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에서 딱 두장면

by 잭옵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장면 중심 비평


이 글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전체를 훑는 리뷰가 아니다.


성당 DNA 검사 장면과 시골길 추격 장면, 딱 두 지점이 왜 그렇게 오래 남는지에만 집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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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당.


원래 성당은 아기를 데려와 세례를 받고,


“이 아이는 하느님의 자녀이자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곳이었다.


부모의 아이였던 존재를 상징적으로 공동체의 아이로 내놓는 자리다.


그런데 영화 속 성당은 완전히 반대로 쓰인다.


윌라는 원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 앞에서 DNA 검사 결과를 통보받는다.


“이 아이는 누구의 딸인가?”라는 질문이


하느님·공동체가 아니라 혈통과 피의 문제로만 좁혀진다.


세례가 “너는 더 큰 공동체에 속한다”는 선언이었다면,


여기서 윌라는


“너는 이 남자의 피에서 나온 아이”라고


강제로 규정된다.


그 남자가 록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 장면은 윌라에게 두 번째, 그리고 훨씬 폭력적인 탄생이 된다.


한 번은 어머니의 몸에서 조용히 태어났고,


한 번은 성당 한가운데에서


“파시스트 군인의 딸”이라는 낙인과 함께 공개적으로 태어난 셈이다.


원래는 아기를 공동체의 품으로 올려놓던 공간이,


여기서는 한 아이를 혈통과 정치로 가두는 장소가 된다.


성당이라는 설정 덕분에 이 뒤틀림은 더 세게 느껴진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 대신,


“누구의 피를 가졌는가”만 남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부인 록저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친딸을 죽이려 하고,


반대로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윌라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은


함께 살아온 ‘키워준 아버지’다.


여기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기 집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숨기고 챙겨주는 세르히오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어렴풋이 이런 답에 가까워진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라,


위험할 때 옆에서 함께 도망쳐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결국 가족에 더 가깝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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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 추격 장면은 이 비극적인 “재탄생”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울퉁불퉁한 오르막·내리막 시골길 위에 차 세 대가 일렬로 서 있다.


단순화하면 이렇게 보인다.



맨 앞: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쫓기는 미래 세대 윌라


그 뒤: 윌라를 제거하려는 현재 세력 파시스트 팀


맨 뒤: 과거의 혁명전사로, 미안한 마음을 안고 뒤따르는 밥



하지만 이 장면의 핵심은 “누가 앞이냐”보다 길의 모양에 있다.


이 길은 고속도로처럼 곧게 뻗어 있지 않다.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가라앉고,


차들은 화면 안에 보였다가 또 언덕 뒤로 사라진다.


마치 영화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가고,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울퉁불퉁한 길이다.”


어느 순간에는


“이제 잡혔다, 끝났다” 싶다가도


언덕 하나 넘어가면 또 누가 앞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 혁명 전사가 될지도 모르는 윌라,


지금 당장의 폭력을 대표하는 팀,


과거 혁명을 기억하는 밥이


같은 길 위를 다른 속도로 달리는데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결국 어느 쪽으로 갈지는


화면에서조차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차가 언덕에 가려지는 순간마다,


“미국 역사가 여기서 꺾일지, 다시 후퇴할지”


관객의 시야도 같이 끊겼다가 다시 열린다.


길의 요철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앞날이 불투명한 역사 자체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성당에서는 한 아이가 더 이상 “공동체의 아이”가 아니라


DNA와 정치로 낙인찍힌 존재가 되고,


시골길에서는 그 아이가


울퉁불퉁한 역사 위를


미래·현재·과거의 세력과 함께 달린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 두 장면만으로도 충분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은 무엇이고, 공동체는 무엇이며,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과거는 무엇을 했고 지금은 어떠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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