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 벌이는 대환장 격투기
오늘 대회는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Inner Complex Arena에서 열린다.
관중이 보는 건 주먹과 킥이지만,
실제로 싸우는 건 각자의 콤플렉스들이다.
링 위에 오른 미구엘 도스 산토스 ‘Holy Fist’와 정도균 ‘Clean Cut’.
1라운드. 산토스의 킥이 날카롭다.
슥~ 착. 산토스의 왼발 로우킥이 정도균의 허벅지를 타격했다.
정도균은 뭔가 이상한 걸 무의식적으로 느꼈다.
산토스의 킥이 신경 쓰였다.
그는 반시계로 돌면서 산토스에게 왼발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산토스의 왼발을 집중해서 보는데, 엄지발가락에 거대한 사마귀가 눈에 띄었다.
실제로는 작았지만 정도균에게는 확대되어 머리통만 하게 보였다.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마귀에서 그는 초등학교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손에 사마귀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부터 여기저기 사마귀가 났다.
그리고 정도균은 사마귀가 싫었고 없애는 데 많은 고생을 했다.
산토스의 왼발이 정말 무서워졌다. 가볍게 움직이는 스텝도 소름 끼쳤다.
그때부터 정도균의 의식에는 오로지 왼발, 아니 사마귀만은 막자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산토스도 이때부터 상대에게 뭔가 작전의 변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작전의 변화가 생긴 건 정도균보다 산토스가 먼저였다.
명색이 별명이 ‘Holy Fist’인데 제대로 된 펀치를 날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도균의 양 볼에 있었다.
최근 교회 신자가 된 정도균은 오른쪽 얼굴에는 십자가,
왼쪽에는 'Christ’라는 타투를 하고 왔기 때문이다.
산토스는 과거 신부가 되려고 준비했었다.
산토스가 신부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본인의 양심이 문제였다.
신부가 되기에 신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가 UFC 선수가 된 이유도 상금을 선교회에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산토스는 도균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고 볼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정도균의 얼굴을 보면 산토스의 주먹은 뭉개졌고, 그것마저도 갈 길을 잃었다.
산토스의 의도와는 달리 주먹은 십자가와 ‘Christ’를 피해서만 나아갔다.
서로가 뚜렷이 무엇이라고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놓고 본다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1라운드 끝. 벨이 울리고 각자 코너에 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코치의 작전을 들었다.
정도균의 코치는 산토스의 오른발을 조심하라고 주문했다.
왜 오른발을 조심해야 하는지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 선수 시절 브라질 출신 선수의 오른발 하이킥에 KO패를 당한 적이 있다.
산토스의 오른발이 들썩일 때마다 코치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도균아, 너 왜 자꾸 왼발에 신경 쓰는 거냐? 왼발이 아니고 오른발이야, 오른발!”
반대쪽 코너에 있던 산토스는 코치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코치, 저놈의 면전에 펀치를 날릴 수가 없어요. 뜻대로 주먹이 안 나간단 말이에요.”
코치는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말만 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린 원래 작전대로 가. 복싱으로 기선을 잡아야 돼.”
2라운드 벨이 울리자 두 선수는 다시 링 위로 나왔다.
관중들은 여전히 주먹과 발차기를 기대했지만, 콤플렉스 충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도균은 여전히 산토스의 왼발만 노려봤다.
사마귀가 꿈틀거리는 듯한 환각이 그의 시야를 장악했다.
‘막아야 해. 저게 다가오면 안 돼.’
그는 반시계 방향으로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산토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Holy Fist’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그의 펀치는 여전히 망설였다.
정도균의 오른쪽 볼에 새겨진 십자가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주먹이 얼어붙었다.
‘주님,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신 그는 킥을 시도했다.
왼발 로우킥이 날았다.
슥~ 정도균의 허벅지를 스쳤지만, 정도균은 과도하게 반응했다.
그는 몸을 틀며 왼발을 피하려다 균형을 잃었고, 그 틈에 산토스는 오른발 하이킥.
정도균의 코치는 코너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른발 하이킥! 내가 말했잖아!”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산토스의 오른발이 정도균의 턱을 스쳤다.
정확히는 스쳤을 뿐이었지만, 정도균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사마귀 공포가 그의 다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지만 아직 다운은 아니었다.
산토스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주먹은 여전히 물러서고 있었다.
대신 그는 거리를 좁히며 클린치로 들어갔다.
두 선수의 이마가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정도균의 숨결이 산토스의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산토스는 정도균의 왼쪽 볼에 새겨진 ‘Christ’ 타투를 똑바로 보았다.
글씨가 그의 눈앞에서 빛나는 듯했다.
“아임 쏘리…” 산토스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정도균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뭐라고?’
클린치에서 벗어나며 산토스는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투를 피했다. 주먹이 정도균의 어깨를 스쳤다.
정도균은 반격으로 로우킥을 산토스 왼발에 날렸다.
로우킥이라고 하기엔 이상하게도 낮은 타점이었다.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 날리는 발길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2라운드 중반, 정도균의 코치는 다시 소리쳤다.
“도균아! 왼발 그만 봐! 오른발이야! 오른발 하이킥 조심해!”
산토스의 코치는 반대편에서 고함쳤다.
“산토스! 복싱으로 가! 펀치 날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코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의식은 무의식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었다.
정도균은 산토스의 왼발을 향해 태클을 시도했다.
사마귀를 ‘제거’하려는 듯한 본능적 움직임이었다.
산토스는 이를 피하며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주먹이 정도균의 귀를 스쳤다.
정도균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사마귀가… 번지고 있어.’ 그의 환각 속에서 산토스의 발에 사마귀가 더 생기는 듯했다.
산토스는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의 주먹이 다시 뭉개졌다.
라운드 종료 벨이 울렸다. 두 선수는 코너로 돌아갔다.
정도균의 코치는 물병을 던지며 소리쳤다.
“야! 너 왜 자꾸 왼발만 봐? 오른발이 문제라고! 아까도 위험했잖아!”
정도균은 대답 대신 중얼거렸다.
“사마귀… 저 사마귀가…”
산토스의 코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산토스, 주먹이 왜 그래? 타투 때문에? 그럼 눈 감고 쳐!”
산토스는 고개를 저었다.
“코치, 이건… 신의 뜻일지도 몰라요.”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제 펀치는 포기해 버린 산토스는 미들킥을 선택했다.
그런데 킥도 말을 듣질 않는지 낮은 궤도로 로우 블로가 나왔다.
킥을 맞은 정도균은 “윽” 하고 몸을 웅크렸다.
심판은 둘을 갈라놓으며 조심하라고 했다.
실수가 미안했는지 산토스는 “Brother, I’m sorry, my bad”라고 사과했고,
이에 도균은 “Ok, Brother”라고 응답했다.
이때 의식 저편 바다가 철렁했다.
심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던 동생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말렸던 자기가 떠올랐다.
평화주의자, 중재자, 해결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싶어졌다.
‘더 이상 이 싸움을 지켜만 볼 수 없다. 내가 형제들의 싸움 막아야 돼.’
이곳이 네바다 사막이 아니라 자기 집 거실처럼 느껴졌다.
심판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경기 중단을…”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눈앞에 보이는 건 서로를 “브라더”라고 부르며 허리를 숙인 두 남자였다.
잠깐, 그때 링닥터가 다가와 도균의 배를 눌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He’s okay. He can go.”
산토스도, 도균도 동시에 말했다. “I’m good.”
“파이트, 계속하죠.” 심판은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그래. 여긴 우리 집이 아니다.
저들은 과거의 내 형제들이 아니다.
여긴 Inner Complex Arena고,
나는 형이 아니라 심판이다.
내가 막을 건 싸움 자체가 아니라, 반칙이다.’
그는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둘 다 좋다면, 계속합니다. 클린 파이트. 로우 블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이해했죠?”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더들.
그 한 단어에, 도균은 초등학교 때 사마귀 달린 손을 내밀던 친구를 떠올렸다.
‘걔도, 이 사람도… 그냥 사람이다.’
산토스는 십자가를 그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님, 저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이건 신성모욕이 아니라, 스포츠일 뿐입니다.’
콤플렉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둘의 시야에는 더 이상 사마귀와 타투만 있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정도균은 한 번 건드려 보기로 했다.
‘한 번 건드려 보고 아무 일도 없다면 내가 쓸데없이 묶여 있었다는 거다.’ 속으로 다짐하고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발을 움켜잡았다.
‘어? 아무 일도 없네, 아무 일도 없어.’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클을 풀고 뒤로 물러나면서 원래의 선수, 정도균 ‘Clean Cut’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산토스가 정신을 차릴 순서다. 산토스는 우선 도균의 이마만 보기로 했다.
이마만 보고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으면서 주문인지 기도인지를 했다.
‘주님, 제가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단지 선수의 얼굴일 뿐입니다.’
도균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그는 뒤로 휘청했다.
산토스의 마음에서 두근거리고 간질거리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시야도 넓어지고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산토스의 스트레이트가 꽂히는 걸 본 코치는 환호했다.
그의 생각에 옳았다고 믿었고 “그래! 복싱! 플랜 A! 더 몰아!” 외쳤다.
어떤 무의식은 의식으로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힘이 실린 산토스의 글러브는 코치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
“왼쪽 잽, 잽, 원투, 원투.”
슥슥, 슥~ 슥~
도균의 안면을 수차례 노렸다.
정도균은 상대 예상과는 다르게 이제는 시계 방향으로 미끄러져 돌았다.
산토스는 당황했다. 또 정도균의 코치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야, 오른발 조심하라니까!!!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정도균이 파고들어 두 차례 잽을 성공시켰다.
산토스는 살짝 뒤로 물렀다.
다시 한번 정도균은 산토스의 오른쪽 각을 깎아 들어갔다.
코치는 ‘아, 그쪽이 아니…’ 말할 차에 콤비네이션이 탁탁 들어가는 걸 봤다.
산토스는 중심을 잃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도균은 바로 로우킥으로 상대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태클로 이어지고, 바로 정도균이 산토스를 깔고 앉았다.
‘내가 걱정한 오른쪽 킥은 산토스의 오른발이 아니었구나.
내 과거 선수 시절의 두려움이 만든 거야.’ 미안함이 올라왔다.
엉뚱한 지시만 내렸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이 지시 내리는 장면을 이단옆차기로 깨버리고 싶었다.
고개를 흔들면서 후회를 떨어냈다.
“도균아, 좋아. 아주 좋아. 골반 낮춰! 무게 실어! 가슴으로 눌러! 숨 못 쉬게 만들어!”
미안함을 목소리로 감추려는 듯 크게 외쳤다.
도균은 풀 마운트 위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산토스가 왼다리를 몸 위로 끌어올리며 도균을 뒤집으려는 순간,
도균의 오른 무릎이 그 허벅지를 와이퍼처럼 훑고 지나갔다.
“좋아, 왼다리 잡아!”
코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풀 마운트였던 위치가 순식간에 산토스 왼다리만 고립한 레그락 자리로 바뀌었다.
양 허벅지로 상대 허벅지를 조이자, 산토스의 왼다리가 도망갈 길이 사라졌다.
도균은 그 발뒤꿈치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상체를 비틀어 올렸다.
사마귀 있는 왼쪽 발목이 먼저 비명을 질렀고, 산토스는 고통에 탭을 치고 말았다.
심판이 아까 하지 못해 간질간질하던 중재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패배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야 산토스의 코치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게 되었고 뉘우치게 되었다.
이로써 링 위의 모든 이들은 각자의 뒤엉킨 무의식을 극복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정도균 선수는 거기에 더해 승리의 기쁨까지 누리게 되었다.
위에서 경기 전체를 관망하던 관중들.
즐거운 경기에 환호했다.
경기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지만,
경기를 즐기기에 충분했고 관중들은 경기에 열광했다.