 더 따지는 경향이 생겨난 것 같다. 쓰고 보니 전부 나이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 아무튼 그랬다. 무엇보다도 어디선가 끝없이 치고 올라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치이다 보면 무언가를 붙들고 몰입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나라도 옮기고, 도시도 두어 번 바꾸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도착했다. 게임에 관한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는 또 다르고 캐나다에서만큼 진지하지는 않았지만, 어딜 가도 게임에 열광하는 친구들은 항상 있다. 그러다 2년 전쯤, 직장동료 하나가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THE WITCHER 3: Wild Hunt)라는 게임을 추천해 주었다. 그 말이 나온 계기는 단순했다.


“요즘 재밌는 일이 좀체 없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업무 중에 지나가는 말로 내가 투덜대자, 그 친구가 내 말을 재빨리 받는다.


“그럼 이걸 한 번 해봐.”


그 친구가 자기 모니터 스크린에 뭔가를 재빨리 타이핑하더니 게임 하나를 보여준다. 꼭 플레이해 보라고. 자기는 이미 엔딩을 여러 번 봤다면서. 그게 위처 3였다.


사실 당시 내 삶은 지루하기는커녕, 이런저런 문제들로 늘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그 친구의 추천을 받아들여, 그 게임을 구입해 설치하고 플레이를 시작했지만 도통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주말 같은 시간을 이용해서 1년 여에 걸쳐 느릿느릿 플레이해 나갔고, 작년 이맘때 기어이 엔딩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고 났을 때, 나는 그 게임의 수준 높은 스토리텔링과 예술성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아마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던 게임이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 못지않은 스토리 체험을 선사해 준 게임이었다. 스토리가 거기서 멈추는 게 못내 아쉬웠던 나는 그 게임의 확장팩 두 편을 모두 구입해서 그것들마저 엔딩을 보았다. 이번에는 어릴 때처럼 날밤을 세워가면서.


서론이 그만 너무 길어져 버렸다. 사실은 지금부터가 내가 하려던 이야기의 본론이다. 내가 이제부터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위처 3의 본편보다 더 재미있었던 두 번째 확장팩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한 대목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언제나 열광하는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굳이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하지는 않겠다. 일 년 전에 플레이한 거라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궁금한 사람은 따로 찾아보시길 바란다.


그 두 번째 확장팩은 타이틀도 정말 멋지다.


블러드 앤 와인.

(Blood and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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